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료·간식비 아껴 월급 준다"…허리띠 졸라매는 스타트업

입력 2023-02-08 17:49   수정 2023-02-16 16:16

#1. 지난해 말 직원의 절반 이상을 구조조정한 A 플랫폼 스타트업은 건강 음료가 꽉 차 있던 냉장고를 텅텅 비웠다. 다양한 칼로리 바와 과자도 사라졌다. 월 100만원 정도 들었던 탕비실의 간식비를 줄였다.

#2. B 플랫폼 기업은 직원에게 무제한 제공하던 스마트 기기와 이용료를 대폭 줄였다. 노트북 사양도 한 단계 낮췄다. 주차 이용은 무제한에서 쿠폰제로 바꿨고, 점심과 저녁 다 제공하던 식대는 점심에만 주고 있다.


벤처투자 혹한기가 해를 넘어 이어지면서 스타트업들이 허리띠를 본격적으로 졸라매고 있다. 지난해엔 정리해고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면 올해는 임차료부터 서버 사용료, 식비·간식비까지 줄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던 서울 강남 지역의 테헤란로엔 사무실 품귀 현상이 일었지만 지금은 딴판이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창업 기업 입주 공간으로 들어가거나 공유오피스로 옮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일었던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이 스타트업 업계에 불고 있다”며 “간식비, 소모품 비용이라도 아끼면 한 사람 월급을 줄 수 있으니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기 높아진 스타트업 입주 공간
8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아산나눔재단은 최근 얼어붙은 벤처투자시장 상황을 고려해 올해부터 입주 공간 마루360·180의 임대 기간을 최대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리기로 했다. 임차료와 사무실 운영비 부담을 호소하는 스타트업이 많아져서다.

온·오프라인 동영상 교육 플랫폼인 탈잉은 지난해 11월 삼성동의 비싼 사무실을 정리하고 성수동에 있는 서울창업허브로 이전했다. 당시 서울창업허브 입주사 3곳을 모집하는 데 99개사가 몰려 33 대 1의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여의도에 이어 마포에 ‘제2서울핀테크랩’을 개관했다. 설립 3년 이내 스타트업 25곳이 최대 3년간 낮은 임차료로 사무공간을 확보하게 됐다.

입주 공간을 찾는 이유는 임차료 때문만이 아니다. 식사비와 간식비부터 건강검진 비용 할인, 클라우드 제공 등 입주사 혜택이 많다. 네이버 D2SF에 입주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아침엔 무료로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고 점심값도 5000원씩 지원한다”며 “직원 복지 비용만 계산해도 아끼는 돈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C랩은 출퇴근 교통편도 제공한다. 디캠프는 입주사에 자란다 키즈존 및 산돌폰트 이용권을 주고 있다.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는 입주 스타트업에 2년간 최대 20만달러(약 2억5200만원) 상당의 구글 클라우드 크레디트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엔 스타트업 전용 크리에이터 스튜디오도 마련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입주사에 MS 클라우드(애저) 사용권 제공, 각종 기술 지원 등의 런처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건강검진 할인 등 40여 종의 혜택을 주고 있으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1억7000만원에 이른다.

정규직 대신 계약직 채용을 늘리는 스타트업이 증가하면서 공유오피스업체 스파크플러스는 고정석을 줄이고 사무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여 호응을 얻기도 했다.
“BEP 맞춰라”…사업 전략 확 바꾸기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 전략을 수정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손익분기점(BEP)을 돌파하지 못하면 투자 유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고정비용을 최소화하고 신규 투자와 인건비를 절감하면서 런웨이(보유 현금을 월 사용 현금으로 나눈 값)를 극대화해 혹한기를 버텨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패션 플랫폼 브랜디는 그동안 신규 고객 유입을 위해 적극 발행해온 이벤트 쿠폰 지급을 대폭 축소했다. 소비자가 구매할 때 쓰는 적립 포인트 최대 사용률을 낮추고, 적립률도 하향 조정했다. 물류 원가를 낮추기 위해 직매입 상품 비중을 높였다. 매년 공격적으로 진행해온 신사업 확장도 멈췄다. 2021년 연간 적자 595억원을 낸 브랜디는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월 단위 흑자를 기록했다.

중국 전문 크리에이터 스타트업 아도바는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 사업 확장을 멈추고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sS)인 ‘아도바로’를 돌파구로 삼고 있다. 자동화 솔루션을 통해 크리에이터 관리에 투입되는 인건비를 줄이고 장기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회사 관계자는 “아도바로 출시 후 3개월 만에 크리에이터 약 250개 팀이 몰렸지만 아도바의 별도 인력 투입 없이 채널 개설, 수익화 인증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기업 전문가 매칭 플랫폼 탤런트뱅크는 올해 정부 지원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진행하는 회생 기업 지원 사업을 시작으로, 올해 500개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전문가를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반려동물 헬스케어 기업 핏펫은 영업 손실을 줄이기 위해 경쟁이 치열해진 동물 등록제 서비스를 정리하기로 했다. 고급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연내 출시해 마진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또 서버 사용료를 낮추기 위해 불필요하게 사용하는 서버 용량을 줄이고 개발 기간도 단축했다. 내부 개발자가 직접 해온 품질 테스트도 SaaS인 테라폼을 이용해 비용을 줄일 예정이다.
낮아진 개발자 몸값
투자 혹한기에 개발자 몸값도 덩달아 낮아졌다. 운영 자금이 바닥난 스타트업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반면 여력이 있는 스타트업은 글로벌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메타, 아마존, 트위터 등 빅테크마저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면서 ‘한국행’을 택한 한국 개발자가 늘어나고 있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는 최근 메타에서 일한 개발자를 채용했다. 3차원(3D) 모델링 스타트업 엔닷라이트, 소통 플랫폼 클라썸도 미국에서 인재를 영입했다. 미국 법인 설립을 준비하는 차량용 전자장비 및 인포테인먼트 기업 드림에이스도 실리콘밸리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를 물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출신 개발자 영입에 성공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지금 같은 투자 혹한기가 좋은 개발자를 확보할 기회”라며 “연봉 4억원을 받던 개발자에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없이 연봉 1억원을 제시했는데 수락했다”고 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는 “예전엔 개발자를 채용하려면 ‘연봉이 얼마냐’란 질문부터 나왔지만, 지금은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느냐’는 답이 돌아온다”며 “망하는 스타트업이 늘면서 개발자 몸값이 확 낮아진 덕분”이라고 말했다.

허란/고은이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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