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불가한 타이밍에 계약 해지" … 신뢰 무너진 베어링PEA

입력 2022-12-15 14:50  

이 기사는 12월 15일 14:5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6월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주가가 크게 빠지니까 거래를 깰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해온 게 아닌가 싶어요. 치밀하게 법적 검토를 한 뒤에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자신들에게 최대한 유리한 때에 파기를 한 거죠.”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어링PEA아시아(베어링PEA)가 글로벌 1위 폴리이미드(PI) 필름 회사인 PI첨단소재 인수 계약을 돌연 파기하자 투자은행(IB) 업계가 시끄럽다. 조(兆) 단위 인수합병(M&A) 거래를 파기한 시점이나 방식 모두 '쇼킹'하다고 입을 모은다.

베어링PEA는 글랜우드PE가 보유한 PI첨단소재 지분 54.07%를 1조275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지난 8일 돌연 파기했다. 최종 거래 종료일(30일)을 20여일 앞둔 상황이었다. 당초 지난 9월 말 종결할 계획이었지만 중국에서의 기업결합심사가 늦어지면서 한 차례 연기됐다.

표면적으로 베어링PEA가 계약을 파기한 건 PI첨단소재의 주가 하락 때문으로 보인다. 베어링PEA가 인수하기로 한 주당 가격은 약 8만원인데 현 주가는 3만원대로 떨어져있다. 하지만 주가는 근래 급락한 게 아니다. 베어링PEA가 인수 계약 체결 직후 3만원대로 떨어진 후 반년을 횡보했다. 지난 6월7일 SPA 체결 당일 주가는 5만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후 연일 급락하면서 나흘만에 3만원대로 떨어졌다. 주가는 3만원 안팎을 오가면서 반년을 횡보했다. 계약 파기 당일 주가는 3만2350원이었다.

베어링PEA의 ‘손절’ 타이밍이 의아하다는 반응을 나오는 이유다. PI첨단소재의 주가가 수개월 동안 특별히 달라진게 없는데 거래 종료일 20여일을 앞두고 갑자기 계약을 파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거래 체결 지연의 원인이었던 중국 당국의 기업결합심사도 이달 초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이번주 중에는 공정위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던 중 베어링PEA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서 기업결합심사 절차는 중단됐다.

IB업계 관계자는 “베어링PEA가 이달 초 중국에 기업결합심사 관련된 간단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상당히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며 “그때부터 이상한 조짐이 있었는데 계약 파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승인 결과가 나온 뒤에 계약을 파기하게 되면 책임져야 할 리스크가 커지니까 선제적으로 행동한 것 같다”며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계약 파기에 대한 준비를 해왔던 것 같다"고 전했다.

베어링PEA는 계약 파기 후 두문불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계약 파기 과정에서도 국내 자문단과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어링PEA의 인수 자문은 BoA메릴린치, 법률 로펌은 태평양이 맡았다. 인수금융은 우리은행, 미래에셋증권을 선정했다. 거래가 임박한 만큼 두 금융사는 거래확약서(LOC)를 발급한 상태였다. PI첨단소재의 매각자문은 JP모건, 김앤장이 맡았다.

거래 상대방인 글랜우드PE에도 전혀 언질이 없었다. 베어링PEA는 계약 파기와 관련한 서류를 태평양을 통해 글랜우드 측에 전달했다. 양측은 한라시멘트 거래를 계기로 상당한 신뢰관계가 있는 사이로 알려졌다. 2016년 한라시멘트 지분 99.7%를 6300억원에 공동 인수했다. 베어링PEA는 2017년 글랜우드 보유 지분까지 사들인 뒤 그해 말 아세아시멘트에 팔아 두 배 이상의 차익을 거뒀다. 이번에 글랜우드PE가 베어링PEA에 회사를 매각한 것도 오랜기간 쌓아온 신뢰 관계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베어링PEA가 자문사들과 연락을 했다가 고의로 계약을 파기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일부러 연락을 차단하면서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글랜우드 측에서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낄 수 있지만 회사의 존폐와 돈 문제가 걸린 만큼 사적인 감정으로 거래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베어링PEA 입장에서도 소송이나 평판 리스크 훼손을 감수하더라도 파기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어링PEA는 국내에서 애큐온캐피탈을 인수하고, 신한지주와 교보생명 등에 지분 투자를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M&A 시장에서 거래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외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 거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운용사와는 누구도 거래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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