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 '세컨더리 보이콧' 이번에도 위력 발휘할까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2-06-02 09:00   수정 2022-06-02 09:02


“피가 마르는 고통을 겪었다.” 북한의 한 고위 외교관은 미국이 2005년 9월 마카오에 있는 중국계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제재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은 북한 외교관이 이렇게 털어놓을 정도로 큰 위력을 발휘했다.

BDA 제재 전말은 이렇다. 당시 미국 재무부는 북한의 불법 자금세탁 창구로 이용되고 있다며 BDA를 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과의 거래가 끊겼다. 수십 개 계좌에 들어 있던 북한 자금 2500만달러도 동결됐다. 이 자금은 김정일의 통치용 비자금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어려움은 이뿐만 아니었다. BDA 제재 조치 이후 미국과 거래가 끊길 것을 우려한 중국 24개 은행이 북한과 거래를 중단시킨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도발에 나서는 등 반발했다. 그러나 통치 자금이 묶이자 김정일은 다급했다. 미국과 협상에 나섰고, 동결을 풀어달라고 통사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북한은 2007년 2월 단계적 비핵화를 약속했고, 이를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BDA 제재 해제를 얻어냈다.

국제정치적으로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은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정부와 기업, 은행 등에도 제재를 가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도 이 대상에 오르면서 피해를 본적이 있다. 아랍은 2차 중동전쟁 직후인 1973년 12월 적국인 이스라엘과 교역하는 다른 나라 기업의 아랍 진출을 봉쇄하는 ‘알제리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대(對)이스라엘 세컨더리 보이콧이다.

한국은 당시 에너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 석유에 의존하고 있었고, 중동 건설 시장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질 때여서 아랍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이에 반발해 1978년 국내에 상주하던 대사관을 폐쇄했다. 1994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공식 방한한 뒤에야 한·이스라엘 관계는 복원됐다.

미국은 2010년 대이란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했을 때도 한국은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을 제재한 것으로, 한국도 타격을 받았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해 1월 걸프 해역에서 한국 국적 화학운반선을 나포한 사건도 세컨더리 보이콧과 관련이 있다. 이란은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등에 동결된 자국 자금 70억 달러를 받아내려고 나포에 나선 것이다. 이 돈은 이란이 우리나라에 석유를 수출하고 받을 대금이다. 그러나 미국이 2019년 이란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면서 인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가 최근 독자적으로 취한 대북 제재 리스트에 러시아 극동은행과 스푸트니크은행을 포함시킨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불법 금융 거래를 돕는 해외 금융기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적용을 의무화한 ‘오토웜비어법’에 따른 것이다. 극동은행은 북한 고려항공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했고, 스푸트니크은행은 북한 조선무역은행에 금융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북한의 7차 핵실험을 앞두고 북한을 향해 꺼낸 세컨더리 보이콧이 BDA 제재 때와 같이 강력한 대북 압박책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홍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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