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운전, 중앙선 침범 사고…산재처리 될까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2-06-12 17:08   수정 2022-06-12 17:09



직원이 산재로 사망하는 경우만큼 인사담당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도 없다. 물론 산재 처리 자체는 유족이 공단에 신청하는 것이지만, 산재가 인정되는 경우와 되지 않는 경우 회사의 심적 부담 차이가 적지 않다. 회사의 추가 보상을 놓고 유족과 다퉈야 하는 상황이라도 온다면 마음이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출퇴근이나 출장 중 직원이 사망한 경우, 사고가 직원의 역주행이나 졸음운전 등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발생한 경우에도 산재 보상 받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역주행, 음주운전 등 법 위반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엔 산재 적용을 받기 어렵다는게 주무부서은 근로복지공단의 입장이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37조 2항에서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 모임 후 숙취운전하다 사고...산재 안돼
먼저 사적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친구 집에서 출근하다 역주행 사고를 내 사망한 근로자는 산재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있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2020년 1월, 근로자 A씨의 유족 김 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세종시 마트에서 일하던 A씨는 2018년 9월 경 친구들과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잠을 자게 됐다. 다음날 마트로 바로 출근 하면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다 정상 주행하던 승용차와 부딪혀 사망했다. 감정 결과 A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82%였다. 공단은 보상을 거부했고 유족은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A의 사망을 산재법상 출퇴근 재해로 볼 수 없다"며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고 전날 업무와 무관한 사적모임서 음주를 했고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채 마트로 출근했다"며 "중앙선을 넘어 편도 3차선까지 침범을 해 정상 진행 중이던 차량과 충돌했기 때문에 결국 A의 음주운전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A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배달 라이더가 음식 배달 중 신호를 위반해 진행하다가 추돌 사고를 내고 다쳐 산재를 신청한 사건에서도 법원(2020구합14613)은 "신호위반행위는 그 자체로도 도로교통법에 의하여 처벌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며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원고인 배달 라이더를 비판하기도 했다.
◆교육 받고 돌아오던 중 중앙선 침범 사고...산재 인정
반면 근로자가 비록 중앙선 침범과 졸음운전 등의 사고를 일으켜 사망했다고 해도, 그 사고가 운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불과하다면 산재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 5월 12일 근로자 B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원심을 파기했다(2022두30072)

C 회사 소속 근로자였던 B는 2019년 12월 아산시에서 C회사의 원청업체가 협력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육에 참석했다 회사 업무용 포터 차량을 운전해 돌아오던 중 마주오던 트럭과 충돌해 사망했다. 공단은 “B가 중앙선 침범을 해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위반하는 범죄행위를 했다”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했다.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원심 재판부는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하는 ‘범죄행위’란 문언 그대로 형법 등에 위배되는 모든 범죄행위"라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이라 함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며 “근로자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면, 사고가 중앙선 침범으로 일어났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된다”라고 전제했다.

전문가들은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라고 나란히 규정하고 있다"며 "즉 자살이나 고의 사고처럼 그에 준하는 범죄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 모든 법위반이 산재 적용이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B의 경우 교육 중에 돌아오는 길이었고, 이런 업무 수행 중에 발생한 졸음 운전 등은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에 해당하므로 산재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눈에 띈다.

대법원은 그밖에 △B가 근무지로부터 약 47km 정도 떨어져 있는 아산시에서 1시간 30분 일정의 출장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사고가 발생한 점 △중앙선을 침범했지만 그 이유가 규명되지 않은 점 △혈액 감정 결과 음주사실은 확인되지 않은 점 △수사기관은 사고 원인을 졸음운전으로 추정한 점 △1992년 운전면허 취득 후 교통사고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

종합적으로 봐서 산재 보상 범위를 가급적 확대해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대법원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전히 하급심에서는 신호 위반 등 근로자가 도로교통법 상 잘못을 저지른 경우는 산재 보험 적용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띄고 있다.

삼거리에서 신호를 위반해 다른 차량을 치고 머리를 다친 택시기사가 산재보험 적용을 청구한 사건에서도 법원(2021구단102012)은 "보험사도 택시 기사의 100% 과실을 인정했다"며 "신호위반 범죄행위가 원고의 운전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돼 발생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산재 보험 적용을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이 사건에서는 택시기사가 사납금 부담이 컸다고 호소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근로자 과실의 사고를 어느 경우 '통상 수반되는 위험'으로 볼 수 있는지 기준을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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