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유변동환율제 25년의 교훈

입력 2022-07-24 17:24   수정 2022-07-25 00:07

늘기만 하던 외환보유액이 줄고 있다. 올 들어 248억달러 감소했다. 환율 상승을 막으려고 한국은행이 시장에 개입한 것이다. 7월 15일 원·달러 환율은 1326원이다. 13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환율이 오르자 외국인이 자금을 빼고 있다. 외국인 주식자금이 상반기 125억3000만달러 이탈했다. 한·미 간 기준금리가 곧 역전된다. 유출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당국이 환율 방어에 나선 배경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다른 처방전을 제시한다. 개입하지 말고 환율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놔두라는 것이다. 그래야 자본시장을 개방해도 독립적 통화정책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외국 자본이 들어와 원화 가치가 상승한다(=환율 하락). 당국이 원하는 수준에서 환율을 ‘고정’하는 게 불가능함을 뜻한다. 환율을 고정하려면 통화정책 독립성은 포기해야 한다.

거시경제학의 ‘삼각 딜레마(trilemma)’ 명제다. ‘통화정책 독립성+자본시장 개방+고정환율’ 세 가지는 동시 달성할 수 없고 두 개만 고를 수 있다는 이론이다.

한국이 1998년 고른 정책 패키지는 ‘통화정책 독립성+자본시장 개방’이다. 그해 자유변동환율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론이 가르치는 대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환율이 급등하고 자본이 탈출하면 초조해진다. 어쨌든 일단 ‘안정’돼야 마음이 놓인다. 외환위기 때 각인된 스티그마 때문이다. 자유변동환율제도를 내걸었지만 시장 개입 유혹이 여전히 큰 이유다. 과거 두 차례 사례를 보면 시장 개입은 당국 의도와 다른 결말로 이어졌다.

1997년 10월 20일 이후 한 달 기간을 복기해 본다. 외환당국은 매일 5억~10억달러 매도 개입을 이어갔다. 하지만 환율은 연일 상승했다. 종착지는 1997년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이다. 외환보유액만 바닥내고 정작 환율 상승은 못 막은 것이다. 1997년 11월 가용 외환보유액은 불과 11억달러였다.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이 1998년 ‘자유변동환율제’ 전격 도입이다. 2008년 글로벌 위기가 닥치자 실수가 되풀이됐다. 대응 방식이 1997년의 도돌이표였다. 당국은 2008년 9월부터 연말까지 외환보유액의 25%(6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래도 환율은 40% 급등하고 순자본 유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0%였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여파로 수입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5월 수입 물가 상승률은 36.3%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이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환율 상승이 영향을 미친 부분으로 추정된다. 각국이 경쟁적 금리 인상으로 통화가치를 높이는 데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역(逆)환율 전쟁이다.

기준금리 인상만으로는 자본유출을 막는 데 역부족이다. 환율의 가격조정 기능 작동이 핵심이다. 외환시장의 환율 기대가 1300원인데 당국이 1250원에서 ‘안정’되길 바라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당국은 외환보유액 투입으로 1250원을 지킨다. 외환당국 덕분에 외국인은 더 이상 손해를 안 보고 자본을 빼 나갈 수 있다.

시장 개입이 없을 때 결과는 어떨까. 환율이 1300원으로 즉시 오를 경우 외국인 행태는 사뭇 달라진다. 이미 환율이 너무 올라 자산 매각에 따른 환차손 부담이 만만치 않다. 1250원 수준에서 자금을 빼고 싶었는데 환율 급등으로 기회를 못 찾는다. 실시간 환율조정 메커니즘 작동이 외국인의 자본유출 시도를 억제한 것이다.

환율이 시장 여건을 반영해 ‘오를 만큼 올라야’ 자본유출 인센티브가 수그러든다. 충분히 오르면 자연스레 절상 기대가 형성된다. 유입 유인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환율 안정이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면 외환위기를 부른다. 1997년, 2008년 위기에서 얻은 뼈아픈 교훈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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