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의학코드②]라파엘로와 다지증

입력 2022-07-29 15:21  

이 기사는 07월 29일 15:2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1483-1520)는 뛰어난 재현력과 구성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비범한 능력으로 인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다.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아티스트로 꼽히기도 하며, 그의 이름이 친숙하지 않은 분들도 아래 이미지의 하단에 위치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의 사랑스러운 푸토(putto, 날개 달린 아기 형상. 아기 천사 혹은 큐피드의 도상)들은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화가란 명성에도 그의 그림들을 모아놓고 보면 손발이 어색하게 보여 해부학적 정확성을 의심케 하는 작품이 상당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성모자와 세례자 요한>(1504)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요한은 각각의 왼발 새끼발가락 옆에 작은 발가락이 하나씩 더 달려있는 듯 보인다. <성모의 혼인>(1507)에서 요셉의 왼발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견된다. 이를 라파엘로의 실수, 혹은 해부학적 이해의 부족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지만, 라파엘로 정도의 데생 실력과 다수의 조수를 거느린 화가가 이런 실수를 남긴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시스틴 성모자>(1513-14)를 보노라면 그의 '실수'는 사회적 함의를 담기 위해 의도된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당시 교황이던 율리우스 2세가 전대 교황 식스투스 4세를 기리기 위하여 라파엘로에 수주하여 이탈리아 피아첸차(Piacenza)의 산 시스토(San Sisto) 성당에 남긴 이 그림은 당대 화가 겸 비평가 조르조 바사리가 "진실로 흔치 않은 위대한 예술"로 평했던 명작이다. 푸토들이 초롱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것은 천상에 오른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다. 그들의 좌측에는 피에첸차의 수호성인인 성녀 바바라가, 우측에는 성인 식스투스 2세가 존재한다. 이때 해부학적 지식을 가진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식스투스 2세의 오른손으로 여섯 손가락, 즉 다지증을 가진 듯 보인다. 우선 다지증(polydactyly)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손가락 또는 발가락이 한쪽에 6개 이상 존재하는 경우로, 육지증, 혹은 육손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지증은 합지증(syndactyly: 손가락이나 발가락 중 두 개 이상의 수지가 분리되지 않고 붙어있는 것)과 함께 가장 흔한 손발의 선천성 기형으로, 손에서는 주로 엄지가 하나 더 있는 형태가 전체의 85%를 차지하고 새끼손가락이 둘인 경우가 간혹 발견되며 검지, 중지, 약지가 둘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식스투스 2세는 왼손을 가슴에 올려 성모자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고 오른손 검지로 그림 바깥, 즉 산 시스토 성당 제단의 십자 고상을 가리켜 인류를 위해 희생될 예수의 미래를 조심스레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식스투스의 검지와 엄지 사이 손바닥 쪽에 검지가 하나 더 있는 듯 보이는데 문제는 그가 육지증이었다는 기록이 전무하며, 검지가 둘인 것으로 보아 실제 다지증의 손을 묘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라파엘로가 당대 최고 권력가인 교황이 수주한 그림에 해부학적 실수를 남겼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 육지증 사례는 도상학적으로 읽혀야 할 것인데 그 의미에 관해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첫째는 여섯 번째라는 의미인 라틴어 이름 식스투스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티스트의 서명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구약 성서의 사무엘서에는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여섯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진 불레셋인을 물리친 이야기가 나오고, 그들이 라파(Rapha), 아라파(Arapha) 혹은 르바임(Rephaim)의 자손이라 소개된다.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상기시킬 도상을 그림에 도입했을 것이란 가설이다. 세 번째는 14~16세기 유럽에서는 다지증을 가진 신생아 탄생 빈도가 높았고 이를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증표로 여겼다는 것이다(다지증 환자가 많았던 것은 유전학적으로 의미가 있다. 다지증 형질은 정상형질에 대해 우성형질이라서 다지증 형질과 정상 형질 사이의 자식도 50% 이상의 확률로 다지증을 갖는다). 19세기 신비주의자 막스 하인델(Max Heindel)은 다지증이 기독교적 현상의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는 특별한 능력으로서의 '육감(sixth sense)'을 가진 자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한다. 성자를 위한 성부의 계획을 위대한 육감으로 파악한 자로서 식스투스 2세의 존재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의 입장에서 볼 때 다지증은 수술을 통해 치료·교정할 대상이다. 주로 1~2세 사이에 수술을 권장하는데, 필요에 따라서는 뼈의 일부를 자르기도 하고 철심을 이용하여 당분간 관절을 고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다지증을 이루는 두 개의 손가락의 크기가 거의 비슷한 경우에는 두 개의 손가락을 조합하여 한 개의 손가락으로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 경과가 좋으나 수술 후 합병증으로 관절이 이상 강직 혹은 이완 현상을 보이거나 신경 손상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다지증이 터부시되지 않고 기능적 문제가 없다면 수술만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르네상스인들의 지혜가 빛을 발한다. 그들은 다지증을 기피하거나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대신 이를 일종의 신의 은총으로 보았다. 라파엘로는 종교화의 주제적 한계를 넘어 남들과 다름을 혐오의 근거로 삼는 시선을 버리고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가질 것을 당부하고 있다. 400여년의 시간과 문화권의 차이를 뛰어넘어 여전히 라파엘로의 <시스틴 성모자>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비단 아름다운 색채의 운용이나 재현력, 혹은 위대한 성인들의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약자 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인류애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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