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피해자들의 반응은 ‘만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비자원 조정안은 대상자 중 한 곳만 거부해도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 450여 명의 집단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정의 노영실 변호사는 “소비자원의 결정을 법정에서 근거로 활용할 여지는 있다”며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으려면 소송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조정을 통해 소비자원의 한계가 재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비자원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민사소송을 보완하기 위해 1987년 설립됐다. 2007년 ‘소비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권익의 주체’라는 취지로 소비자보호원에서 소비자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자원의 존재감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8년 ‘라돈침대’ 사태 당시 소비자원은 5개월간 6000명이 넘는 소비자를 접촉하는 대규모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대진침대가 매트리스를 교환해주고 위자료 30만원씩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대진침대는 민사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조정안을 거부했다. 조정 효력은 그 순간 사라졌다.
머지포인트 사건 조정도 허무하게 끝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중재제도 도입 등 보완책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원과 달리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의료사고 중재 기능이 있다. 조정은 합의를 도출하도록 제3자가 도와주는 제도인 반면 중재는 양측이 절차 개시에 합의하면 중재 판정에 따라야 하며, 판정은 법원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국가기관이 손해를 배상해준 뒤 원인제공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대불제’ 검토 의견도 나온다.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르면 의료인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 조정 성립 후에도 손해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의료사고 피해자는 조정중재원에 대불을 청구할 수 있다. 사업주가 파산했을 때 근로자는 고용노동부에 임금 및 퇴직금을 대신 지급해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도 있다.
직원 500명이 넘는 소비자원은 매년 4만 건가량의 피해 구제 신청을 받는다. 그러나 비용과 시간만 소모한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설립 취지대로 소비자가 주체가 되는 실질적 분쟁 해결 기구로 거듭날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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