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공무원이 최고다"…4000년 전 아버지의 진심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2-09-10 11:00   수정 2023-04-27 16:18


“구리 세공사가 되면 손가락이 악어처럼 변하고, 몸에서 물고기 똥 같은 냄새가 난다. 목수는 매일같이 야근해야 하지. 보석상은 밤새 허리를 구부리고 구슬을 꿰어야 하고, 이발사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데다 고객을 찾느라 항상 돌아다녀야 해.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은 흙투성이가 되고, 벽돌공은 오물을 만져야 한단다. (중략) 하지만 서기관(글을 전문적으로 읽고 쓰는 공무원)만큼은 이런 괴로움이 없을뿐더러 가난에 시달릴 일도 없지. 내가 좋은 서기관 학교를 알아봐 놨으니,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서기관이 되거라.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쯤(기원전 2025~1700년경) 이집트의 한 서기관이 쓴 ‘두아케티의 교훈’이라는 글의 일부분을 요약한 것입니다. 아버지인 두아케티가 아들인 페피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권하는 내용이지요. 많은 이들이 내용에 공감했던지, 글은 수천 년 동안 돌이나 파피루스 등에 여러 번 옮겨지며 전해 내려왔습니다. 이런 문서들 덕분에 오늘날을 사는 우리도 당시 사회상과 직업인들의 현실을 알 수 있게 됐죠. 자식이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많은 건 4000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군요.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외계어처럼 보이는 저 글자들, 도대체 어떻게 해석한 걸까요? 수천 년 전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지난 7월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쐐기문자와 생활상을 다뤘을 때도, “어떻게 저 글자들을 해석했는지 알려 달라”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프랑스의 언어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 등 고대 문자들의 비밀을 풀어낸 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언어 천재, ‘로제타석’ 해독해 이집트의 비밀 풀다

오랫동안 서양 사람들은 이집트 유적이나 비석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무늬들을 보며 궁금증을 키워왔습니다. ‘저 무늬는 뭘까? 누가 언제 왜 새겼을까?’ 하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이 무늬들이 글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어의 ~다, ~은, ~는 같은 말, 영어의 be 동사처럼 반복되는 낱말들이 있었고, 일종의 규칙성이 발견되는 등(문법) 언어의 특징을 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해독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상형문자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지요.

이집트 상형문자는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쯤(기원전 3200년) 만들어져 3000년간 중동 지역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지배를 거치면서 그리스 문자와 로마자(알파벳)에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이집트 신전의 신관들만 쓰는 문자로 전락했습니다.

391년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비(非)기독교 사원을 폐쇄하라는 명을 내리면서 이집트 상형문자는 공식 역사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640년경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는 이미 이집트 상형문자가 글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잊힌 문자를 해석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그리스 미케네 문명의 문자(선형문자B)를 해독해낸 영국의 천재 언어학자 마이클 벤트리스(1922~1956)는 “똑같은 내용을 여러 가지 문자로 기록해 놓은 자료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전 같은 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그런 건 없으니, 현실적으로 찾을 수 있는 자료는 왕이 새긴 비석이었습니다. 과거 중동 지방은 여러 언어와 민족이 뒤얽혀 있던 곳.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왕의 위엄을 알리려면 같은 내용을 여러 가지 말로 적어둬야 했겠죠.

이집트 상형문자의 수수께끼가 풀린 것도 이런 자료가 발견된 덕분입니다. 문자 해독의 열쇠는 1799년 이집트에서 발굴돼 지금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인 ‘로제타석’이었습니다. 이 돌엔 이집트 신성문자와 이를 간소화한 이집트 민중문자, 그리스 문자 등 세 가지 언어로 파라오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은혜를 찬양하는 글이 적혀있었죠. 그리스 문자로 적힌 글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서로 맞춰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석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기본적으로 표의문자(한자처럼 하나하나의 글자가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글자)였지만, 표음문자(한글이나 알파벳처럼 말하는 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문자)의 성격도 갖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문자 체계가 섞여 있으니 학자들이 해석할 때 헛갈리기 딱 좋았죠.

이해를 위해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중국에서는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입맛에 맞아 즐길 만 하다)’으로 적습니다. 비슷한 발음(‘커코우커러’)이 나는 단어로 일종의 말장난을 한 거죠.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천자문으로만 한자를 배운 사람은 ‘코카콜라=가구가락’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겁니다. 학자들도 비슷한 상황이었죠.

상형문자를 해독한 건 1822년 프랑스의 ‘언어 천재’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1790~1832)입니다. 그는 열여섯 살에 각종 고대 언어를 비롯한 12개 언어를 마스터하고 18세에 교수가 된 인물. 샹폴리옹은 풍부한 언어학적 지식과 천재적 직관을 이용해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어냅니다. 그가 상형문자를 해석한 직후 프랑스학술원에 달려가 “내가 풀었다!”고 소리친 뒤 피로 때문에 기절했다가 5일 뒤 깨어난 일화는 유명합니다.

문자 해독에 성공한 뒤로도 프랑스와 이집트를 오가며 연구를 이어 나가던 샹폴리옹은 결국 과로로 건강을 크게 해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4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신이시여, 2년만 더, 왜 안 되는 것입니까! 너무 일러, 여기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는데”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지요.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이집트 고대문명에 대한 연구는 훨씬 더 진전됐을 거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고대 문자 풀어낸 열정과 천재성

기원전 31세기~기원전 1세기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남긴 쐐기문자를 해석할 수 있게 된 건 ‘베히스툰 비문’ 덕분입니다. 베히스툰 비문은 이란의 베히스툰이라는 산에 있는 석회암 절벽에 새겨진 글입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제국)의 왕 다리우스 1세(기원전 550~486)의 업적에 대한 내용을 세 가지 언어(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로 담고 있죠.

문제는 이 비문이 산 중턱의 69m 높이 절벽에 있었다는 겁니다. 글을 한 번 제대로 읽어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니 연구가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죠. 이런 문제를 해결한 건 영국군 장교 출신의 헨리 롤린슨(1810~1895)이었습니다. 그는 산 정상에 올라간 뒤 자일을 타고 내려와 공중에 매달린 채 쐐기문자를 종이에 베끼기를 반복했습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가며 10여년 간 고생한 끝에 롤린슨은 1847년 완벽한 복사본을 만들어 냅니다.

학자들은 먼저 고대 페르시아어를 해독하는 것부터 시도했습니다. 핵심은 비문 내용과 고대 그리스의 역사책(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적혀있는 역사를 비교하는 것이었죠. 왕의 이름, 왕의 아버지 이름 등 고유명사들은 좋은 길잡이가 돼 줬습니다. ‘김치’가 ‘kimchi’, ‘김밥’이 ‘kimbob’이라는 사실을 통해 ‘김’을 ‘kim’으로 쓸 수 있다고 추측하는 것처럼요. 일단 고대 페르시아어가 해독되자 학자들은 이를 기반으로 엘람어와 바빌로니아어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마야 문명의 마야 문자는 선교사인 디에고 데 란다 주교(1524~1579)가 남긴 <유카탄 이야기>(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an)라는 책 덕분에 해독이 가능했습니다. 란다 주교가 현지인들에게 직접 글 읽는 법을 물어봐 가며 유카탄 반도의 언어와 역법, 풍습 등에 대해 쓴 책이었죠. 란다 주교 본인이 수많은 원주민을 고문하고 마야 문명의 자료를 불태우는 등 마야 문화를 파괴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다만 이 책에는 부정확한 내용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문자를 해독할 수는 없었습니다. 수수께끼가 풀린 건 1952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출신의 구소련 학자 유리 크노로조프(1922~1999)가 마야 문자 체계의 독특한 특성(상형문자+음절문자)을 밝혀내면서입니다. 학자들은 그의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마야 문자를 속속 해독해냈고, 지금은 전체 마야 글자의 80%가량이 해석된 상태입니다.

놀라운 건 크노로조프가 마야에 가 본 적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야 유적이 있는 멕시코·과테말라와 소련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란다 신부의 자료와 남아 있는 마야의 책 3권만 가지고 골방에서 혼자 글자를 해석해냈습니다. 크노로조프는 일흔이 다 된 1990년에야 과테말라 대통령의 초청으로 과테말라의 티칼 피라미드를 방문해 직접 눈으로 마야 유적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몇천년이 지나도 사람 사는 건 똑같아

고대 문자를 해독한 덕분에 역사학자들은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일상을 상세하게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여러 기록을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정말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37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이 기록한 숨 막히는 잔소리를 한번 보시죠.

“어딜 갔다 왔냐?”(아버지)
“아무 데도 안 갔어요.”(아들)
“왜 집에서 빈둥대는 거냐?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제발 철 좀 들어라. 내가 너한테 나무를 해오라고 했냐, 짐수레를 밀라고 했냐, 쟁기를 끌라고 했냐? 내가 돈을 벌라고 했냐, 나를 먹여 살리라고 했냐? 공부해서 나처럼 필경사(일종의 전문직으로, 대부분 공무원)가 되라니까. 형이나 동생을 좀 본받아 봐라. 너 때문에 밤낮으로 정말 힘들다. 어떻게 맨날 놀기만 하냐. 친척들을 봐라. 너 같은 애는 한명도 없어.”(아버지)

이번 추석 연휴에도 이런저런 잔소리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으실 듯한데요. 수천 년 전 사람들도 잔소리에 괴로워했던 건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요.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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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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