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영국 기관총에 아프리카 '추풍낙엽'…유럽 각국도 긴장

입력 2022-09-05 10:00  


19세기 중반만 해도 아프리카 내륙은 ‘미지의 세계’였지만 1880년대부터 1900년 사이 수천 개의 아프리카 내륙 왕국은 40개의 국가로 재편됐고, 그중 36개는 유럽 국가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된다. 아프리카는 영국에 정치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지역이라기보다 알짜배기 최대 식민지인 인도로 가는 길목 내지 인도를 보호하기 위한 완충장치 역할을 했다. 인도로 가는 배들이 연료로 사용할 석탄을 보관하는 장소의 의미로도 개척됐다.

이 같은 유럽의 확장 배경에는 금융과 무력의 결합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맥심 기관총으로 상징되는 기술 우위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맥심 기관총은 원래 미국에서 개발됐지만 개발자 하이람 맥심은 언제나 영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런던의 허튼가든에 있는 지하 작업장에서 맥심 기관총 프로토타입이 작동할 수 있게 되자 총을 시험해볼 수 있도록 저명 인사들을 초청했다. 1884년 영국에서 맥심건컴퍼니가 설립됐을 때 영국의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경이 이사로 참여했고 로스차일드의 은행에선 1900만 파운드의 자금을 제공, 맥심컴퍼니와 노르덴펠트총기사의 합병을 지원했다. 이어 로스차일드가는 “백인은 지구상의 더 많은 곳에 거주할수록 인류 복지에 더 이바지한다”는 신념을 지닌 세실 로즈와 합심해 아프리카 진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맥심 기관총의 능력이 여실히 드러난 것은 1898년 9월 수단에서 발생한 옴두르만 전투에서였다. 사막 부족 연합군이 역사상 최강 제국의 정규군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 전투는 잔혹한 학살극으로 마무리됐다. 사막 부족군이 영국군에 비해 수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영국의 맥심 기관총 앞에 말 그대로 최소 1만여 명이 몰살됐다. 나일강변 제방인 옴두르만에서 사막에 거주하는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과 대영제국의 잘 훈련된 기독교 병사들이 ‘문명의 충돌’을 벌였는데, 사막 부족 연합군 5만2000여 명은 전통대로 검은색과 녹색, 흰색 깃발 아래 5마일에 달하는 행렬을 이루며 영국군을 향해 돌진했다.

키치너가 지휘하는 영국군 2만 명은 몰려드는 아랍 기병대를 바라보고 있다가 연습 사격하듯 ‘킬링 존’에 들어온 적군에게 기관총을 난사했다. 맥심 기관총과 마티니-헨리 라이플, 첨단 통신장비와 배후 나일강에 정박한 군함 함포의 지원을 받은 영국군에 구식 머스킷총과 창, 칼로 무장한 사막 부족 연합군은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학살당했다.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청년 윈스턴 처칠(그는 사막 부족 연합군의 용맹함에 큰 인상을 받았다)은 당시 전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맥심 기관총이 불을 뿜으면서 총열을 식힐 물이 동날 지경이었다. 기관총의 탄창이 비어서 땅에 떨어질 때마다 적군의 시체가 수북이 쌓였다. 전투 기간 내내 총알이 적군의 살을 뚫고 들어갔고 그들의 뼈를 부수고 갈가리 찢어놨다. 피가 상처로부터 콸콸 쏟아져 나왔고, 포탄과 총탄의 굉음과 먼지 속에서 그들은 고통받고 탄식했으며 죽어갔다. 우리에게 달려들던 적들은 엉켜서 산무더기처럼 쌓였고 후방에 있던 적들은 공포에 질려 멈춰선 뒤 산산이 흩어졌다.”

옴두르만 전투의 희생자 중 95%는 아랍 사막 부족 연합군이었고, 최소 전 병력의 5분의 1 이상이 사망했다. 반면 영국군과 그 휘하 이집트군 부상자는 400명 미만이었고, 영국군 사망자는 48명에 불과했다. 영국은 옴두르만 전투에 대해 “과학기술이란 무기로 야만에 대해 획득한 가장 상징적인 승리”로 평가했다. 산업화된 유럽과 원시적인 아프리카 간 기술 간극의 심연을 절실히 보여준 셈이다.

일방적인 원사이드 게임으로 치러진 옴두르만 전투는 유럽 주요 강대국에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영국군의 압승을 목도한 독일군 티데만 대령은 “아랍 병사의 4분의 3은 맥심 기관총에 쓰러졌다”며 영국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은 그에 필적할 만한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이는 당시까지 맥심 기관총의 가치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독일이 맥심 기관총 보급을 강화하는 조치로 이어진다. 독일 육군은 1908년까지 맥심 기관총을 육군의 기본 장비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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