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한은의 이유 있는 경고 [조미현의 외환·금융 워치]

입력 2022-06-21 10:43   수정 2022-06-21 13:14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직전 급등기인 금융위기 수준(4.7%)을 넘어설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경고가 나왔다. 이는 지난달 한은이 전망한 연간 물가상승률인 4.5%를 웃도는 수치다. 향후 인플레이션의 상승세나 지속 기간을 고려하면 금융위기 당시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한은은 21일 "향후 물가 흐름은 국제유가 상승세 확대 등 최근 여건 변화를 고려할 때 지난 5월 전망 경로(연간 4.5%)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내용의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은은 지난달 26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1%에서 4.5%로 크게 올려잡았다. 불과 한 달 새 상승률이 이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은 것이다.
"직전 물가 급등기는 금융위기"
그렇다면 과거 물가 급등기와 최근의 상황은 무엇이 다를까?

한은은 지난 20년간 연간 상승률이 4%를 넘어섰던 2008년(4.7%)과 2011년(4.0%)의 물가 상황을 현재와 비교 분석했다. 2008년 직전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에서 안정세를 보였다. 이후 리먼 사태가 발생한 2008년 7월 5.9%까지 치솟았다.

2011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기에 돌입하면서 물가 오름세가 확대됐다. 금융위기 끝물인 2009년 7월 1.6%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1년 8월 4.7%로 급등했다. 한은은 "분기 기준으로 2008년 3분기(5.5%) 이후 처음으로 5%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며 "최근 물가상승률은 2008년 급등기 고점(5.9%)에 근접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요인인 국제 원자재 가격은 2008년과 유사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다만 원자잿값 급등의 이유는 다르다. 한은은 "과거에는 중국의 제조업, 부동산,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원자재 수요 증가가 상승세를 견인했다"며 "반면 최근에는 감염병,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내 봉쇄 조치 등에 따른 공급망 차질, 친환경 규제 등 생산시설 투자 부진 등에 주로 기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국제 식량 가격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환율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
환율 역시 과거 물가 급등기와는 달리 물가 상승과 동시에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 2008년에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는데도 환율이 상승했다. 최근에는 Fed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되는 등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소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재화와 서비스 소비가 비슷한 회복 양상을 보였다면, 최근에는 재화 소비가 먼저 회복한 이후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서비스 소비가 뒤따라 반등하고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한은은 "최근 소비 개선 흐름 등으로 수요 측 압력이 점차 높아지면서 근원물가 상승세가 외식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최근 물가상승 확산세도 과거 급등기 수준을 넘어서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상승 확산지수는 70.1로, 과거 급등기인 2008년(69.1)과 2011년(68.6)보다도 높은 수치다. 물가상승 확산지수는 품목별 전월 대비 상승률에 점수를 부여하고 이 점수를 품목별 가중치를 적용해 합산한 숫자다. 이 지수가 높다는 것은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품목 458개 가운데 물가가 오르는 품목의 개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유동성 요인도 차이
유동성은 과거 급등기와 비슷하게 늘어나는 모습을 나타냈지만, 최근에는 정부 재정 지원을 중심으로 유동성이 늘어난 측면이 크다. 2008년에는 기업이 투자 수요를 확대하고 가계 대출이 늘어나면서 유동성이 빠르게 늘어났다. 반면 2011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민간신용 증가가 둔화하면서 유동성 증가세가 축소됐다.

최근에는 주택가격 상승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한 가운데 가계 소비에 영향을 직접 줄 수 있는 재난지원금 등 정부의 재정지원을 중심으로 유동성이 증가했다. 공적 보조금과 같은 가계가 비경제적 활동으로 얻는 수입을 의미하는 이전소득 비중은 최근 13.9%로, 2008년(8.6%)· 2011년(8.9%)과 비교하면 크게 확대됐다.

이에 따라 과거 급등기와 비교했을 때 원유,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의 높은 오름세, 환율 상승세, 민간 소비 증가세 등이 상당 기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은의 평가다.

한은은 "2008년 하반기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으로 물가 오름세가 빠른 속도로 둔화했다"며 "올해 들어 현재까지의 소비자물가 오름세는 2008년 상반기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지만, 최근의 물가 여건에 비춰 볼 때 하반기 이후에도 높은 물가 오름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특히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년 수준(4.7%)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이창용 총재 "물가 중심 통화정책 운용"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중심의 통화 정책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4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간 적지 않은 물가 여건의 변화가 있었다"며 "미국의 인플레이션 정점기대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고 했다. 이어 "또한 EU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제한 등으로 수급차질 우려가 커짐에 따라 국제유가가 지난 금통위 직전 109달러 수준에서 6월 들어 평균 120달러 내외로 크게 상승하면서 지난 전망 당시의 전제치를 상당폭 웃돌고 있다"며 "이에 따라 향후 국내 소비자물가 오름세는 지난달 전망경로를 상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국내외 물가상승압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며 "현재와 같이 물가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다"고 강조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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