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예다. 노르웨이 정부는 ‘퓨처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통해 2014년부터 미래도서관숲에 가문비나무 1000그루를 심었고 100년 뒤 나무가 크면 베어서 종이를 만들고 그 종이로 책을 펴낸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걸 위해서 1년마다 작가를 한 명씩 골라서 글을 쓰게 한다. 그 원고를 그 숲에 있는 뉴다이크만 도서관에 타임캡슐처럼 묻어뒀다가 100년이 되는 어느 해 파낸 뒤 세상에 공개하려는 계획이다.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한강 작가가 다섯 번째로 2019년에 선정됐고 2114년 소설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불안한 현실 속에 멀리 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긴 호흡의 100년 대계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 예다. 원로 교수님들의 연구실은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한다. 필자는 그분들이 은퇴할 때가 되면 평소 그렇게 아끼던 책들도 갈 곳을 잃어 버려지는 것을 목격하며 안타까웠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으로 ‘디자이너의 서재’라는 캠페인으로 은퇴할 시기가 다가온 원로 선생님들을 찾아가 책을 기부하도록 하고 개인별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연구실 책꽂이에 잔뜩 쌓인 책들 중 버려지는 1순위가 프로그래밍 관련 기술잡지 등의 테크니컬 가이드다. 전자제품 매뉴얼도 읽어 숙지하지 않고 그냥 버려지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한 전자기업과 ‘간직하고 싶은 매뉴얼’이라는 코드명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캐릭터를 부여해서 어려운 부분을 스토리텔링으로 연결해 친근감과 재미를 주고, 버전이 바뀌어도 연속성 있게 보이는 시리즈감을 주는 디자인시스템을 적용했는데 그것이 관심과 애착을 일으켰다. 이 사용자친화 디자인 덕에 매뉴얼 사용법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돼 그간 AS접수 전화가 많아 힘들었던 콜센터 직원들의 노고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기술 발전에 따라, 트렌드에 따라 외면받는 상황에서도 여러 방면의 창의적인 디자인사고가 버려질 수밖에 없는 종이책의 운명을 100년 후까지 가능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을까? 앞서 열거한 책과 라이브러리와 책에 관한 프로젝트 예시들은 책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만들고, 이 덕분에 후대를 위해 희귀한 자료를 소장할 수 있게 됐다.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했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도 공헌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디자인을 통해 사회 혁신을 이룬 성공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윤주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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