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前 국회의원 "국민·공무원·사학연금 재정통합은 당연…빨리 국민 설득 나서야"

입력 2022-09-04 17:55   수정 2022-09-05 00:31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대중에게 이름을 크게 각인시킨 건 2020년 8월.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국회 연설 때문이었다. 5분짜리 짧은 연설을 통해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임대차 3법의 문제점을 임팩트 있게 비판했다. ‘어려운 경제 문제를 저렇게 쉬운 언어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정치인이 있었나’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해 겨울 여당의 국가정보원법 개정 폭주를 막기 위해 나선 12시간47분짜리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연설은 그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켰다. 정책과 정치, 문무를 겸한 ‘루키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다 지난해 8월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염치 있고 책임 있는 정치’를 외치며 국회의원직을 던졌다. 그의 부친은 이후 논란이 된 토지를 매각해 차액을 전액 기부했다. 여의도를 떠난 뒤 그는 여전히 바쁘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과정에서 맹활약했고, 유튜브와 강연, TV토론에서도 여전히 인기 상종가다. 그를 만나 최근 정치 상황과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한 2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답변은 막힘이 없었다.

▷유튜브 채널 ‘윤희숙TV’ 구독자가 20만 명에 달한다. 어려운 경제 콘텐츠인데 인기가 있다.

“나도 깜짝 놀랐다. 지난해 4월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1년 내 구독자 10만 명을 채우면 백운대 꼭대기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겠다고 했다.(웃음) 그런데 벌써 20만 명이다. 그만큼 상식에 맞는 정책과 정치에 목말라하는 국민이 많다는 얘기 아니겠나.”

▷최근 친정인 국민의힘 의원연찬회에서 ‘국민들 보기 부끄럽지 않으냐’고 일갈했다.

“국민의힘 사태의 핵심은 공인의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적 잣대가 필요하다. 당장 억울하더라도 ‘선당후사’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힘 내홍에는 공적인 내용이 없다. 공천권, 당권을 놓고 양쪽이 ‘끝까지 가겠다’고 싸운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든, 이준석 전 대표든 누군가 먼저 물러서는 사람이 공인 의식이 남아 있는 사람임을 입증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새 정부는 효율적 정부와 시장경제 등 방향을 잘 잡았다. 이제 2024년 총선을 이기는 게 중요하다. 총선에서 이겨야 개혁에 성공할 수 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원전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 개입,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사건, 대장동 등 수많은 권력형 비리 의혹을 덮을 순 없다. 최대한 정확하면서도 짧게 사정을 마치는 게 중요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재정·복지 전문가다. 최근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은 어떻게 평가하나.

“내년 지출예산(639조원)은 올해 본예산 대비 5.2% 증액이다. 이전 정부 5년간 어마어마한 확장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에 갑자기 긴축으로 돌아서긴 힘들다. 중요한 것은 균형재정에 대한 의지다. 그런데 여전히 수십조원의 적자국채 발행을 예고하고 있다. 내년엔 그렇더라도 장기적으로 어떻게 균형으로 가겠다는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어 아쉽다. 또 공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현금 지출이 늘어나는 것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새 정부가 연금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알다시피 연금개혁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전에 어느 정도 매듭을 지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천금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내년 초 재정추계 결과가 나오기 전에라도 왜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이 필요한지 설득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총선에서 이기면 곧바로 연금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모수개혁’만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모수개혁은 이미 늦었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 지금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2055년 기금이 고갈된다. 그 전에 국민연금 제도 자체가 붕괴할 것이다. 낸 만큼도 못 받을 게 뻔한데 누가 연금을 내려 하겠나. 30년 후에는 젊은이들이 지하철을 탄 노인들을 보며 저 사람이 나의 ‘짐’이라고 여기는 시대가 올 것이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혁도 필요하지만,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재구조화나 공무원연금 등 기타 연금과의 재정통합 등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재구조화는 어떤 형태로 이뤄져야 하나.

“현재 국민연금 평균 급여액이 약 57만원이다. 50만원도 못 받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받는 기초연금이 40만원이다. 근로자들에게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는 국민연금을 유지하기 힘들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 국민연금 급여는 소득재분배와 소득비례 부분으로 나뉜다. 기초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과 겹친다. 소득재분배 기능을 한 곳으로 몰아주고, 낸 돈과 받는 돈의 연계를 강화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직역연금 통합도 추진하기로 했다.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공무원연금은 공무원 연봉이 적은 상황에서 비리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학연금은 교육을 통해 나라를 튼튼하게 세운다는 ‘교육입국론’에 근거해 도입됐다. 시대가 달라졌다.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직업을 꼽으라면 공무원과 교사다. 개별 연금을 운용할 유인이 적어진 것이다.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은 더 많은 돈을 납입하기 때문에 혜택의 폭이 더 크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국민연금을 개혁한다면 동일한 기준으로 특수직역연금 개혁도 불가피하다. 재정통합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건강보험재정 적자도 크게 늘었다.

“건강보험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과제가 있다. 불합리한 보험료율 부과 체계를 개선하는 것과 지출 구조조정 문제다. 우선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보험료율 부과 체계에 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소득은 없지만 부동산만 가지고 있는 노인들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건강보험료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노인들에게 집 팔고 싼 곳으로 이사를 가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적 갈등을 내포한 문제다. 방만해진 지출 구조조정도 손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소비 탄력성이 높은 항목이 대거 급여 대상에 포함됐다. 초음파·MRI(자기공명영상) 진료 같은 것들이다. 건보 혜택을 준다고 하면 당연히 수요가 늘 수밖에 없는 진료 항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런 항목의 의료건수가 크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상황이 개선되면 건보 재정에 엄청난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신발 속 돌멩이’를 뺀다며 규제 완화 의지를 밝혔지만, 대표 규제인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논의가 연기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10년 전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도입했다. 그러나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는 게 이미 실증됐다. 규제 도입 이후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온라인 쇼핑을 한다. 대형마트와 주변 상권이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생하는 사례도 늘었다. 실효성이 없는 헛다리 규제임이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정확한 데이터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으니 목소리가 큰 쪽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책 홍보가 아니면 ‘전통시장 상인은 약자, 대형마트는 못된 강자’라는 프레임을 극복할 수 없다.”

▷개혁에서 방향만큼 중요한 게 디테일이다. 노동개혁을 내세우면서 노동이사제를 덜컥 수용하고 화물연대 불법 파업에 백기를 드는 식으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

“맞는 지적이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게 있다. 과연 새 정부가 개혁하는 데 준비가 돼 있느냐는 점이다. 화물연대 파업만 해도 핵심 이슈는 안전운임제였다. 안전운임제는 기본적으로 사업자 간 거래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폐지하는 게 맞느냐면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문제였고, 정부가 이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했다. 그러나 주무 부처가 정권 교체 과정에서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일몰이 다가오는데 원청과 지입차주가 어떻게 고유가라는 리스크를 나눠 분담할 것인지, 사회 전체적으로는 또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등에 대한 연구가 돼 있어야 했다. 그런 게 없으니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에 찬성하면 인간적이고, 반대하면 피도 눈물도 없다는 감정적인 여론만 형성되는 것이다. 철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기록적인 물가 상승으로 기준금리 인상 랠리다. 오버슈팅(지나친 금리인상으로 경기를 위축시키는 부작용) 우려가 있다.

“내가 한국은행 편들어주는 날이 오리라곤 생각 못했다.(웃음) 그러나 한은으로선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플레 정점 논란도 있지만, 여전히 물가 목표치(2%)보다 높은 상황이다. 올해 금리를 계속 올리더라도 예상된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셈이다.”

▷학계와 정계를 떠나 보니 소감이 어떤가.

“정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단단한 재료를 만드는 것이다. 국민을 설득하려면 심층적인 연구 결과와 구체적인 수치, 설문조사 결과 등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다. 정치는 이 재료를 토대로 국민 공감대를 얻어내는 일이다. 사람들의 에너지를 결집해 필요한 변화를 일으켜 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자료와 데이터가 있어도 소통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1970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경제학 석사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제21대 국회의원(국민의힘 서울 서초갑)


정리=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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