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모두가 지휘자인 오케스트라…'빈필 사운드' 빛났다

입력 2022-11-04 09:56   수정 2022-11-04 10:00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찾았다. 빈 필하모닉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지휘봉을 잡았는데, 이 조합은 한국에서 처음이었다.

첫 곡이 시작하기 전에 이들은 지난주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를 언급하며, 예정에 없던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곡이 조용히 끝나고, 긴 묵념이 이어졌다. 이후 원래 프로그램인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이 시작됐다. 공연 첫날이라, 완벽한 밸런스는 아니었지만, 소리가 쌓이고 이야기가 확장되며 ‘파르지팔’이 꽃을 피웠다. 그리고 쉬지 않고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이 이어졌다. 지휘자는 ‘구원’과 ‘해방’이라는 키워드로 엮인 이 두 작품 사이의 연결고리를 조명했다.

‘죽음과 변용’에서 빈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임을 증명하는 건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목관 악기들은 서로의 톤을 완벽하게 맞춰 보였고, 직후 등장하는 알베나 다나일로바 악장의 압도적인 표현력에서 이 오케스트라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날카롭게 고통이 묘사되고, 여러 모티브가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장면에서도 잘 정제된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장 무질서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가장 질서정연한 음악을 선보였다. 정교하게 질서가 잡힌 음악만이 무질서한 혼돈의 순간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승과 하강으로 묘사되는 삶과 죽음의 이중주와 그 뒤로 흘러가는 심장박동과 한숨의 모티브까지 세밀하게 직조했다. 지휘자는 새로운 연출을 시도하기보다 작품의 텍스트에 충실했는데, 그 덕분에 이 모두를 뚫고 나온 정화의 주제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일 수 있었다.

죽음을 알리는 탐탐(Tam-Tam) 소리와 함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됐다. 이 순간부터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절제됐던 연주를 조금씩 놓아주기 시작했다. 대조적이었고, 정화의 효과는 극대화됐다. 빈 필하모닉 고유의 색깔도 본격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 결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음표로 구축해 놓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름답게 빛났다. 지휘자는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작품 그 자체를 조명했고, 빈 필하모닉은 작품에 황금빛을 더했다. ‘죽음과 변용’에서 슈트라우스의 천재성이 어떻게 발휘됐는지를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부에 연주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에서도 깔끔하게 정제된 프란츠 벨저-뫼스트의 스타일이 여실히 드러났다. 1악장과 2악장 모두 밋밋하게 흘러갈 수 있었지만, 나머지 색깔을 채워준 건 빈 필하모닉 단원들이었다. 이들은 악보의 음들을 단순히 이어가는 차원이 아니었다. 단원 개개인이 시시각각 서로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듣고, 뉘앙스를 통일하고, 밸런스를 맞추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방의 카타르시스가 주는 감동보다도, 다음 악구로 넘어가는 그 순간순간의 흐름 자체가 아름다웠다. 단원 개개인이 한명의 예술가처럼 특출난 기량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왔기 때문에 가능한 수준이었다. 결국 음악을 조율하고 완성하려는 건 지휘자뿐만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 오른 모든 단원이 매 순간 지휘자였다. 오히려 오케스트라를 최소한만 통제하는 게 빈 필하모닉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앙코르는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자이쎌른 왈츠(Zeisserln, Waler)’ 였다. 이때부터는 오직 빈 필하모닉만의 순간이었다. 빈 필하모닉이 아니면 흉내도 낼 수 없는 음악이었다. 모든 단원이 하나가 돼 왈츠를 추고 있었다. 리듬을 밀고 당기며, 왈츠가 가진 찰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앙코르에 앞서 프란츠 벨저 뫼스트는 “빈의 왈츠는 단지 가벼운 음악이 아니라, 우리들의 문화와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왈츠는 정점에 달하고, 새소리가 들리며, 다시 아침을 불러오고 있었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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