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고통스러워도 가야할 '긴축의 길'

입력 2022-10-03 17:25   수정 2022-10-04 00:05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긴축적 통화정책을 쓰고, 경기 침체에 대응하려면 완화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쓴다. 기준금리 인상이 긴축적 통화정책의 대표 수단이고, 감세나 보조금 지급이 완화적 재정정책의 사례다. 이 내용은 고등학교 경제 교과에서도 배우는 경제학적 기본 지식이다. 이런 간단한 접근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 즉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날 때다. 쓸 수 있는 경제정책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아니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경기 침체는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부터의 회복이 기대되던 때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올린 기준금리로 경기에 얼음물이 끼얹어진 터라 유난히 고통스럽다. 게다가 미국이 상대적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적은 것으로 판단하고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므로 그 파장이 얼마나 오래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대부분 나라는 일단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상충하는 경제정책을 쓰는 것은 시장에서 돌 맞기 좋은 악수다. 최근 영국이 극명한 사례를 시현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자 법인세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소득세율을 낮추겠다고 발표했다가 영국 국채 가격이 폭락하고 파운드화 약세가 가중됐다. 감세로 인해 정부 수입이 줄어들면 재정 적자가 더 커지고 국가 채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영국의 재정 적자는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고, 일반 정부 부채 규모는 2021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1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곱 번째로 크다. 빚이 이미 많은데 더 늘게 됐으니 정부에 빚을 준 증서인 국채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국채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정부가 빚을 얻기 위해 얹어줘야 하는 이자가 커진다는 뜻이다. 시장이 영국 정부의 결정에 벌금을 물린 셈이다.

완화적 경제정책은 정치적으로 선호된다. 낮은 이자와 적은 세금, 대가 없이 주는 보조금을 싫다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시장이 허용하지 않는 정책이어서 마냥 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많은 나라가 저물가 시대를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인기 영합적인 정책에만 익숙해진 듯하다. 영국 정도 되는 나라에서 이 시국에 감세를 하겠다는 걸 보면 말이다. 영국은 감세뿐만 아니라 민간의 에너지 비용 지원 용도로 약 94조원을 쓰겠다고 했다. 우리 정부도 이미 지난 7월에 법인세율 인하를 포함해 기업의 세 부담 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정부 지출도 같이 줄이겠다는 ‘작은 정부’를 향한 철학을 비쳤다. 한정된 재원은 취약계층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써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했다. 당분간 감세 논의는 쉽지 않겠지만 정부 지출을 조심하는 것만으로도 살얼음판인 국제 경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이 정부의 허리띠를 졸라매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7대 민생입법에 포함된 기초연금확대법, 쌀값정상화법 등은 전 정권에서 부실해진 재정을 회생 불능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악어가 될 수 있다. 법에 의해 정부에 지급 의무가 생긴 지출을 의무지출이라 하는데, 정부가 쓰고 안 쓰고를 결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과 달리 의무지출은 한 번 시작되면 법을 바꾸기 전에는 계속되고 대부분은 점점 늘어나게 마련이다. 의무지출은 종국에는 예산 전체를 잡아먹고 정권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법을 통과시킬 힘이 있는 야당이 재원 마련 방안도 뚜렷하지 않은 무책임한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으니 정말 답이 없다.

물론 정부와 여당이 탄탄한 모습을 보였다면 야당의 폭주가 크게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현 상황에 정부와 여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이 근본적으로 대외적 요인이 선결돼야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도, 재정은 우리 몫이고 다시 건전하게 돌려놓아야 한다. 더구나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것이 최우선인 지금 엇박자의 재정정책은 금물이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언제 웃는 날 올까 싶지만 한 분기 남은 2022년을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품고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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