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주택 이름에 대해 서울시가 개입 의지를 보이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온갖 외국어가 뒤섞인, 긴 이름의 아파트를 두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아파트 명칭에 지역·동, 시공·건설사와 자사 브랜드, 사업 현장의 고유 이름까지 다 넣다 보니 10글자가 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전남·광주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정식 명칭은 25자에 달한다고 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영어는 기본이고 프랑스어, 독일어에 이탈리아어까지 들어가면서 외국어가 많은 데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명백한 사유재산인 개인 집에 어떤 문패를 달든, 할 일도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데까지 왜 간섭하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집도 브랜드화되면서 빚어지는 새로운 논쟁거리다. 지자체의 아파트 명칭 간섭은 용인될 수 있나.
아파트 이름은 단순히 거주 및 소유자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민 모두가 주소 등으로 이용한다. 주소는 모든 이가 공동으로 편하게 활용하기 위한 공공 시스템인데, 너무 생소한 이름을 길게 붙여 해외에서까지 사용하는 주소 망을 어렵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까지 조합한 명칭은 노인이나 일상에서 문자 생활이 많지 않은 이에게 불편을 준다. 글자 수가 10자를 넘으면서 주소뿐만 아니라 행정 문서에도 담기 어렵다는 기술적 문제 역시 존재한다.
한글 위주로 쉽고 편한 말을 실생활에서 좀 더 많이 쓰도록 행정당국이 계도할 필요가 있다. 안 그래도 온갖 상품부터 거리의 가게 이름까지 외국어가 넘쳐나는 시대다. 가능한 수단이 있다면 우리말 사용을 유도해야 한다. 근래의 작명 트렌드 이면엔 복잡한 서구식 이름으로 집값을 올리려는 의도가 담긴 만큼 적절히 개입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강제로 특정 종류의 언어 사용이나 길이 제한은 어려우니 ‘가이드라인’ 정도로 일단 접근하고 인센티브를 내세워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서울 시내에서만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가 601곳에 달한다. 지금이라도 명칭 규제에 나서지 않으면 서울은 국적 불명, 긴 이름의 아파트로 가득찰 것이다.
외국어 남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일상생활을 한번 보라. 식음료부터 온갖 약품, 휴대폰 등 전자기기, 자동차, 영화와 드라마 등 한국산에 외국어가 쓰이지 않은 분야가 얼마나 되나. 한글만 강조하고 매달리는 국수주의 풍조는 개방으로 먹고사는 한국 같은 나라에선 애초 맞지도 않는다.
‘브랜드 경제학’이 발전하는 시대, 주택도 ‘브랜드’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대형 회사를 중심으로 주택 건설업체들이 고유의 브랜드를 내세워 편리한 미래형 주택을 속속 선보이는 것은 주택의 진화이자 브랜드의 진화다. 개인 소득 3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서울 같은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집에도 고유의 프리미엄 상표를 붙이고 싶어하는 게 현대인 바람이다. 주소 체계에서 긴 이름이 문제라면 앞부분의 몇 글자만 쓰게 하든지, 축약된 줄임말을 쓰는 것도 대안이다. 간단한 쟁점 같지만, 사적 영역에 행정이 마구 간섭하려 든다는 게 본질이다.
아파트 이름이 복잡(?)하고 비슷해 집 찾기, 주소 확인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과 도시의 진화와 편의시설 확충을 위해 할 일도 많은 지자체가 사적 공간의 명칭에 왜 간섭하느냐는 반론이 부딪치고 있다. 서울시는 이름을 간편하고 쉽게 지으면 인센티브를 준다는 방침이지만, 인센티브 행정도 무서울 때가 많다. 아파트의 재건축과 재개발은 전 과정에 걸쳐 지자체 권한이 워낙 막강해 건설회사든 주택조합이든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형식은 인센티브제여도, 실제로는 행정 담당자(부서) 마음에 들 때까지 돌려보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쉽고 간편’ 같은, 객관적 기준이 없는 행정은 배제돼야 한다. 긴 이름은 주소나 행정 서류에서 앞 7자까지만이나, 약칭을 받아준다는 식도 대안이 될 듯하다. 간섭을 자제하는 것도 좋은 행정일 수 있다. 건설회사 단체 같은 곳의 자율 캠페인이라면 좋다.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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