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갑질 막는 권익위, 정작 내부고발은 '모르쇠'

입력 2022-11-30 18:14   수정 2022-12-01 02:06

2020년 12월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국민권익위원회 A국장은 부하직원들에게 자신의 과제를 대신 수행하게 했다. 업무와는 상관없는 명백한 ‘갑질’이다. A국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박사 논문 초록 작성, 온라인 강의 대리수강 등을 지시했다. 직원들은 인사권을 가진 상사의 요구에 불응하지 못했고 부당한 지시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 전반의 갑질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설립된 권익위가 정작 내부 갑질 문화는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전체 갑질 발생 건수 대비 내부 고발을 통해 징계에까지 이른 비율은 1.6%에 불과했다.
“갑질 당했다” 124건 응답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입수한 권익위 내부 조사 ‘갑질 경험 실태 점검’에 따르면 내부 갑질을 겪었다는 응답이 지난해 124건으로 기록됐다. 권익위는 매년 익명으로 이 조사를 하고 있다. 2020년 120건보다 늘어난 수치다.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이번 조사를 시행했고 전체 직원의 23%인 144명이 참여했다. 총 5개 유형(부적절 언행, 금품향응, 사적노무, 부당인사, 지위남용 등), 15개 문항에 응답하는 방식이다.

가장 많은 응답이 기록된 유형은 55건이 나온 ‘지위남용’이었다. “부당하게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차별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4.9%인 7명이 ‘그렇다’고 답했고, “양심과 규정에 반하여 업무를 처리하도록 지시받은 적이 있습니까?”란 질문에는 7.6%인 11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인격을 무시(욕설, 폭언, 고성, 모욕 등)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23명(16%), “본인 인사 관련, 불이익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암시받은 적이 있습니까?” 문항에는 16명(11.1%)이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해 권익위에서 내부 갑질과 관련된 징계는 단 두 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7월 6급 공무원 김모씨가 시스템 유지관리 용역업체 직원에게 자신의 업무를 부당하게 맡겨 정직 2개월의 처분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 5급 공무원 강모씨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 견책 처분을 받았다. 내부 설문에서 124건의 갑질이 있었다고 기록됐음에도 단 두 건만 징계 처분된 것이다. 권익위는 “설문조사는 주관의 영역”이라며“신고된 사항을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갑질 여부를 확인할 수가 있는데 신고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권위주의, 정치 편향성 단초”
권익위 내부의 권위주의 문화가 갑질 실태를 개선하지 못하는 걸림돌로 지적된다. 내부 권위적 문화로 갑질을 당해도 제대로 신고할 수 없고, 갑질 문화가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갑질 경험 실태 점검에서 전년도에 비해 응답수가 같거나 늘어난 항목은 총 8건이었다.

윤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전현희 위원장 체제의 권익위에서 수많은 내부 갑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내부 갑질 신고 프로세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 위원회가 운영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권익위의 갑질 문화가 최근 불거진 권익위의 정치 편향성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감사원은 문재인 정권 시절 임명된 전 위원장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여부에 관한 유권해석에 개입했다고 판단해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 대선에선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폭로한 전직 경기도 공무원 A씨에 대해선 공익신고자로 인정하고도 통보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익명을 요청한 한 행정학과 교수는 “갑질이 쉬운 권위주의 문화가 지배적이면 수장이 조직 전체를 좌지우지하기 편해진다”며 “수장의 정치 성향에 따라 조직 자체가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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