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하면 무개념인가?"…'애도의 방식' 질문 던진 가요계 [이슈+]

입력 2022-11-06 12:30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86세의 배우 김영옥은 올 초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임형주 원곡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다. 당시 출연진들은 일제히 눈물을 쏟았고, 김영옥은 "슬픔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위로하는 음악 같다"고 말했다.

이 곡은 이태원 압사 참사로 숨진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도 흘러나왔다. 원곡자인 임형주는 "제 대표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전국의 합동 분향소들과 라디오, TV 등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는 1932년 미국 볼티모어의 주부 메리 프라이가 모친을 잃고 상심해 있던 이웃을 위로하기 위해 쓴 시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오(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를 차용했다. 해당 시는 1989년 아일랜드공화국군(IRA) 테러로 목숨을 잃은 영국 병사가 부모에게 남긴 편지에 인용했고, 아버지가 이를 방송에서 낭송하며 전 세계에 알려졌다.

곡에 담긴 주된 정서는 '위로'다. 바람이 되었다는 말은 떠난 자와 남은 자들의 마음을 모두 어루만졌다.

많은 가수가 음악을 통해 위로를 주고자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위로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의 곡들이 쏟아져 나왔고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5월 내한한 미국 싱어송라이터 핑크 스웨츠는 "위기 상황에서 확신과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게 음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음악은 움츠러들었다. 이태원 참사 사고 발생 이후 가요계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예정했던 콘서트를 취소하고, 앨범 발매를 연기하는 식이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애도의 방식'에 의문을 던졌다. 공연하지 않는 것 외에 노래함으로써 남은 이들을 위로해주는 것 역시 하나의 애도 방식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싱어송라이터 생각의 여름(본명 박종현)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기관이 보기에는 예술 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보다"라며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 하기로 했던 레퍼토리를 다시 생각하고 매만져본다. 무슨 이야기를 관객에게 할까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그게 내가 선택한 방식"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라디오 작가 배순탁도 "언제나 대중음악이 가장 먼저 금기시되는 나라. 슬플 때 음악으로 위로받는다고 말하지나 말던가. 우리는 마땅히 애도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애도의 방식은 우리 각자 모두 다르다. 다른 게 당연하다. 방식마저 강요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노래로 남은 이들을 충실히 위로해 주는 것도 음악인으로서 할 수 있는 깊은 애도"라면서 "행사는 이벤트를 축소하거나 추모의 시간을 갖고, 콘서트는 상황에 맞게 세트리스트를 손보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공연 연기나 취소 또한 마땅히 존중해야 할 선택이지만, '다른 곳은 취소한다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식의 논의가 되어선 안 될 것"이라면서 "'공연을 진행하면 무개념'이라는 인식 때문에 진심으로 애도해야 하는 때에 눈치 보는 분위기가 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수반된다. 중소 기획사의 경우 공연을 취소할 때 생기는 손실에 심한 타격을 입는다. 공연장 대관비, 행사 출연료 등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여기에 내년 상반기까지 공연장 대관 일정도 넉넉지 않아 개최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콜드플레이는 2017년 첫 내한 당시 세월호 참사 3주기인 4월 16일에 공연하던 중 돌연 노래를 멈췄다. 무대 뒤 스크린엔 노란 리본이 띄워졌고, 관객들의 팔찌는 노란빛을 냈다. 시끄러웠던 공연장엔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당시 콜드플레이는 '옐로우(Yellow)'에 이어 '픽스 유(Fix You)'까지 부르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픽스 유'는 멤버 크리스 마틴이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잠긴 기네스 팰트로를 위해 만든 노래였다.

애도의 방식은 다양하고,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그 마음을 의심할 수도 없다. 인간의 마음을 보듬고 달래는 음악의 힘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상황에 맞는 말 한마디, 노래 한 구절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될 수 있는 현재. 한층 성숙한 문화가 자리 잡길 바라는 음악인들의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이유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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