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칩 제재를 선택했는가? 2018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식재산 ‘도둑질’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중국 수입품에 유례없이 높은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수출 제재 대상을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중국이 육성하려는 항공우주, 정보통신, 로봇, 선박, 반도체 등 첨단기술 제품에 집중했다. 이 전쟁을 ‘기술 패권’으로 부르는 이유다. 그리고 ‘칩(chip)’은 중국의 10대 미래 산업이 요구하는 필수요소이므로 칩 통제만으로도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이러한 제재와 더불어 칩의 자국 생산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반도체와 과학법(Chips & Science Act)’ 제정을 통해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5년간 330조원을 투자하고, 25% 투자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미국이 이토록 자국 생산력에 간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반도체는 TV, 스마트폰, 자동차, 컴퓨터 등 일상의 전자기기 대부분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첨단무기, 에너지, 바이오 등 미래 산업의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전자는 20년간 미국에 약 250조원을 투자해 11개 공장을 짓기로 했고, SK하이닉스는 내년 초 공장 부지를 선정한다. 칩 노하우와 인력도 같이 이동하는 것이다. 이 같은 지원을 받은 미국이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가? 10년 뒤에도 한국은 지금처럼 중요한 국가로 남을 것인가? 미국을 위한 헌신적인 지원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비장의 카드는 무엇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하루하루의 현안에 매몰된 나머지 다음 세대를 위한 장기적 안목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볼 때가 됐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 특별법’만 보더라도 국가 첨단전략산업에 시설 투자하는 경우 세액 공제가 기존 6%에서 고작 2% 상향한 8%에 불과하다. 중국은 말할 것 없이 미국·대만의 25%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를 보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한다는 외침은 공허하고 불가능해 보인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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