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당신들은 좌파라서 참 좋겠다"

입력 2022-09-27 17:42   수정 2022-09-28 00:20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것은 피눈물 나는 일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2017년 8월 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서울성모병원을 찾아가서 한 말이다. 환자들을 둘러앉힌 채 ‘건강보험 보장 강화정책’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모든 국민이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 어떤 질병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초음파·MRI(자기공명영상) 등 고가 진료항목을 급여 보장 대상에 대거 추가하면서도 “보험료 인상폭이 높아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호기롭게 출발한 ‘문재인케어’의 이후 상황은 전문가들이 우려한 대로다. 공짜 심리가 의료 과소비를 부추기며 건보재정이 순식간에 거덜 났다. 7년 동안 흑자를 냈던 건보재정수지가 곧바로 적자 늪에 빠졌다. 그의 약속과 달리 5년 새 직장인들의 건보료가 27%나 올랐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측근들의 공통된 평가 가운데 하나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정책들이 ‘착하다’는 걸 대표적 근거로 꼽는다. 건보정책만이 아니다. 취임 후 사흘 만에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환호하는 비정규직들 앞에서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자임했다. 이 역시 이후 진행 상황은 정반대다. 그의 다짐과 달리 재임 5년 동안 주 36시간 이상 근무하는 정상적 일자리가 200만 개 넘게 사라졌다. 일자리 확대에 필수적인 기업 투자 의욕을 꺾는 친노조 일변도 정책을 밀어붙인 업보이지만, 그런 인과관계를 일반 국민이 금세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은 열심히 노력하는데 기업들의 이기적인 행동 탓”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정치 무대에서 ‘평등’과 ‘약자 보호’를 앞세우는 좌파집단의 구호정치는 힘이 막강하다. 당위론적으로 맞는 말이어서 듣는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평등은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어 모두의 빈곤화로 귀결된다. 세상을 ‘약자’와 ‘강자’로 편 갈라 형편이 나은 사람들을 매도하고 옥죄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세상은 수많은 변수가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상호작용하며 돌아가는 복잡계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그러면 착하게 살지 않겠다는 거냐’는 식의 단순계적 사고방식과 처방을 들이미는 순간 사회 전체의 퇴행과 몰락이 불가피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똑같은 핏줄과 언어, 풍속의 대한민국과 북한이 극단적으로 엇갈린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이 증명한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이 당장의 그럴듯한 정치 구호와 선동에 넘어간다. 미래가 어떻게 되건 당장 내 손에 주어지는 몇 푼의 돈에 더 끌린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치열한 노력과 경쟁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보다 ‘남 탓’을 부채질하며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속삭이는 게 당장 표를 얻는 데 더 도움이 되기 일쑤다. 좌파들에게는 사회 역동성을 꺾는 평등·퍼주기 정책의 결과로 나라가 피폐해져도 전가의 보도와 같은 비책이 있다. ‘가진 자들이 탐욕스럽고 양보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남 탓의 덮어씌우기가 전천후 무기다.

지난 3월 대통령선거에서 그런 무책임을 심판받아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의 요즘 행태가 걱정스러운 이유다.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무기 삼아 좌파 본색을 되레 더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경제 활력 회복대책으로 발표한 법인세·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등의 세제개편안을 ‘초(超)부자 감세법안’이라고 편 가르고,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 증액 등 퍼주기는 더 늘리겠다고 나선 게 단적인 예다. 농민들을 온전한 ‘농업’이 아니라 수백·수천 년 묵은 ‘농사’ 울타리에 묶어두는 양곡관리법을 강행하겠다면서 ‘민생법안’으로 포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이런 좌파정책의 질곡과 덫에서 벗어나려면 유권자들이 깨어나는 수밖에 없다. 세상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왜곡한 채 “좋은 게 좋은 거야”를 세뇌하는 감언이설의 노예로 전락한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1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작년 말 물러나면서 “민주주의는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하는 만큼만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퇴임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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