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조상, 수천년 전 '일본 원주민' 쫓아냈다"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2-10-15 09:00   수정 2023-04-27 16:21


한국인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민족이라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처음 한민족을 이룬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쩌다 한반도에 정착했을까요.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라는 유명한 동요의 앞부분처럼, 우리는 그 답을 ‘단군 할아버지’에서 찾습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단군의 아버지는 신(환인)의 아들인 환웅, 어머니는 사람이 된 곰(웅녀)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그렇다면 한국인은 신과 곰의 피가 반반씩 섞인 존재라는 얘긴데, 신화란 건 원래 이런 식이니 그대로 믿기는 어렵겠죠. 하늘을 숭배하는 부족과 곰을 숭배하던 부족이 합쳐져 고조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지난주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반테 페보 박사의 DNA 연구 결과를 통해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을 알아봤습니다(‘탈모·비만·당뇨의 고통, '이 사람들' 때문이었다’). 5만년 전까지 인류의 대략적인 역사도 알아봤죠. 그때 약속드린 대로, 이번 주 코너에서는 한민족이 언제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인류는 한반도에 어떻게 왔을까

지난 시간 이야기부터 아주 짧게 복습해 보겠습니다. 우리 조상인 현생 인류는 3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탄생했습니다. 5만~6만년 전쯤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와 중동을 평정한 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등 ‘친척’들을 흡수합병하거나 멸망시키며 전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했죠.

여기서부터 그 뒷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중동 밖으로 진출한 사람들 중 왼쪽(유럽 방향)으로 향한 이들의 자손들은 영국까지 나아갔고, 오른쪽(아시아 방향)으로 간 사람들의 자손들은 계속 뻗어나가 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 대륙까지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빙하기에 해수면이 내려가고 대륙 사이를 잇는 땅이 드러났을 때를 틈타 걸어갔죠. 미국 원주민과 호주 원주민 등은 이런 ‘장거리 여행자’들의 후예입니다. 어쨌거나 세계 각지에 정착한 사람들은 원주민들과 피를 섞고 환경에 적응도 하면서 점차 서로 달라졌습니다.


위는 현생인류가 아시아 방향으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제일 첫 번째로 갈라진 건 인도 쪽이고, 이후 동남아 쪽에서 커다란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이후 지금의 중국 지역으로 퍼져나간 현생 인류는 여러 갈래로 갈라집니다. 위쪽으로는 양쯔강(장강)을 거쳐 황허(황하)에 다다른 뒤 시베리아와 한반도 쪽으로 퍼졌겠죠. 혹시나 이걸 “한국인의 뿌리는 중국”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은 없기를 바랍니다. 이만큼 옛날 일이 되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인도 중국인도 미국인도 모두 뿌리는 아프리카죠.

그렇다면 한국인의 조상이라고 할 만한 집단은 언제 어디에서 형성됐을까요. 이걸 밝히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일단 한반도는 DNA 연구를 하기에 불리한 곳입니다. 땅이 산성이라서 뼛속에 있는 DNA가 삭기 쉽거든요. 이런 점에서는 단군 할아버지가 터를 잡으신 ‘위치 선정’이 좀 아쉽죠. 여기에 더해 북한 쪽에서 나오는 자료는 쓸 수가 없습니다.

자료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의미 있는 DNA 연구 결과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세부적인 사항은 달라도 가리키는 방향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지난해 11월 네이처지에 실린 다국적 연구팀의 논문(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이 제기한 설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세계적인 유전학자인 데이비드 라이크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쓴 <믹스처>, 2020년부터 올해까지 박종화 UNIST 교수연구팀의 연구 결과 두 건을 통해 일부 설명을 보완했습니다.
단군 할아버지·웅녀, 5000~7000년 전 만났네

이야기는 4만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는 곳만 달랐죠.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 같은 개념도 아예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이들은 서로 다른 종족이 돼 갔습니다.

최근 여러 DNA와 고고학 분석에 따르면 지금의 한국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5000~7000년 전입니다. 한국인을 만든 두 종족은 황하를 중심으로 중국 동부 지방에 퍼져있던 ‘황하’ 집단, 몽골~중국 북부와 러시아 일부~한반도 중·북부에 퍼져있던 ‘아무르’ 집단이고요. 단군신화에 단순 비유하면 한쪽은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 한쪽은 웅녀가 되겠네요.


구석기시대 때 두 종족은 서로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각자 동네에서 먹고 살기도 바빴죠.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면서 식량 생산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북쪽으로 뻗어나가던 황하 집단과 남쪽으로 확장하던 아무르 집단은 요동·요서 지방에서부터 한반도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마주칩니다. 그리고 서로 피를 섞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집단이 태어납니다.

편의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이 집단을 ‘한국인의 조상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들은 요서·요동 지방과 한반도에 자리잡았고, 원주민들을 흡수하고 서로 결혼해 자식을 낳기를 반복했습니다. 처음에 각양각색이었던 여러 종족들은 이렇게 대를 거듭하며 서로 비슷해져 갔습니다. 그러면서 ‘한민족’이라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종족이 만들어졌지요.

이때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는 또 다른 종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기장 농사를 주로 짓던 ‘조몬’인 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인의 조상들에게 한반도의 주도권을 단숨에 빼앗겼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한테 밀려난 것처럼요. 한국인의 조상들은 벼농사를 지어서 생산력이 훨씬 높았고 인구도 많았거든요. 상대가 되지 않았죠. 결국 조몬인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밀려납니다.


3000년 전부터는 한국인의 조상들이 일본 땅으로 대거 건너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건 수백만 명인데, 일본 원주민인 조몬인 수는 불과 7만5000여명에 불과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현대 일본인은 한국인의 조상과 조몬인이 9:1 정도의 비율로 섞인 결과라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①5000~7000년 전쯤 지금의 중국 황하 지방 쪽에 살던 사람들(남방계)과 몽골~만주 지방에 퍼져 살던 사람들(북방계)가 광범위하게 만나 피를 섞었습니다. ②이들은 한반도를 차지했고요. 서로 동화되며 점차 한민족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③이 중 일본으로 넘어가 원주민(조몬인)과 섞인 사람들이 일본인의 조상입니다. 같은 역사와 언어, 문화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한국인은 여전히 단일 민족입니다만, 단일 혈통은 아니었네요. 이쯤 되면 애초에 단일 혈통이라는 게 뭔지도 애매해집니다. 아프리카 일부 부족을 제외한 세계인 99%는 혼혈이니까요.
유전자가 우리에게 주는 충고

이처럼 유전자 분석은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알려줍니다. 예컨대 영국 생거 연구소의 크리스 타일러-스미스 박사는 2003년 유전자 분석을 통해 과거 몽골 제국이 지배했던 지역에 수백만 명에 달하는 칭기즈칸의 직계 자손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죠.

칭기즈칸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5000년 전쯤 청동기시대가 시작되고 빈부격차가 커졌을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게 학자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적은 수의 부자 남성들은 아주 많은 자손을 남겼고, 대부분의 가난한 남성들은 대가 끊겼던 흔적이 발견됩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 몇몇 부자들의 후손이죠. 불평등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 사회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죠.

라이크 박사는 유전자 분석의 가장 큰 장점으로 “사람들의 편견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꼽습니다. 예컨대 나치 독일은 세상에서 제일 우월한 인종이 ‘아리아인’이고, 그들의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은 게 독일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매듭무늬 토기를 비롯한 아리아인 특유의 유물들이 독일에서 주로 발견된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유전학과 고고학 분석을 통해 해당 유물들이 러시아 쪽 스텝(초원) 지역에서 넘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나치가 “열등한 종족이 사는 곳”이라고 했던 동네입니다.


인종차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유전학자 고(故) 리처드 르원틴 하버드대 교수는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인종 간의 평균 차이보다 개인 간의 차이가 여섯배나 크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특징을 정하는 건 인종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이라는 거죠. 아주 쉽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배우 강동원과 마동석, 미국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더 락) 중 비슷한 사람을 두 명 묶어 보라고 하면 누굴 고르시겠습니까. 적지 않은 분들이 마동석과 더 락을 고를 겁니다.

유전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우리 인간은 70억명이나 되지만 먼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끈으로 모두 복잡하게 연결돼 있고, 서로 다른 것 같아도 실은 먼 친척들과 비슷한 존재라고요. 앞으로도 인류가 존속하는 한 이런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대해야 하고, (별 차이도 의미도 없는) 인종 등 상대방의 배경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그 사람 자체로 상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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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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