미국 협박하고 한국은 달래는 중국의 '속내' [더 머니이스트-Dr.J’s China Insight]

입력 2022-05-24 07:14   수정 2022-05-24 09:3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끝났습니다. 한미동맹의 강화는 대중외교, 대북 억제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한미동맹 강화는 그간의 혼란을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은 한미동맹 강화보단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가입과 관련해 부드럽게 유도하려는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바이든의 '세일즈 외교'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 때는 반도체를, 갈 때는 자동차 세일즈를 하고 떠났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면 휴전선을 참관하던 관례를 깨고, 바이든은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의 인계철선은 38선이 아닌, 반도체로 보여집니다.

클린룸 관리가 철저한 반도체 공장에서 방진복도 입지 않은 한미 양국 대통령이 반도체라인에 들어갔습니다. 특히나 미국의 반도체장비 엔지니어로부터 설명을 듣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에게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보여주지 않는 삼성도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산 반도체장비로 반도체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 삼성의 의도가 의미심장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현대차그룹의 총수와 50여분간의 시간을 할애해 면담까지 진행했습니다. 현대차로부터 50억 달러의 추가 대미투자를 확답 받는 공동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분당 1억 달러짜리 회견이었습니다.

바이든의 외교는 실리와 명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기막힌 전략이었습니다. 일본보다 먼저 한국을 찾으면서, 새 정부의 면을 세워줬습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와 현대차로부터 각각 170억 달러와 105억 달러의 실익을 챙겼습니다.
한국의 IPEF 가입…알고보니 반도체 공급망 통제
중국이 경제와 군사력 등 각 분야에서 급성장하면서, 미국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 경제성장률(GDP)의 74%까지 올라온 경제력에, 달과 화성에 우주선을 쏘아올릴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3번째 항공모함 진수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 중국의 경제나 기술, 군사력이 미국보다는 열세지만, 그 성장 속도는 미국의 입장에선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최근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동맹 국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 공급망을 만들자는 전략을 내놨습니다.

7nm 이하의 첨단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지 못하는 미국 기업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바이든이 한국과 대만 기업을 상대로 직접 투자유치를 하고 있는것 입니다.

한국의 혈맹이자 우방인 미국이 추진하는 IPEF에 참여하는 것은 명분이나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실리를 따져봤을 때, 중국시장에 팔아야하는 우리 입장에선 무조건 득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중국은 지금 전세계 반도체의 63%를 소비하고 있고, 전세계 전기차 시장의 53%의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입니다. 따라서 반도체나 배터리가 주력수출 품목인 한국의 입장에선 중국을 배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중국의 미묘한 온도차…한국에겐 소통과 협의 강조
중국은 자신을 배제하려는 움직임과 관련해 미국과 일본,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미국에 대해서는 '한다면 한다'는 식의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향해서는 '신중히 행동하라'는 경고성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선 '진영대립과 디커플링은 반대한다'는 식의 우려를 표시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반도체에 있습니다. 미국이 추진하는 IPEF의 핵심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중국 입장에선 반도체 공급망이 끊기는 순간, '악' 소리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중국은 14nm 수준의 반도체 생산만 가능합니다. 한국과 대만에 비하면 3~4세대 뒤쳐저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대만이 반도체 분야에서 연합을 할 경우 전세계 반도체의 90% 이상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전세계 10대 반도체 장비회사 중 9개가 미국과 일본 업체이며, 1개가 유럽 업체입니다.

미국이 한국을 IPEF에 가입시키려는 주된 이유는 반도체공급망에서 한국의 기경학(技經學)적 중요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반면 중국의 입장에선 한국이 '반도체 쿼드'의 가장 약한 고리이기 때문에, IPEF 같은 공급망 동맹의 초기 단계에선 협박과 강요보단 소통과 협의를 통해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이든의 'IPEF', 허점 있을까…중국 보복 조심해야
한중관계에 있어, 한미동맹은 중요한 방패이자 병풍입니다. 그러나 방패나 병풍도 국가 간의 이익이 걸리면 각자도생입니다. 사드 사태 때 이미 경험했지만 중국의 보복과 관련해 막아내고 견뎌내는 것은 우리였지, 동맹국이 아니였습니다.

이번 미국의 IPEF는 중국에 대한 공급망 배제라는 목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만이 가입 대상이 됐다는 점입니다. 기술력을 가진 국가만 동맹으로 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게 대접받는 국가가 됐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경우 원수가 지면 3대가 흘러서 원수를 갚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뒤끝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양대 강국으로부터 기술동맹 러브콜을 받은 한국, 꽃놀이패를 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뒤통수가 서늘한 꽃놀이패를 쥔 느낌입니다.

바이든의 IPEF가 본격 가동될 경우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상황이 맞딱뜨릴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중국은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먼저 제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의 대중의존도가 70% 이상 되는 품목이 653개에 달합니다.



오바마 정부 이후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으로 회귀(Pivot to Asia)전략은 흔들림이 없었지만, 세부 실행을 보면 실망스러웠습니다. 국익보다는 표심에 목숨 거는 4년 주기의 대통령선거가 미국의 대중 견제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전략은 트럼프 시대에선 사라졌고, 트럼프시대 무역전쟁은 바이든 정부에서 언급조차 없습니다. 무역전쟁이 발발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추진했지만 정권 바뀌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IPEF라는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IREF에도 빈틈이 많습니다. 우선 경제협의체의 성격으로, 국회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정부 간의 협정입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미국 정치 형세의 변화와 함께 트럼프의 EPN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이 동맹에 참여했을 때 아시아국가들의 실제 이익이 무엇인지, 나아가 중국의 보복을 막아줄 장치나 대안이 보이질 않습니다.

고령인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만약에 도전한다고 해도 당선될 가능성도 낮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도는 최근 역대 6명의 대통령 중 최악입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보다도 낮습니다. 중국의 보복을 배제하고, 온전히 한미동맹과 IPEF 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중국에게 뒤통수를 맞는 불상사는 피해야할 것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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