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소주 찾는 '완규' 날 빼닮아…황혼의 삼각관계 그렸죠"

입력 2022-05-24 17:05   수정 2023-04-27 09:37

“춘산아, 오늘 대단한 날인데…. ‘빨간 소주’ 한 병씩 까자.”

24일 밤 서울 삼선동의 자그마한 지하 연습실. 연극 ‘질투’에서 주인공 ‘완규’를 맡은 배우 이호재(81)가 ‘빨간 소주’ 대사를 읊자 스태프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분명 연극 대사인데, 평소 이호재가 하는 말과 똑 닮아서다. 극작가 이만희는 올해로 연기 인생 60년을 맞은 이호재에게 헌정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면서 그의 평소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술자리에서 꼭 20.1도짜리 빨간 뚜껑 참이슬(일반 참이슬은 16.5도)을 ‘각 일병’ 시켜 맥주잔에 따라 마시는 습관부터 단골 건배사인 ‘좋았어!’를 외치는 말투, 그리고 술 때문에 걸린 통풍까지….

이호재가 오른 첫 무대는 1963년 명동국립극장이었다. ‘생쥐와 인간’의 레니 스몰 역이었다. 가끔 TV와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그의 메인 무대는 언제나 대학로 연극판이었다. 1970~1990년대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동아연극상, 이해랑연극상 등 주요 상을 휩쓸었고 2011년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학로 술집에 앉으면 지나가는 후배들 인사를 받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연극계의 ‘큰 어른’이다.

오는 27일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개막하는 ‘질투’는 이런 그를 위해 이만희와 연출가 최용훈, 배우 남명렬, 남기애 등이 의기투합해 만든 헌정극이다. 황혼의 사랑과 삼각관계란 파격적인 소재다. 이호재는 “질투는 남녀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며 “일상의 언어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만희 스타일’이 이 작품에도 적용됐다”고 말했다.

이호재를 위한 공연인 만큼 출연진과 스태프 모두 ‘이호재 사단’으로 꾸렸다. 김재건·이남희·이대연·장연익·정동환 등 후배 배우부터 연출가 박정희, 성우 송도순 등 이호재와 친한 사람들이 총출동한다. 의상, 조명, 무대, 음악 등 스태프도 하나같이 그와 10년 넘게 호흡을 맞춘 가족 같은 동료다.

이날 연습은 1시간20분 동안 쉬지 않고 실전처럼 진행됐다. 몇 차례 대사를 깜빡한 후배 배우들과 달리 이호재는 실수가 거의 없었다. ‘춘산’ 역을 맡은 남명렬은 그를 가리켜 “첫 대본 리딩부터 실제 무대에 올라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하는 선배라 가끔 얄밉기도 하다”고 했다. 이호재는 “나이가 드니까 대본 외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며 “연습에 집중하려고 연습실 올 땐 휴대폰도 놓고 온다”고 말했다. 애주가인 그도 이젠 공연 날짜가 가까워지면 술자리가 부담스럽단다. 공연을 앞두곤 금주하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먹지. 먹긴 먹는데, 마음 불편하게 먹는단 뜻이야.(웃음)”

이날 지켜본 이호재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다. 호감을 가진 ‘수정’(남기애 분) 옆에 앉아 커피잔을 더듬는 그의 떨리는 손은 ‘계산한 동작’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장을 지낸 고(故) 구히서 평론가는 과거 그에 대해 “정확하면서도 딱딱하지 않게 대사를 표현하고, 경직되지 않고 부드럽게 연기한다”고 평가했다. 이호재는 “배우가 힘을 줘서 인위적으로 연기하면 관객들이 곧바로 알아차린다”며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연기해야 더 깊은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돈벌이도 안 되는 연극은 어떻게 60년 동안 그를 붙잡았을까. 이호재가 내놓은 답은 ‘관객들과의 호흡’이었다.

“사람들이 저한테 이렇게 말합디다. ‘건강에 안 좋은 건 다 한다’고. 술, 담배 그리고 연극까지…. 술, 담배도 그렇지만, 연극도 끊기 어려워요. 관객들과 감정을 공유하다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오는데, 이 좋은 걸 어떻게 끊겠습니까.” 공연은 다음달 5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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