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21세기 르네상스' 알린 아트바젤…명품기업, 정부도 힘모았다

입력 2022-10-24 11:07   수정 2022-10-24 11:14


“프랑스 파리가 마침내 21세기 벨 에포크(Belle Epoque)를 되찾았다.”

19일(현지시간) 아침 10시 프랑스 파리 에펠탑 끝자락의 그랑팔레 에페메르. 프랑스에서 처음 열리는 ‘파리 플러스 파(Paris+Par) 아트바젤’의 문이 열리자 줄을 서서 대기하던 VIP 입장객들은 여기저기서 이렇게 웅성거렸다. 벨 에포크는 1900년 전후 파리의 황금 시절. 문화 예술을 중심으로 산업과 철학과 정치 등 모든 분야가 함께 성장하며 세계의 중심이 됐던 때를 말한다.


파리에 모인 세계인들이 올해 10월을 ‘21세기 벨 에포크의 귀환’이라고 부른 이유는 분명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열리는 첫 아트바젤을 축하하듯 156개 갤러리들은 그 동안 다른 아트페어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숨겨진 명작들을 앞다퉈 내걸었다.


52년 전 스위스 작은 마을 바젤에서 시작해 마이애미, 홍콩 등으로 발을 넓힌 아트바젤이 예술의 본토 파리 진출이 결정된 건 불과 9개월 전. 짧은 준비 기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파리라는 도시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갤러리와 박물관, 기업과 학계는 물론 정부가 나서 파리를 ‘예술 수도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트바젤은 이로써 봄(홍콩), 여름(바젤), 가을(파리), 겨울(마이애미) 등 사계절 내내 아트페어를 열게 됐다.
로컬과 글로벌의 성공적 결합
아트바젤의 파리 진출이 결정된 당시 프랑스 미술계는 우려가 컸다. 미국 자본을 앞세운 아트바젤42년 된 프랑스 미술계의 자존심과 같았던 토종 아트페어 ‘FIAC’를 몰아내면서 프랑스의 전통 있는 갤러리들이 고사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프랑스박물관연합(RMN)은 올초 경영난에 빠진 FIAC을 대체할 행사 주최를 공모했다. FIAC은 이미 수 차례 유럽 경제위기와 영국 프리즈(Frieze) 등의 추격으로 위기를 겪어온 상황.


아트바젤은 프랑스의 예술적 전통과 문화 인프라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스스로 이번 페어의 공식 명칭을 다른 지역처럼 ‘아트바젤 파리’가 아닌 파리를 넘어선다는 뜻의 ‘파리 플러스 파’라고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상업 행위에 머무르는 페어와는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다. 클레망 들레핀 아트바젤 파리 총괄디렉터는 18일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9개월 간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아트페어 만들기에 집중했다”며 “FIAC도 아트바젤도 아닌 오직 파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행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트바젤이 세계 최대의 아트페어지만 이번엔 파리라는 ‘로컬’에 중점을 뒀다. 위원회에서 먼저 드러난다. 아트바젤 파리의 10명의 위원회 중 4명은 파리에 본거지를 둔 전통 있는 갤러리 대표가 맡았다. 나머지는 뉴욕과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등 다국적 갤러리들이 나눠 맡았다. 전체 부스 참여 갤러리 중 3분의 2를 기존 FIAC의 위원회가 선정하도록 권위를 내려놨다는 얘기다. 들레핀 디렉터 역시 전 FIAC의 부디렉터 출신이다.

올해 참여한 156개 갤러리 중 48곳, 약 30%는 파리 기반의 갤러리.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FIAC에 참여했던 갤러리보다 많다. 아트페어에 처음 참가하는 새로운 파리 의 갤러리들도 발굴했다. 앤 배로, 마그낭-A, 위 두 낫 워크 얼론 등 22개 갤러리는 처음 참가했다. 신진 갤러리를 보여주는 ‘이머징 갤러리’ 섹션에는 16개의 갤러리가 20㎡의 부스를 받았다. 이 역시 이전의 FIAC 때보다 2배 많은 갤러리가 참여한 셈이다. 들레핀 디렉터는 “운영 비용 등의 문제로 갤러리의 부스 비용을 6%가량 올려야 했다”면서도 “이전 FIAC의 입장료 수준인 하루 40유로(약 5만6000원)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아트바젤 마이애미(약 10만원), 바젤(약 8만2000원)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미술관과 갤러리, 블록버스터급 전시 동시 개막
파리는 세계적인 관광지이지만 이번 아트바젤 파리를 열며 ‘우리야말로 역사와 전통, 혁신으로 무장한 세계 예술의 중심지’라는 것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10월 셋째주 열리는 아트바젤의 전후로 파리의 100여개 갤러리와 18개 예술 기관, 국공립 박물관들은 모두 블록버스터급 전시와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흑인 조각가 타데우스 모슬리, 알리사 콰데, 오마르 페스트 등은 튈르리 정원과 국립들라쿠르아기념관, 방돔광장 등 도시 전체에 누구나 볼 수 있는 대형 예술 작품을 설치했다.


퐁피두센터는 앨리스 닐 초상화 전시를, 루이비통재단은 클로드 모네와 조안 미첼 2인의 비교 전시를, 시립미술관인 프티팔레는 우고 론디노네 개인전을, 오랑주리미술관은 샘 자프란의 전시를 각각 열었다. 루브르, 오르세, 파리시립미술관, 팔레드도쿄, 프티팔레, 퐁피두센터 등은 VIP티켓 소지자들에게 일반 관람객을 받지 않는 ‘프라이빗 투어’와 브런치가 포함된 모닝 도슨트 서비스 등을 제공해 호응을 얻었다.


페어 기간 내내 큐레이터와 미술계 관계자, 파리의 미술 전공 학생들이 참여한 대담도 에펠탑 아래 세느강 보트와 해양박물관 등에서 다채롭게 열렸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30대 큐레이터 피에르 알렉상드르 마테오와 찰스 테이수가 ‘NFT의 세계’부터 ‘프랑스 미술시장의 미래’, ‘갤러리가 위험한 작가의 그림을 거는 이유’ 등을 주제로 대담회를 마련했다. VIP오프닝의 관람객 페데리카 마티유(47)는 “아트바젤이 열리는 기간 잠드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쳐난다”며 “그림을 사는 것 외에도 지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게 바젤이나 마이애미 페어와 비교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루이비통·라파예트그룹 등 기업도 빛냈다
명품의 도시인 파리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들도 아트바젤 파리를 함께 즐겼다. 50년간 수집해온 컬렉션으로 옛 파리 증권거래소에 미술관을 만든 케링그룹은 14일 ‘앙리 살라’의 영상 작업 세 편을 새로 공개해 페어 기간 내내 다국적 관람객들로 붐볐다. 루이비통은 2019년부터 아티스트와 컬래버한 한정판 카퓌신 가방 ‘아르티 카퓌신’을 아트바젤 입구 부스에서 공개했다. 올해 네 번째로 협업한 6명의 예술가의 작품을 포함해 빈센트 반 고흐, 우르스 피셔 등의 작품과 컬래버한 가방이 진열됐다. 그 옆엔 왁스로 만든 쿠사마 야요이 전신상이 설치돼 눈길을 끌었다.


보석 브랜드 데이비드 유르만은 보석 디자인 워크숍을 열고 도심 곳곳의 매장을 아트바젤의 팝업 광고판으로 내줬다. 갤러리를 운영 중이기도 한 프랑스 명품 백화점 라파예트그룹은 신진작가의 아트바젤 참여 부스 비용의 50%를 지원했다.


아트바젤 파리 기간엔 위성 페어들도 함께 열려 눈길을 끌었다. 아시아 작가를 내세우는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제 8회 ‘아시아 나우’는 37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한국 갤러리 중엔 P21, 이길이구갤러리, 초이&초이, 프린트베이커리 등이 부스를 차렸다. 프랑스 비영리 단체가 주최한 파리인터내셔널에도 26개국 60개 갤러리가 모였다.

아트바젤 파리는 올해부터 7년간 RMN과 계약해, 매년 10월 셋째주에 파리를 찾는다. 파리 전시장의 상징이자 거대한 돔으로 유명한 옛 그랑팔레가 보수 공사를 하는 2024년까지는 지난해 올림픽 경기장으로 지은 ‘그랑팔레 에페메르’에서 열린다.

파리=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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