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경원 쓸 판'…저출산보다 훨씬 무서운 고령화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2-11-10 06:40   수정 2022-11-10 06:57


저출산·고령화에 관한한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일본의 인구문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저출산보다 고령화가 훨씬 무섭다고 말한다. 저출산은 이론상 20여년 후의 생산인구를 걱정해야 하는 미래 과제다.

미래 과제인 만큼 이민, 출산율 회복 등을 통해 생산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볼 수도 있다. 당장은 임신·출산·육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이나 산업을 제외하면 사회 구성원 전체가 타격을 입는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반면 고령화는 현재의 과제이면서 사회 구성원 전체에 부담을 주는 문제다. 고령화는 크게 국가 재정과 인력난 두 가지 측면에서 나라 전체를 힘들게 한다. 일본은 매년 예산의 3분의 1을 사회보장비에 쓴다.

나머지 3분의 1은 1255조엔(약 1경1728조원)에 달하는 국채 원리금을 갚는데 쓴다. 매년 예산의 3분의 2를 사회보장비와 국채 원리금 상환에 쓰다보니 일본 정부는 추락하는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미래의 먹거리를 만드는 전략에 쓸 예산이 늘 부족하다.



일본의 사회보장비는 국민들이 내는 사회보험료와 정부가 보전하는 공적비용로 구성된다. 2019년 일본의 사회보장비는 약 120조엔으로 1년 예산보다 많았다. 2019년 현재 사회보장비의 66%가 고령자 관련 비용이다.

고령자가 늘수록 사회보장비 부담은 더 늘어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사회보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9년 14%에서 2019년 22%로 20년새 8%포인트 늘었다. 국민들이 내는 사회보험료는 정해져 있는데 필요한 사회보장비는 급증하니까 정부가 예산으로 매워야 하는 금액도 크게 늘었다. 2021년 정부의 사회보장비 부담은 30년전보다 20조엔 이상 증가했다.



고령자가 늘수록 사회보장비는 계속 불어난다. 2025년 사회보장비는 140조엔으로 10년새 20% 늘어난다. 노인 인구가 가장 많아지는 2040년에는 190조엔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190조엔의 대부분이 고령자 관련 예산이다.



190조엔까지 불어나는 사회보장비를 좀 더 세부적으로 뜯어보자. 2040년 사회보장비는 연금 73조2000억엔, 의료 68조5000억엔, 간병 25조8000억엔, 출산·육아지원 22조5000억엔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육아지원과 의료 보장비 일부를 제외하면 80%인 150조엔 가량이 고령자 예산이다. 고령화가 저출산보다 무섭다는 이유다.

일본은 75세 이상 인구 상황을 정밀하게 집계한다. 이유가 있다. 인간의 신체 상태는 75세를 경계로 크게 변한다. 건강 상의 문제가 일상생활을 제한하지 않는 건강수명이 일본은 남성 평균 72.14세, 여성은 74.79세로 75세 전후다.



75세를 넘어서면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의료와 간병 비용이 크게 불어난다. 0~64세 일본인 한 사람이 1년간 사용하는 의료비는 평균 19만엔이다. 65~74세는 약 57만엔으로 늘어난다. 75세 이상은 93만엔으로 다시 두 배 가까이 불어난다. 재무성은 75세 이상에 대한 국가의 의료비와 간병비 부담이 0~64세와 65~74세에 비해보다 각각 4배와 10배 더 크다고 분석한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덩어리'라는 뜻의 '단카이 세대'라고 부른다. 1947~1948년 3년간 태어난 800만명을 말한다. 이들이 2022~2024년 차례로 75세가 된다. 75세 이상 인구가 3년 동안 매년 4%씩 증가해 '고령자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된다.



이들이 모두 75세 이상이 되는 해를 2025년 문제라고 한다. 2025년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력부족의 쓰나미'다.

일본의 인재 정보기업인 파솔종합연구소와 주오대가 공동으로 조사한 '노동시장 미래통계'에 따르면 2030년 일본 전체적으로 644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전망이다. 서비스업은 400만명, 의료와 복지 분야가 187만명, 제조업은 38만명씩 일손이 부족할 것이란 분석이다.



2019년 상반기 인력난은 138만명이었는데 10년새 4.6배 늘어난다. 전체 인구는 줄어드는데 고령자는 급격히 늘어나는 결과다. 일할 사람은 갈수록 주는데 부양할 인구는 급속히 늘어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일본은 생산연령 인구 3명이 고령자(65세 이상) 1명을 부양하는 사회였다. 하지만 2040년 일본은 일하는 사람 1.4명이 고령자 1명을 지탱해야 한다.



인구 감소와 인력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은 네 가지다. 일하는 여성, 일하는 고령자,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을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면 된다. 일본은 넷 다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여성과 고령자가 일하는 환경은 여전히 부실하고,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은 폐쇄적이다.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오늘날 일본을 "이대로라면 '끓는 물속의 개구리'가 될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그래도 일본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30여년 만에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령화의 파고를 넘으면 남은 문제는 저출산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일본을 저출산·고령화 국가로 한묶음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살펴본 것처럼 일본의 인구문제는 지금까지와 양상이 전혀 다른 변곡점을 맞고 있다. 일본의 인구문제는 한국이 10~20년 후에 그대로 겪게 될 문제다.

인력부족을 해결하는 4대 방안이 부족하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난 15년간 저출산 대책에 200조~300조원을 퍼붓고도 매년 출생률 최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전문가들이 "일본의 인구문제를 가장 관심있게 바라봐야 하는 나라는 한국"이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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