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 뒤에 숨겨진 불안…그의 안식처 된 유일한 남자 [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입력 2022-12-06 18:19   수정 2022-12-07 01:25


“난 이미 알고 있었어. 보통보다 뛰어나려면,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게 하려면, 모든 걸 추월해야 한다는 걸. 예술도, 인생도 사람들이 믿는 모든 것을 넘어서야 해.”

한 남성이 확신에 찬 말투로 말한다. 그 목소리에는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다. 옆에 있던 다른 남성은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를 신기해하면서도 매력적으로 여기는 것 같다.

폴 모리슨 감독의 영화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2010)의 한 장면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성공 욕망에 사로잡힌 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1904~1989)다. 그를 바라보던 남성은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다. 두 사람은 마드리드대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다. 로버트 패틴슨이 달리 역을, 자비엘 벨트란이 로르카 역을 맡았다.

스페인 중산층에서 태어난 달리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늘 자기애가 넘쳤다. “나의 꿈은 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달리의 내면엔 강한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친형이 죽었는데, 형의 이름은 다름 아닌 ‘살바도르 달리’였다. 달리는 어머니가 형의 이름을 자신에게 붙인 걸 알고 괴로워했다. 자신은 죽은 형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란 걸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과 자신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달리의 대표작 ‘나르키소스의 변형’ ‘기억의 지속’ ‘나의 욕망의 수수께끼’ 등에 그런 상처가 담겨 있다. ‘나르키소스의 변형’은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벌을 받은 인물이다. 나르시시스트였던 달리가 그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그림 왼쪽엔 나르키소스의 모습이 보이고, 오른쪽엔 또 다른 형상이 보인다. 돌처럼 보이는 이 형상도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의 모습에 심취해 있다. 그런데 그의 몸을 자세히 보면 개미들이 기어 다니고 있다. 달리 자신을 평생 괴롭힌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함께 담은 것이다. 그런 달리를 노래한 시도 있다. “오, 올리브 목소리를 지닌 살바도르 달리여!… 변치 않는 형태를 찾는 너의 고뇌를 노래하리라.” 로르카가 쓴 ‘달리에게 바치는 송가’란 시다.

두 사람은 서로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보고 급속히 친해졌다. 로르카는 민중극의 보급에 힘쓴 인물이며, 희곡 ‘피의 결혼’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등 명작들을 남겼다. 두 사람은 깊은 관계를 맺었던 만큼 동성 연인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달리는 사망하기 3년 전 “관능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잠재력을 알아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불안과 고뇌까지 이해한다는 건 더욱 어렵다. 깊은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인으로부터 건네받은 사랑과 헌신은 새로운 창작의 동력이 된다. 그렇게 많은 예술가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연인이나 친구를 만났을 때 꽃을 피웠다. 달리와 로르카는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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