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 K팝에 꽂혔어요"…외국 청년들 한국서 창업하는 이유 [긱스]

입력 2022-09-30 10:42   수정 2022-10-02 15:35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국에서 미국 실리콘밸리로 직접 건너가 창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두 명의 한국인 청년이 실리콘밸리에 만든 스타트업들이 지난해 나란히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오르기도 했죠. 센드버드와 몰로코가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미래의 유니콘을 꿈꾸며 스타트업 업계로 뛰어든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인연으로 한국 땅을 찾았을까요? 한국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한경 긱스(Geeks)가 브라질과 카메룬, 인도에서 온 3명의 외국인 창업가를 만났습니다.


브라질과 한국을 잇는 가상 인플루언서의 세계
큰 키에 사랑스럽게 웃는 눈. 활기차면서도 여유로운 성격을 지는 그의 이름은 테오(Theo)다. 스물한 살로 브라질과 한국 혼혈이다. K팝 아이돌 스타처럼 부담스럽게 잘생긴 남자가 아닌, 옆집에 살 법한, 잘생겼지만 친근한 남자다.

테오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SNS)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가상 인플루언서다. 음식을 좋아해 한국 음식 리뷰어로도 활동하고 있다. 2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요 팬층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브라질의 소녀들이다.

이 가상 인간을 만든 건 방탄소년단(BTS)을 열렬히 좋아했던 한 브라질 여성이다. 지난해 1월 서강대 학생 창업팀 VHP를 설립한 비토리아 벤투라 대표(사진)는 "테오는 한국과 브라질 양국의 문화를 잇는 다리"라며 "그의 차별화된 스토리가 다른 가상 인간 인플루언서보다 강점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벤투라 대표의 K-팝과 남자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한국 남성 가상 인간으로 이어진 셈이다.

브라질 국적의 벤투라 대표는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 K-팝 팬이자 한국인 친구가 많았던 그가 한국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예술이 아닌, 기술과 접목된 새로운 예술을 배우고 싶었다"며 한국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VHP는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 학과 여학생으로 구성된 팀이다. VHP는 'Virtual Human Power'(가상 인간의 힘)의 약자로, 인터렉티브 가상 SNS 인플루언서를 제작하고 이를 통해 마케팅을 제공하는 회사다. 업계 전문가들은 가상 인간을 활용한 마케팅 규모가 올해 16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테오는 인스타그램에 한국어, 영어, 포르투갈어로 작성된 메시지와 함께 사진, 영상을 올린다. VHP는 스토리텔링, 비디오편집, 브랜드 마케팅, 2D 디자인, 3D 디자인 등을 담당하는 총 6명으로 구성된다. 매달 스토리 주제는 팀 회의를 거쳐 정한다. 할로윈, 크리스마스, 새해, 영화 '오징어게임' 등 매달 주제가 바뀐다.

벤투라 대표는 "VHP는 캐릭터의 스토리를 만드는 팀"이라며 "스토리텔링과 문화적 다양성으로 가상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혁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테오를 통해 한국을 브라질에 소개하고, 브라질 문화를 한국 사용자들에게 알리는 노력을 한다. 테오는 서울의 명소를 홍보하는 '글로벌 서울메이트'로 활동하고 있다.

테오는 대학 수업 과제로 시작했다. 벤투라 대표는 2020년 가을 학기에 수강한 경영학 수업에서 가상 인간을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그에게 가상 인간의 영감을 준 건 한 브라질 기업가다. 직전 여름 방학 특강 연사로 브라질 인노바랩(InnovaLab)의 레이날도 노만드 대표가 서강대에 방문했을 때, 벤투라 대표는 무작정 연락을 시도해 직접 만날 기회를 가졌다. 그때 노만드 대표가 '이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AI 얼굴 이미지 생성 사이트를 소개했고, 여기서 가상 인물 아이디어에 착안한 것이다.

이듬해 1월 벤투라 대표는 팀원을 모집해 VHP를 설립했다. 테오의 스토리를 기획하고 얼굴을 만드는 데 거의 6개월이 걸렸다. 테오의 얼굴은 데이터 추출 방식이 아닌, 100% 손으로 작업했다. 주로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패션 콘텐츠로 활동하는 데 반해 테오는 음식 리뷰어로 활동하는 전략을 짰다. 인플루언서를 통해 테오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벤투라 대표는 "K팝 아이돌은 일반 사람들과 거리가 있지만 테오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를 볼 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허구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며 "가상 인간 테오도 그의 팬들 사이에서 이런 감정적인 유대감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VHP는 지난해 10월 DMC산학진흥재단이 주관하는 DMC 이노베이션 캠프 창업경진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11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한 디데이 캠퍼스 리그에서 우수상(K-Growth상)을 받았다.

VHP는 내년 두 번째 가상 인플루언서 출시를 준비 중이다. 벤투라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과 웹 3 미디어를 경험하고 싶다"며 "두 번째 인플루언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졸업 후 본격적으로 VHP 사업에 몰두할 계획이다. 그는 "나중에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는 외국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아프리카 전력난 해결하고 싶은 카메룬 청년
카메룬 출신의 티챠 존슨 펜 대표(사진)가 창업한 에코링크스는 친환경 에너지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태양광 발전 솔루션을 통해 전력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아프리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게 회사의 목표다.

존슨 펜 대표는 카메룬에서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마주했다. 툭하면 정전이 일어났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암흑 속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그러다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에서 연수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접했다. 우연한 기회였다.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연수의 일환이었다. 그렇게 2017년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한동대에 들어가 전기공학 석사 과정을 거쳤다. 그는 "전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이 학문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공부를 마친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 카메룬전력공사에서 일했다. 한국으로 치면 한전에 몸담은 셈이다. 하지만 카메룬을 넘어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퍼진 '전기 갈증'을 해결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문득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떠올렸다. 그는 "처음엔 좋은 공기업 자리를 박차고 나와 먼 곳에서 바닥부터 시작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들었다"면서도 "세계적인 '임팩트'를 주려면 카메룬 밖으로 나가야 했고, 수출 위주 나라인데다가 창업 생태계가 잘 갖춰진 한국이라면 해외 진출에도 용이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0년 한국에서 에코링크스를 세웠다. 자본 없이도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질 좋은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투자자들을 모집해 비용을 대는 사업모델을 고안했다. 또 전자레인지나 인덕션이 없는 아프리카 지역에 고효율 '쿡스토브'를 보급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쿡스토브는 땔감을 이용해 열을 내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화덕이다. 기존 재래식 쿡스토브는 탄소 배출도 늘어날뿐더러 연료 효율도 떨어지고, 주로 이용하는 아프리카 여성층이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지금은 카메룬과 가나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향후 아프리카 대륙 전체로 무대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또 동남아시아나 남미 지역까지 사세를 넓혀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게 비전이다.

ESG 기조에 맞아 성장성도 인정받았다. 아산나눔재단의 데모데이에서 수상했다. 또 한국서부발전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도 선발됐다. SK에코플랜트와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가 공동 후원하는 데모데이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엔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KOTRA 소셜벤처상을 수상했다.

존슨 펜 대표는 한국이 훌륭한 창업 생태계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우선 창업 관련 교육이 많다는 점을 꼽았다. 그 역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수시로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창업허브에서 강의를 듣곤 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글로벌스타트업 센터의 컨설팅도 도움이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창업을 장려하는 각종 행사가 많았고,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선배 창업가들과 인연을 맺을 기회도 생겼다"며 "창업가가 생존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잘 마련돼 있는 편"이라고 했다.

다만 초기 기업 대표들이 지원받을 때 거쳐야 할 행정 업무가 지금보다 간소화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류 작업에 시달리느라 회사 일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또 인맥이 부족한 외국인 창업가가 좋은 팀원들을 구할 수 있도록 '인재 풀'을 더 폭넓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에듀테크 창업가가 된 인도 최고 명문대생
에듀테크 스타트업 태그하이브를 창업한 아가르왈 판카즈 대표(사진)는 인도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다. 삼형제 중 둘째다. 변변한 학교가 잘 없어 유치원생 시절부터 집에서 200㎞나 떨어진 곳으로 가 기숙사 생활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생활하며 자립심을 길렀다. 5살 꼬마가 아침에 혼자 일어나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등교했다.

처음에 그는 공무원이 되려 했다. 부모님도 그가 공무원이 되길 원했다. 인도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IIT(인도공과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공무원을 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비리의 온상이던 인도 공무원 사회에 반감이 생겨서다. 그래서 취업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2004년 삼성전자가 IIT에 찾아왔다. 해외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장학 프로그램이었다. 삼성의 눈에 든 그는 곧장 한국으로 날아왔다. 이때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가족들도 '한국의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잘 알았기에 적극 응원해줬다. 2004년엔 서울대에 입학해 석사 학위를 땄고, 2006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의 지원을 받아 하버드에서 MBA 과정도 거쳤다. 성공한 직장인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계속 밟힌 건 고향의 열악한 교육 환경이었다. 인구는 많은데 도시별 격차가 심해 인프라는 잘 갖춰지지 않았다. 당시 연구하던 태그(Tag) 시스템을 교육 분야에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삼성전자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에 지원해 선발됐다. 본격적으로 창업의 길에 뛰어든 셈이다.


태그하이브는 스마트 스쿨을 구현하기 위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클래스 키'와 '클래스 사띠'를 내놨다. 리모콘 형태의 이 도구를 통해 교사와 학생들이 수업 중에 소통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나 PC가 없어도 교사의 스마트폰과 연동할 수 있어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인도 공립 학교에서도 쓰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태그하이브는 인도에 진출하려는 한국 교육 회사들을 도와주려 한다. 판카즈 대표는 "IT 강국인 한국과, 14억 인구의 인도 시장에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건 큰 강점"이라며 "한국 기업과 인도 시장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판카즈 대표는 "한국 사회 문화의 큰 장점은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관공서 등에 특정 업무를 신청했을 때 10일 걸린다는 안내를 받으면 10일 이내에 실제로 처리가 된다는 얘기다. 그는 "시간을 잘 지키는 문화 덕분에 일처리가 깔끔하다"며 "신경 쓸 문제들이 태산인 창업가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인도의 시너지도 기대하고 있다. 인도는 14억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 젊은층으로 구성된 데다가 중산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빠르게 변화하는 문화에 더해 시스템과 절차가 잘 갖춰져 있다. 판카즈 대표는 "인도의 '3D'인 민주주의(Democracy), 인구(Demography), 수요(Demand)와 한국의 '3S'인 속도(Speed), 똑똑한 인재(Smart & Skilled people), 잘 갖춰진 체계(System)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종우/허란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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