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로 그린 여인…'한국의 클림트' 떠올라

입력 2022-08-01 17:11   수정 2022-08-02 00:24


‘칠흑같이 어둡다’는 말에서 칠흑은 옻칠의 검은색을 뜻한다. 옻칠로 그리는 그림은 수행에 가깝다. 색을 올리고 갈아내고 또 올리고 갈아내는 작업을 5~6개월 반복해야 겨우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작업 과정은 고된 노동에 가깝다. 옻칠한 캔버스를 습식 사우나처럼 온도와 습도가 높은 곳에서 말린 뒤 사포로 힘껏 밀어내고 또 칠한 뒤 말린다. 이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는데 혹여 피부에 옻이 오를까 봐 한여름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을 입고 작업한다.

해외에서 ‘KIMMI’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동양화가 김미숙 작가(39·사진)는 옻칠로 동양의 여인들을 그린다. 1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아트갤러리에서 ‘영원한 찰나’ 개인전을 여는 김 작가는 “옻칠화에는 흠 없이 완벽한 것보다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상처를 통해 얻어진 강인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옻칠은 주로 공예 분야에 많이 쓰여온 동양의 전통 기법이다. 국내에선 옻칠을 배우는 과정이 길고 험난해 명맥이 끊길 위기다. 하지만 김 작가는 그 어려운 과정 속에서 탄생하는 ‘영속성’에 주목했다.

“견고하게 코팅된 옻칠은 도자기 유약처럼 뛰어난 항균과 방습 효과로 천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습니다. 물속에 잠겨도 뒤틀리거나 변형되는 법이 없어 ‘수중전시’도 가능한 유일한 회화 재료예요.”

그가 옻칠로 완성한 그림 속 여인들은 몽환적인 눈으로 보는 이들을 응시한다. 그 안엔 동양의 산수화와 반짝이는 자개, 금박, 은박 등이 녹아 있다. 옻의 원료에 천연 안료를 섞어 표현한 색감은 오묘하고 은은하다. 물감은 모두 만들어서 쓰고, 그 위에 옻칠을 더하면 그 색은 점점 짙어진다.

“옻칠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효모’로 그리는 그림이에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옻칠 나름의 상처가 생긴다는 점이 일반 회화 기법보다 훨씬 매력적이죠.”

성신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김 작가는 재료의 보관과 복원, 손상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재료와 형식에 새롭게 도전하게 됐다. 정광복 작가에게 옻칠의 기초를, 한호규 KAIST 박사에게 재료연구학을 배웠다. 현재는 옻칠의 대가인 칠예가 전용복 선생을 사사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섬세하고 화려한 기법으로 외국에선 클림트의 작품과 함께 자주 언급된다.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전통적 재료를 복원해 세련된 현대화로 만드는 작가의 작업은 한국적 아름다움의 정수를 세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오는 16일까지.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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