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 라디오헤드…“원하는 만큼 주세요”

입력 2022-11-04 16:15   수정 2022-11-04 16:16



2013년 가수 장기하가 신곡을 내면서 현대카드와 공동으로 이색 실험을 했다. ‘솔직하게 내고 가져갑시다: 백지수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신곡 ‘좋다 말았네’를 디지털 음원으로 내고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한 프로젝트다.

자발적 지불 가격(Pay What You Want: PWYW)’을 채택한 것이다. 자발적 지불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소비자가 스스로 가격을 책정해 지불하는 방식이다.

장기하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 그냥 아주 솔직하게 갑시다. 우리 노랠 들어보고 ‘아, 이거 좋다 필이 온다’ 싶으면 뭐 만원도 좋고 백만원도 좋고…. 좋긴 좋은데 주머니 사정이 좀 그래 그러면 알아서 가져가시라.” 그리고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음원 프리마켓 ‘뮤직’에서 한 달간 독점 발매했다.



왜 이런 시도를 했을까? 장기하 측은 음원의 주인인 저작권자에게 수익을 돌려 주자는 취지라고 했다. 한국 음원시장에서 창작자의 몫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부조리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들어 온 돈은 음반사와 나눌 필요가 없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어땠을까? 프로젝트가 진행된 한달 간 3666명이 다운로드를 받고 358만원을 냈다. 다운로드 당 평균 976원이다. 당시 음원 사이트에서 MP3 한 곡당 평균 600원을 주고 내려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66% 더 높은 가격이다. 소비자 중 58%가 돈을 냈다.

사실 자발적 지불 가격은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매하는 음반마다 독특한 콘셉트로 대중음악의 새로운 길을 연 라디오헤드다. 2007년에는 파격적인 앨범 판매 방식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7집 앨범 ‘인 레인보우즈(In Rainbows)’를 내면서 홈페이지에서 ‘자발적 지불’ 방식으로 디지털 음원을 독점 발매한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소비자는 돈 한 푼 내지않고 음원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음악 산업 관계자들은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포춘(Fortune)지도 이것을 ‘비즈니스에서 가장 바보같은 순간 101(101 Dumbest Moments in Business)’ 중 하나로 꼽았다. 실제로 이 앨범을 다운로드 받은 사람 중 62%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앨범이 역대 앨범 중 가장 많은 수익을 라디오헤드에 안겨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우선 총 구매자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고 재미있는 판매 방식이라서 각종 매체가 이를 소개했고 이는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한 달간 120만명이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구입하다 보니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이 절반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총 매출액이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니 수익률이 높아졌다. 만약 통상적인 음반 회사를 통해 판매했다면 앨범 가격은 14.99달러이고 라디오헤드는 15%인 2.25달러를 받았을 것이다. 만약 애플 아이튠스(iTunes)를 통해 판매했다면 더 작은 금액인 1.40달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독자적으로 자발적 지불을 사용한 결과 전체 구매자 중 38%가 돈을 지불했다. 1인당 평균 6달러다. 공짜로 다운로드 받은 사람들까지 포함해도 평균 2.26달러인 셈이다.

인터넷에서 창작물 가격이 공짜라고 여겨지던 때다. 드디어 인터넷 시장을 바꿀 대안이 나왔다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수 많은 밴드들이 이 판매 방식을 따라 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했다. 공짜로 다운로드 받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고 전체 매출액도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발적 지불 가격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은 무엇일까?
첫째, 상품의 한계비용(marginal cost)이 매우 낮은 경우다. 디지털 음원의 경우 추가 판매로 인해 증가되는 비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판매자로서는 부담이 없다. 인터넷 개인 방송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시청자가 원하는 금액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방송 서비스에 대해 가격을 지불하는 셈이다. 예컨대 아프리카TV 시청자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별풍선을 방송진행자에게 선물할 수 있다.

호텔, 항공, 렌트카 경우도 한계비용이 낮고 판매되지 않으면 가치가 사라진다. 이런 경우 소비자가 스스로 가격을 결정한다는 점에서는 자발적 지불과 유사하지만 약간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 역경매 방식의 프라이스라인(Priceline) 모델이다. 호텔을 예로 들면 소비자가 숙박이 필요한 날짜와 금액을 제시하면 이 가격을 받아들인 호텔을 프라이스라인이 연결해주는 것이다.

둘째, 소비자들이 공정한 마인드를 지닌 경우다. 공정한 소비자들은 특정 상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간 땀과 노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다. 공정한 소비자는 자신이 인식한 상품의 가치에 따라 금액을 지불한다. 따라서 상품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력과 희생을 소비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 판매자가 유명하고 좋은 평판을 가진 경우 이 방식은 구매를 증대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인 라디오헤드는 파격적 가격 방식을 통해 보다 많은 구매를 유도해 총 매출액 300만 달러를 얻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판매자 경우라면 특별한 가치를 제공하지 않는 한 좋은 성과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넷째,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강력한 유대관계가 있는 경우다. 장기하와 라디오헤드의 경우 오랜 기간에 걸쳐 구축해 온 충성스러운 팬 층이 있었다. 이처럼 잠재 구매자들과 끈끈한 유대관계가 존재할수록 이 방식이 효과적일 것이다. 구매자는 돈을 지불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판매자를 후원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사업을 막 시작한 판매자에게는 이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 구매자들이 판매자에 대한 신뢰나 감정적 애착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판매자가 상품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경우다. 상품력이 있는 경우, 구매자에게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자유를 줘도 상품 가치를 평가 절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품 가치에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다를 것이다.

여섯째, 이 방식은 사용기간을 제한해야 효과적이다. 장기간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아니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 한정된 기간에 사용해야 효과적이다. 시간을 제한하면 일종의 긴박감이 생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 관심이 없던 사람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진다. 라디오헤드의 경우 7집 앨범을 출시하고 한정된 기간에만 이 방식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후 출시한 어느 앨범에서도 이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일곱째, 준거 가격(reference price)이 존재하거나 제시되어 있는 경우다. 준거 가격이란 구매자가 상품의 가격을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가격을 일컫는다. 가장 최근 지불했던 가격, 유사한 상품의 가격, 빈번하게 지불한 가격 등이 해당된다. 사람은 누구나 공짜를 좋아하고 최소로 지불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준거 가격이 있다면 이것이 기준점이 되어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판매자가 최소한 원가는 보전할 수 있다. 준거 가격이 없거나 애매한 경우에는 권장 가격(suggested price)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여덟째, 새로운 고객층을 유치해 고객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다. 사람들이 공짜로 무엇인가를 얻는 경우 그 소식이 빠르게 확산된다. 구전(word of mouth)이든 소셜 미디어를 통한 넷전이든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소식을 즉각적으로 알린다. 따라서 판매자는 다양한 신규 고객을 만나게 된다. 이 신규 고객들이 궁극적으로 충성 고객으로 진화될 수 있다.

예컨대 아티스트들이 SNS를 통해 무료나 저가로 신곡을 배포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기회를 통해 새로운 팬들이 많이 생기게 되고 이 중에서 열혈 팬들이 비싼 콘서트 티켓과 기념품을 구매하게 된다. 실제로 순회 공연과 특별 상품 판매가 음반 수입 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이 지불 방식이 대의 명분과 연계되어 있는 경우다. 사람들은 자선처럼 훌륭한 명분이 있는 경우 돈을 지불하는 데 있어 관대해진다. 의미 있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고 느낄 때 기쁘게 참여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주위 사람들이 구매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자신도 구매하겠다는 의향이 높아진다. 수익금이 NGO나 고귀한 취지를 위해 사용된다고 할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가격은 기업이 주도적으로 결정했다. 기업이 수요 공급의 원칙에 근거해 적절한 가격을 책정했다. 또는 해당 상품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원가를 계산하고 적당한 이윤을 얻도록 가격을 책정했다. 그러나 이제는 고객이 가치를 창출하고 확산하는 경제로 바뀌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가격 책정에서도 고객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자발적 지불. 기업의 비이성적인 위험한 도박일까? 아니면 소비자를 믿는 현명한 투자일까?

※ 한경닷컴에서 한경 CMO 인사이트 구독 신청을 하시면, 이유재 석좌교수의 글과 다른 콘텐츠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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