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7세기 美 담배농장 노예는 백인이었다

입력 2022-11-18 17:31   수정 2022-12-18 06:28


도널드 트럼프(사진)는 미국 뉴욕 퀸스의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공고한 기득권 사회의 벽을 뚫지 못했다. 맨해튼에서 사업할 때도, 정치를 하겠다고 할 때도 빈번히 무시당했다. 그가 비주류 백인의 편에 서서 기득권 엘리트를 공격한 데에는 이런 개인적인 배경이 작용했다.

사람들은 트럼프를 비난한다. 그런 차별을 받았으면 열린 마음을 가져야지, 어떻게 더 인종 차별을 조장하고 이민자를 배척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를 보면 그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돼 왔다.

이를 다룬 책이 <백인의 역사>다. 넬 어빈 페인터 프린스턴대 미국사 명예교수가 2010년 미국에서 펴냈다. 트럼프 열풍이 불기 전에 나온 책이지만 그 근저에 있는 백인들의 불만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백인우월주의가 얼마나 허망한지 엿볼 수 있다.

책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그때는 백인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사람을 나누고 차별하는 기준은 민족과 계급이 전부였다. 그리스인들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지에 살던 유목 민족인 스키타이인과 서유럽 지역에 살던 켈트인들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피부가 그리스인들보다 밝았지만 피부색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노예도 백인이었다. 11세기까지 바이킹은 북유럽과 러시아를 돌며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포획해 노예로 팔았다. 1300년대 중반엔 흑사병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진 동부 지중해의 기독교도 십자군 왕국들이 발칸 반도에서 슬라브인들을 잡아들였다. ‘노예(slave)’라는 말이 ‘슬라브(slav)’에서 파생될 정도로 당시 인신매매는 빈번했다.

이는 18세기 아프리카인 노예무역이 호황을 이루기 전까지 계속됐다. 17세기만 해도 미국 담배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건 아프리카인이 아니라 이런 백인 하층민이었다.

‘희고 옅은 피부색이 아름답다’는 관념도 18세기 들어서야 생겨났다. 독일의 미술사학자인 요한 요아힘 빙켈만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았다. 실제 그리스 시대 조각상은 색이 칠해져 있다는 것을 몰랐다. 로마에서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복제품만 보고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추켜세웠다. 이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석고로 만든 하얀 조각상은 전 세계 학교와 학원, 미술관에서 널리 볼 수 있다.

백인이라고 다 백인이 아니었다. 특히 온갖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온 미국에서 백인끼리의 차별이 극심하게 나타났다. 앵글로색슨족과 튜터인, 스칸디나비아인이 ‘가장 백인다운 존재’로 여겨졌다. 아일랜드인과 독일인, 이탈리아인, 동유럽의 슬라브인과 유대인은 오랫동안 흑인과 여성에 비견될 정도로 열등한 종족 대우를 받았다. 당대의 지성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랠프 월도 에머슨은 아일랜드인은 백인에 낄 수 없다고 했다.

같은 앵글로색슨족 사이에서도 선이 그어졌다. 엘리트들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앵글로색슨족을 동료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퇴화한 가족’이다. 1924년 버지니아주에서 강제 불임법이 처음 통과된 이후 1968년까지 약 6만5000명의 미국인이 시술받았다. 떠돌이, 빈민, 범죄자의 혈통을 가진 백인들이었다.

차별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초기 백인 이민자들이 나중에 온 백인을 차별한 데 이어, 차별받은 백인이 다시 흑인을 차별하고, 이제는 흑인이 아시아인 등 다른 이민자들을 경시하는 식이다. 먼 나라 일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우리도 얼마나 자주 피부색에 따라 출신 국가에 따라 사람을 얕봤던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도 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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