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은의 생명의학] '세계 2위'라는 정부 R&D의 허상

입력 2022-10-05 17:51   수정 2022-10-06 00:18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연구개발비 비율은 1.09%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민간을 포함한 전체 연구개발 투자액 비율도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 2위다. 하지만 핵심 기술의 대외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고부가가치 특허가 미흡해 만성적인 기술무역수지 적자 상태가 지속되는 등 한국의 과학기술은 좀처럼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 연구개발비 투자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연구개발 투자 철학과 전략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 우선 연구개발 가치사슬에서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연구개발 단계별 국가 연구개발비 투입 비중을 되짚어봐야 한다. 지난해 정부가 집행한 연구개발비 26조5791억원 가운데 48.9%가 개발 단계 연구에 투입됐다. 기초연구 비중은 27.5%에 불과했다. 이는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비 투자 목적이 여전히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에 치우쳐 있음을 의미한다.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기초·응용 연구에 정부 지원을 집중하고 개발은 시장에 맡기는 선진국형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

연구자 자율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 연구개발비 지원 방식을 바꿔야 한다. 세세한 조건을 달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는 큰 틀의 연구 주제만 제시하고 필요한 연구개발비 규모와 연구 기간, 연구진 구성 등을 연구자 주도로 설정하고 수행하는 개방형 연구자 자율 과제를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나아가 선도형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선 연구자의 창의성이 낳은 자발적이고 다양한 보텀업 과제를 중시하고 정부 주도의 톱다운 프로젝트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정부 연구개발비 지원을 그랜트형과 투자형으로 구분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초연구에 그랜트형 지원을 확대하고 다수-소액 연구비 지원과 경쟁력 있는 연구자에 대한 안정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또한 개방형 자율 과제와 창의적 보텀업 과제를 과감히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 기초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기초과학 수준이 선도국가 진입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응용·개발 연구에는 나눠주기식 배분이 아니라 성과지향 투자 방식을 도입해 연구개발 성과의 사회적 임팩트를 강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산학연 협력연구에 대한 제도적 지원 등으로 응용·개발 연구의 민간 연구개발비 비중을 높이고 정부 연구개발비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정부가 직접 기획·지원하는 대신 민간 자율 주도 산학연 협력연구에 정부 매칭 펀드를 투자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등 응용·개발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어 사회적 성과 창출을 이끌어내야 한다.

연구개발 과제 선정 및 성과 평가 체계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전문성과 공정성 등 평가 역량을 갖춘 평가자 풀 확보를 넘어 이들이 사명감과 보람을 느끼며 능동적, 적극적으로 평가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온라인 비대면 평가 및 심층 토론 평가 확대, 피평가자 및 평가자에 대한 평가 결과 피드백 강화, 평가자 인센티브 확대를 통한 책임감과 자긍심 고취 등이 필요한 배경이다. 연구개발 성과 평가 체계도, 특히 응용·개발 연구는 논문이나 특허 등 정량적 지표에서 탈피해 사회적 임팩트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

한국이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하려면 과학기술을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과학기술 정책과 투자의 궁극적 목표를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을 넘어 인류 난제 해결에 둬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선도국가 대열에 올라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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