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홀바인의 헨리8세 초상화와 쿠싱 증후군[그림으로 보는 의학코드⑤]

입력 2022-10-28 15:24  

이 기사는 10월 28일 15:2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그는 제가 본 중 가장 잘생긴 통치자입니다. 평균을 훌쩍 넘는 큰 키에 종아리가 극히 아름답고, […] 얼굴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고운 여인 같고 목은 길고 굵습니다. […] 뛰어난 무술과 용맹함이 그의 특성일뿐 아니라 […] 온갖 정신적 능력 또한 뛰어나 세상에 그의 맞수가 될 이가 없을 듯합니다."

이는 1515년 영국 왕실에 파견된 베니스 대사가 자신의 군주에게 보낸 서한의 일부다. 이 글을 보고 여러분은 누가 떠오르는가? 대사가 언급한 이는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과의 단교를 감행하고 수많은 주변인을 참수했던 헨리 8세다. 헨리 8세를 극찬하는 글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대다수는 어리둥절해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헨리 8세를 성마르고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진 폭군으로 배웠고, 궁정화가 한스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 속 초고도 비만인 모습으로 그의 이미지가 각인됐기 때문일 것이다.

한스 홀바인의 1540년 작 <헨리 8세 초상화>는 왕의 존재감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황금빛 자카드 천으로 된 소매 주름으로 왕의 넓은 어깨를 강조하고, 금사로 화려하게 자수된 붉은 벨벳의 상의 안에 엄청난 양감의 몸통이 가득 차있다. 모피 조끼가 없었다면 얼굴, 목, 어깨가 한 덩어리로 보였을 만큼 목 주변 살이 두툼하다. 왕은 미간을 찌푸렸고 입술을 깨문 듯 입주변이 경직되어 있어 금방이라도 성질을 부릴 듯하다.

지덕체를 겸비한 군주상과 홀바인의 그림이 재현하는 왕의 이미지 간에는 대단한 괴리가 존재한다. 홀바인은 무능력한 화가인 것일까? 혹은 왕권 강화를 위해 거대한 이미지로 조작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물론 '아니오'다. 헨리 8세는 20대에 키 190㎝, 몸무게 95㎏, 허리둘레가 32인치였으나 50대에는 허리둘레가 52인치가 되었고 1547년 사망 시엔 몸무게가 무려 178㎏에 달했다. 이 그림은 1540년경의 실제 헨리 8세의 풍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앤 불린의 외도를 의심하거나 정적들에 이단 혹은 반역의 죄를 물어 무참히 처형하는 등 중장년의 헨리 8세가 의심증과 쉽게 분노하는 성향이 뚜렷했음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이다. 비대해진 몸과 이 급격한 성격의 변화 간의 관계를 의학적으로 해석해볼 수는 없을까?

우선 헨리 8세가 1520년대 초중반부터 여러 부상, 전염병, 다리에 생긴 궤양에 시달렸다는 사료들이 존재한다. 특히 1536년 당시 마상 창술 대회에서 갑옷을 입은 말이 그의 위로 쓰러져 2시간동안 의식불명이 되었다고 하는데 현대의학이 존재했다면 심한 뇌진탕/두개 내 출혈을 의심하고 CT 촬영을 권고했을 심각한 상황으로 보인다. 또한 다리 궤양 문제가 지속되는데, 당대 의사들은 소독 개념이 없어 달군 금속 꼬챙이로 상처를 찌르고 체액을 흘려내는 치료를 계속해 왕은 여러 차례 패혈증 증상을 겪었다. 부상과 궤양 문제로 거동이 불편해진 상황에서도 왕은 엄청난 양의 고기, 와인, 그리고 후식을 즐겼고 이에 비만이 심해지며 결국 그는 스스로 걷지 못하게 되었다. 부상, 비만, 그리고 다리 궤양은 서로 맞물린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초고도 비만이 되면서 고혈압, 고지혈증 및 2형 당뇨병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장기적으로는 말초혈관병을 악화시킨다. 다리가 심하게 붓고 혈관에 궤양이 생겼다는 것을 통해 울혈성 심부전이 있었음을 추정해볼 수도 있다.

필자는 특히 1541년 프랑스 대사 마리약이 자신의 왕에 보낸 서신에 주목하여 쿠싱 증후군 (Cushing's Syndrome)의 가능성을 추정한다. 이 편지에서 대사는 헨리 8세가 고열로 인해 목숨이 위태롭다고 쓴 뒤 "그가 놀랍도록 심하게 먹고 마시는 등 몸을 돌보지 않았고, 아침과 저녁 식사 후에 그의 의견이 달라진다고들 합니다"라고 전하고 있다. 중요한 지점은 폭식과 비만을 언급하고 그것을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연결시키는 데 있다. 먼저 쿠싱 증후군이란 뇌하수체에서 부신피질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될 때 진단되는 내분비계 질환으로, 100만 명당 1명 정도 발생하는 희귀병이다. 주요 신체적 증상으로는 심한 비만, 달덩이처럼 부푼 얼굴, 목 주변 지방 증가, 등에 물소 혹 같은 지방 덩어리가 생기며 상처가 생기면 잘 낫지 않는다. 뼈와 둔근이 약해지기도 하며, 고혈압과 당뇨가 종종 수반된다. 또한 짜증, 우울, 불안, 불면, 급작스러운 기분 변화 등의 정서적 증상도 동반된다. 환자의 20% 정도는 정신과 치료가 요구될 정도로 주변사람을 의심하는 편집증, 이상하리만치 격분하고 공격적이 되는 증세를 보인다. 운동능력이 뛰어나던 헨리 8세가 자주 말에서 떨어지고 넘어지며 부상이 늘고, 급작스레 비만이 되고, 다리 궤양이 몇 십 년 째 낫지 않으며, 주변인을 끊임없이 의심하여 혹독한 처형을 내린 것도 쿠싱 증후군에 의한 현상으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의학적으로 헨리 8세를 살펴본 후 다시 초상화를 보니 새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몸집과 극도로 화려한 차림새 등 물리적으로 왕의 위용을 드러낸 것에 비해 그의 얼굴은 홀바인이 모델의 정서를 섬세히 반영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헨리 8세의 찌푸린 미간 아래 드러난 눈빛에는 불안과 고통이 서려있고, 단단히 굳은 입주변 아래 초조함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헨리 8세가 의학적,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아내와 정적을 처형하고 이내 드는 후회와 자책을 애써 숨기며 직무를 계속하는 것을 홀바인은 지척에서 지켜보았다. 이 초상화는 왕의 굳건한 외형 내부에 도사리는 심리적 위축을 예리한 통찰력과 직관으로 포착해내되 그의 개인적 고통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강력한 국왕의 위엄을 인지하게 만드는 데에 그 묘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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