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과는 달라" 2세대 액티비스트가 뜬다

입력 2023-02-06 10:12   수정 2023-02-06 10:35

이 기사는 02월 06일 10:1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주주행동주의 펀드가 새해 벽두부터 자본시장을 흔들고 있다. 이들은 '장하성 펀드'로 대표되는 1세대 행동주의펀드들의 실패를 교훈삼아 기업 선정에서 여론 형성, 이사회 압박에 이르기까지 진화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배당 확대, 유휴 자산 매각 요구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다각도로 기업을 분석하는 역량을 키워온 사모펀드(PEF) 운용사 출신 인력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공세도 보다 다양화됐다. 재계에서도 과거처럼 '기업사냥꾼' 프레임으로 행동주의를 폄하하는 대응이 쉽지 않아졌다.

에스엠, 오스템임플란트, KT&G 등은 일부분이다. 2세대 액티비스트를 주축으로 한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물 밑에서 대주주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저PBR' 주식 발굴에 치중한 1세대
국내 행동주의의 태동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라자드와 손잡고 설립한 2006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가 꼽힌다.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등에 투자했다. 같은 해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계열 사모펀드(마르스1호)는 샘표식품 주식을 사들인 뒤 경영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과는 부진했다.

이들은 주로 보유한 자산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일명 '저PBR' 주식을 발굴해 비주력 자산 매각과 배당을 늘리라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가 대주주 지분이 높아 주주총회에서 안건이 번번이 부결되며 동력을 잃었다. 장하성 펀드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2008년 40% 이상의 손실을 냈고 결국 2012년 청산했다.

1세대 행동주의의 실패엔 사회적·제도적 환경이 무르익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운용사들의 전략이 미비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운용사들의 주력은 주식 트레이딩이었고 행동주의는 하나의 테마이자 상품으로 취급됐다. 긴 호흡으로 타깃을 결정하고 검토할 권한과 여유가 부여되지 못했다. "엑셀로 PBR이 낮은 기업을 정렬한 다음 몇몇 곳을 좁혀 검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는 게 당시 종사자의 평가다. 앨리엇이 2019년 AT&T 주주제안 보고서에서 △3만5000명의 소비자 및 200명 이상 전직 임직원 대상 설문조사 △비용절감 전략 컨설팅 △5G 사업 등 유무선사업 환경 평가 등을 거쳤다고 밝힌 점과 비교하면 차이는 두드러졌다.

이후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KCGI가 2018년 한진칼 지분 매입에 나서면서 잊혀진 행동주의가 재부상했다. 다만 KCGI는 소액주주 및 기관과의 연대에 집중하기보단 기존 대주주와 지분경쟁을 통해 경영권을 가져오겠다는 전략을 폈다. 이 과정에서 ‘물컵 갑질’을 촉발한 조현아 전 부사장과 손잡아 명분도 잃었다. 행동주의를 조명한 계기이기도 했지만 '행동주의=지분취득 경쟁'이란 오해를 굳혔다는 암도 있었다.

◆ PEF 출신들, 실사로 쌓은 '기업지식' 발휘
올 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액티비스트들은 2세대로 분류된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최대주주인 이수만 총괄프로듀서로부터 이사회의 독립을 이끌어내 경영권을 박탈했고, KCGI는 유망한 알짜 중견기업인 오스템임플란트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개선과 퇴진을 압박해 M&A를 촉발하는 등 행동주의펀드가 촉발한 다양한 이벤트들이 감지되고 있다.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등 명망있는 경영인이 설립 2년차 신생 행동주의펀드인 플래시라이트캐피탈(FCP)의 제안에 KT&G 사외이사 후보로 나섰고, 얼라인파트너스는 은행 배당성향을 높이려는 캠페인을 펴 이를 불편해하는 금융당국과 전쟁도 불사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2세대 액티비스트들은 기업 경영권 인수를 주업으로 삼은 PEF 출신 인력이 주도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창환 얼라인 대표와 이상현 FCP 대표는 각각 KKR과 칼라일을 거쳤다. 이들은 실사에만 수십억원 비용을 아낌없이 지출하는 PEF에서 오랜 기간 기업을 분석하는 역량을 키웠다. PEF가 인수금융과 외부 차입을 통해 기업 경영권을 확보해 가치를 키운다면, 행동주의펀드는 우호 주주들의 지분을 레버리지로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기업을 개선시키는 영향력을 확보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똑같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에스엠도 PBR이 낮진 않았고 금융지주사에 대해서도 자산을 팔아 배당하자는 단순한 주장을 펴지 않고 있다"며 "PEF에서 훈련받은 경험이 있다보니 실제 기업가치를 지속가능하게 키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집중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라인파트너스의 에스엠 행동주의에선 감사인 선임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에서부터 이사회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에 이르기까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내에 정착된 시스템을 단계별로 밟아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음을 선보였다. 2018년 국민연금을 시작으로 기관투자가들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5년여가 지났지만 기관 사이에선 명문상 조항에 그칠 것이란 '패배주의'가 짙었다. 이를 극복하고 첫 성공 사례를 보여 새 판을 열었다는 평가다.

FCP는 KT&G의 주력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의 기업가치를 4조원으로 재평가해 기존 경영진이 ‘황금알’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FCP는 뉴질랜드의 대표 건강식품인 ‘마누카꿀‘이 싱가포르 기업에 매각된 과정에서 30배의 배수가 반영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인삼공사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면 오히려 보수적인 책정이라 설명했다. 회사와 애널리스트들이 인삼공사의 비교기업으로 농심 등 기존 식품회사를 넣어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6~7배가 반영된 1조원으로 평가한 점과 대비됐다. 이어 차 전 부회장등을 깜짝 영입해 "KT&G를 보다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차종현 대표가 이끄는 차파트너스자산운용도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목적의 PEF업과 행동주의를 병행하는 운용사다. 맥쿼리자산운용 출신인 차 대표는 2018년 친정이던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맥쿼리인프라)를 상대로 주주행동주의를 시작해 이름을 알렸다. 맥쿼리인프라 위탁운용을 맡은 맥쿼리자산운용의 높은 운용보수와 방만 경영을 지적, 보수 인하를 이끌어냈다. 이후 사조오양 주주총회에서도 감사 후보 추천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동학개미운동, 주식 관련 컨텐츠 확산 등으로 소액주주들이 응집력과 발언권이 세진 점도 토양이 됐다. 주가 등락에 대중의 희비가 걸린 상황에서 과거의 '기업 사냥꾼' 프레임도 영향력을 다했다는 평가다. 이상현 FCP 대표는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인 써드포인트는 디즈니에 행동주의를 하면서 무리하게 배당을 맞추려 하지 말고 배당을 줄여 OTT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를 키우는 데 쓰라고 오히려 회사에 역제안했다"며 "행동주의는 매년 진화 중인데 무리한 배당 등으로 기업 경쟁력을 깎고있다는 낡은 프레임으로만 맞서긴 점점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조단위 펀드 탄생 초읽기…연기금 공제회도 출자할까
인지도를 알리는 데 성공한 토종 행동주의펀드들의 다음 시험대는 펀드의 대형화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국내외 출자자를 대상으로 1조원 이상 대형 펀드 조성을 준비 중이다. 메리츠자산운용 인수에 나선 KCGI도 6000억대 후속 펀드 조성을 목표 중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국내 연기금·공제회들이 행동주의펀드에 출자자로 등장할 지 여부도 행동주의 시장을 좌우할 관전 요인이다. 캘퍼스가 과거 장하성 펀드에 1억달러를 출자하는 등 해외에선 기관들이 수익률이 높은 행동주의펀드에 일상적으로 투자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론을 의식해 문호가 굳게 닫혀왔다. 현금을 쌓아둔 개인과 지역내 중견 기업 혹은 패밀리오피스 등이 주요 출자자를 구성하고 있다.

한 국내 연기금 CIO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개념이 아직까지도 혼동스럽다보니 공적기관과 공제회가 출자하면 오해를 살 소지가 여전히 크다"며 "장기적으론 수탁자활동과도 면밀히 연결되다보니 액티비즘에 대한 편견이 더 걷히면 기업 체질 개선을 유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는 펀드가 있다면 출자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의 규모가 커지면 결국 상장 대기업 지주사들이 타깃이 될 것이란 게 자본시장의 관측이다. 국내 상장 지주사 특성상 대주주 지분율이 적고, 글로벌 비교그룹 대비 낮은 순자산가치(NAV) 등 가격 매력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 이를 노렸던 엘리엇 등과 달리 '해외 자본'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보니 더 무서운 타깃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SK그룹 등 일부 그룹은 계열사 최고경영진에서부터 회장의 측근 등 의사결정자들이 행동주의펀드 대표들을 물밑에서 만나 주주들의 동향을 수시로 점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앨리엇으로 대표되는 해외 펀드가 아닌 토종 행동주의펀드가 기업들을 겨냥할 경우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해외 투기자본이 단기 차익을 위해 경영에 간섭한다"는 기업 측의 논리가 쉽게 먹히지 않는다. 한 기관투자가는 "한국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주주들에 어떻게 접근해야 효과적인지 체득해온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쥔다는 점에서 방어측 입장에선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 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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