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각자 자신의 소설을 쓴다

입력 2022-12-30 16:57   수정 2023-04-30 11:27


“혹시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통보 갔나요? 피가 마르네요….”

12월이 되면 문화부에는 이런 전화가 몇 통씩 걸려 온다. 신춘문예는 주요 일간지가 수십 년간 이어온 신인 작가 발굴 제도다.

찬 바람이 불 때쯤 공고를 내고, 한 달 정도의 심사 과정을 거쳐 새해 첫날 신문에 당선작을 싣는다.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당선자에겐 미리 소식을 알리는데 이런 사실을 아는 응모자들은 단 한 통의 전화를 기다리며 연말을 보낸다고 한다.

기다리다 못한 사람들은 신문사로 직접 전화를 한다. 기사 마감으로 분주한 시간, 귓전을 때리는 전화벨을 모른 척하고 싶다가도 응모자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으면 ‘꿈’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빛나지 못한 삶은 헛된(wasted) 것일까?” 지난 13일 대학로에서 막을 올려 내년 2월까지 공연하는 뮤지컬 ‘웨이스티드’의 주인공 샬럿 브론테는 이렇게 묻는다.

그가 불후의 고전 <제인 에어>를 쓴 작가라는 걸 떠올리면 황당한 일이다. 작가 지망생이 듣기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게다가 샬럿의 동생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을 쓴 작가다. 브론테 4남매 모두 예술가였다는 사실은 ‘재능은 타고 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든다.

하지만 샬럿이 작가의 꿈을 이루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영국 요크셔 외곽 하워스에서 가난한 목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생계를 위해 가정교사로 일했다.

동생들과 함께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샬럿의 작품만 출판을 거절당했다. 샬럿은 굴하지 않고 새 소설을 써냈다. 가정교사 경험도 녹여냈다. 그게 <제인 에어>다.

1847년 출간 당시 샬럿은 ‘커러 벨’이라는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썼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극도로 제한하던 때였다. 여러 어려움 끝에 나온 소설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주인공 제인 에어는 샬럿과 닮아 있다. 고난이 계속되지만,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운명을 개척한다. 부모를 여읜 에어는 친척집과 기숙학교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가정교사로 일하다 집주인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식 직전 로체스터에게 이미 정신병자 부인 버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로체스터를 떠났던 에어는 시간이 흐른 뒤 초라해진 그에게 돌아간다. 버사가 집에 불을 지르고 죽어 로체스터는 장애를 입고 상당한 재산을 잃은 상태였다.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 이때 나온다. “독자여, 나는 그와 결혼했다(Reader, I married him).” 에어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대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우리들은 각자 자신만의 소설을 쓴다.” 뮤지컬 ‘웨이스티드’에는 이런 노랫말이 나온다.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더라도 모든 인생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이다. 빛나지 못한다고 헛된 삶일 수 없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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