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병도 주고 약도 줬다. 금리인상 속도조절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내년 최종금리는 예상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매파적 발언을 쏟아내면서 시장을 뒤흔들었다. 국내 증시 역시 파월 '쇼크'로 인해 변동성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전일 2차전지가 가격 부담과 재고 조정 이슈로 급락했고 테슬라도 급락한만큼 당분간 조정 가능성이 높아 지수에도 부담이 될 전망"이라며 "삼성전자와 전일 모처럼 급등했던 경기민감주와 낙폭과대주가 얼마나 버텨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내년 최종금리가 예상보다 더 높아질 것이란 파월 Fed 의장이 발언은 외국인 수급에 부담을 줄 전망"이라며 "이를 감안할 때 국내 증시는 1.5% 내외 하락 출발한 후 매물 소화 과정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Fed는 성명을 통해 "인플레이션 위험에 매우 주목하고 있다"며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결정할 때 그간의 긴축 통화정책의 누적된 효과와 통화 정책이 경제와 물가 등에 미치는 시간적 격차, 경제 및 금융 상황 진전을 고려할 것"이라고 언급해 금리인상 속도조절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장 일각에선 Fed가 올해 마지막 FOMC 회의인 12월에는 0.5%포인트 인상 등 금리 인상 폭을 줄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과도한 통화긴축으로 불필요한 수준의 경기침체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다.
백악관은 "이번 금리 인상 조치가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는 반응을 내놨다.
시장은 이미 알려진 속도 조절 방침보다 파월 의장의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에 더 주목했다. 파월 의장은 "최종금리 수준은 지난번 예상한 것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기준금리가 9월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나타낸 도표)에서 제시된 연 4.6%를 넘어 5%에 육박하거나 넘어설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금리인상 중단에 대해 생각하거나 언급하는 것은 매우 시기상조"라면서 "우리는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높은 수준의 기준금리를 오래 유지할 방침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어 "공격적인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잡힐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경제성장이 추세 이하로 내려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리인상 속도 조절 가능성이 공식화되면서 통화정책에 대한 부담은 일시적으로 덜어냈지만, 추세 반전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금리 속도조절은 말 그대로 조절이지 금리인상 자체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라며 “시장은 아직도 내년 경기 악화, GDP 성장률 0%대 진입, 일부 국가 역성장 가능성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미 증시는 파월 의장의 발언에 롤러코스터를 탔다. 금리인상 '속도 조절'을 공식화한 직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상승 전환했다. 하지만 내년 최종금리 수준이 연 5%에 육박하거나 이를 넘을 가능성을 시사하자 주요 지수는 곧바로 하락 반전했다.
금리에 민감한 성장주들을 중심으로 투매 현상이 벌어졌다. 애플, 구글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는 3%대 후반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플랫폼과 테슬라는 각각 4.9%, 5.6% 급락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예상했던 수준의 정책 결과(12월 속도도절 시사)에 따른 재료 소멸 인식과 Fed의 기대감 차단 작업이 지속될 것이라는 부담감이 겹치며 미 증시가 급락했다"고 분석했다.
1%포인트는 가장 가까운 한미 금리 역전기(2018년 3월∼2020년 2월) 당시 최대 격차와 같은 수준이다. 그만큼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원달러 환율 상승)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원화 약세는 수입 물품 환산 가격을 높여 인플레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한은도 오는 24일 6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인상 폭은 아직 유동적이다. 물가가 더 뛰거나 외국인 자금 유출 조짐을 보이면 한은이 10월에 이어 두 번 연속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도 커질 전망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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