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가문이 없었다면, 지금의 서양 미술은 없었다

입력 2022-10-13 17:58   수정 2022-10-14 02:41


역사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합스부르크’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다. 세계사 교과서나 미술사 교양 수업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 뭘 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산업혁명(영국)과 프랑스 혁명(프랑스)처럼 세계사 시험 문제로 나오는 ‘혁명적 사건’이 없었고, 미술사적으로도 르네상스와 인상주의만큼 극적인 변화를 주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한목소리로 “합스부르크 가문을 빼놓고는 서양 역사와 미술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수백 년간 유럽 대륙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고 프랑스 혁명과 1차 세계대전 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근대 서양사를 좌지우지했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예술계의 거장들을 후원하고 명작을 수집한 ‘최고의 컬렉터 가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합스부르크 600년-매혹의 걸작들’ 전시의 중요성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1) 바로크 문화의 정수를 품은 합스부르크

‘바로크-로코코.’ 중·고등학교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이전까지 300여 년간 서양 미술의 주요 사조를 이렇게 정리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바로크 문화의 정수를 품고 있다. 전원경 세종사이버대 교수는 “바로크라는 말 자체가 합스부르크 가문이 널리 확산시킨 단어”라며 “합스부르크 가문은 바로크 문화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바로크 문화의 대표작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를 필두로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등 바로크 미술 최고 거장의 걸작을 감상할 수 있다.

빈미술사박물관이 자랑하는 얀 브뤼헐의 회화와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네덜란드 지역) 회화 거장인 안토니 반 다이크의 초상화 ‘야코모 데 카시오핀’, 16세기 베네치아의 위대한 화가 베로네세의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 등이 전시된다.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당시 유럽 미술을 대표하는 명화들”이라고 설명했다.
(2) 마리 앙투아네트 등 수십 점의 초상화

왕족의 초상화가 대거 선보인다는 점도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수도를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프라하로 이전한 루돌프 2세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근대화의 주역인 마리아 테레지아,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루이 16세의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굵직한 인물의 초상화만 해도 20여 점에 달한다. 400여 년간 유럽 역사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이들의 얼굴과 함께 전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복잡한 근대 유럽 역사가 저절로 머릿속에 정리된다.

미술사 측면에서 봐도 이들의 초상화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절대왕정이 확립되기 시작한 16세기 이후 유럽 군주들은 최고의 초상화를 남기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초상화는 자신이 왕에 걸맞은 인물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전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당대 최고의 화가들만 왕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고, 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왕족의 힘과 위엄, 장대함과 현명함을 그려냈다.
(3) '가장 유럽다운 유럽'이 담긴 공예품

오스트리아 빈은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럽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유럽에서 태동한 미술과 음악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데다 오랜 기간 유럽을 통치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이 거리 곳곳에 녹아 있어서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럽 사람들도 둘러보고 싶어 하는 빈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유서 깊은 빈미술사박물관의 국보급 그림들과 함께 다양한 공예품, 박물관 굿즈(기념상품)까지 그대로 한국에 옮겨온 덕분이다. 왕족이 입었던 갑옷, 1600년께 제작된 태피스트리(직물 공예품) 두 점 등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성기에 제작된 각종 수준 높은 공예품이 웅장했던 궁정의 분위기를 실감 나게 전해준다.
(4) '소프트 파워' 중요성 새겨주는 빈의 문화

한때 유럽 전역을 호령하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패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문화 분야에서의 명성은 여전하다. 수많은 음악 거장과 함께 21세기 들어 엘프리데 옐리네크(2004년)와 페터 한트케(2019년)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한 곳이 오스트리아다. 미술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배출했고, 최근 들어서는 현대 미술계에서도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들이 비중을 키워나가고 있다.

중부 유럽의 작은 내륙 국가가 이렇게 문화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지도자들이 일찍이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1776년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하라고 명령한 게 대표적인 예다. 국민들도 이에 부응해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가꾸는 데 힘썼다. 이런 노력의 결실이 모인 빈미술사박물관 컬렉션은 치열한 ‘문화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한국인들에게도 시사점을 남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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