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아이들이 없어요"…서울 한복판서 벌어진 일 [오세성의 아빠놀자]

입력 2023-02-19 07:21   수정 2023-02-19 09:59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폐업하는 식당에서 볼법한 이 문구가 학교 정문에 걸렸습니다. 지방이나 섬, 산간이 아닙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 화양초등학교가 개교 40년 만인 내달 1일 문을 닫습니다.

1983년 18학급 규모로 개교한 이 학교는 1990년 30학급까지 늘었지만, 2008년부터 학생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재학생은 8학급에 84명, 신입생도 7명에 불과했습니다. 지난달 6학년 학생 18명이 졸업하며 학생 수는 62명으로 줄었는데, 이 학생들은 인근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폐교 소식이 전해지자 학교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으려는 이들의 발길도 이어졌습니다. 화양초를 졸업하고 현재는 인근의 건국대를 다니고 있다는 박모씨는 "다녔던 학교가 사라진다니 믿기 어렵다"며 한참 동안 정문 근처를 서성였습니다. 한 지역 주민은 "예전에는 아이들로 복작댔는데, 이제는 웃고 떠드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니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1990년 1000만명 육박하던 학생 수…올해 520만명 '반토막'
지금까지 서울에서 학생이 부족해 문을 닫은 학교로는 홍일초(2015년), 염강초(2020년), 공진중(2020년)까지 세 곳이 있었습니다. 다음 달이면 화양초까지 네 곳으로 늘어나고 내년에는 도봉고등학교가 통폐합으로 사라집니다. 문을 닫는 학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입니다. 서울 초등학교 10곳 중 1곳꼴로는 한 해 입학생이 50명도 되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 수가 240명이 되지 않는 소규모 학교도 2022년 42곳에서 2027년 80곳으로 늘어납니다.

학령인구도 감소하고 있는데, 지난해 6만2430명이던 서울 초등학교 1학년생은 2027년 3만6638명으로 줄어들 예정입니다. 전국 학생 수를 보면 감소 폭이 더 큽니다. 1990년 국내 초중고교 학생 수는 996만명을 기록하며 1000만명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한 학급은 50명에 육박했습니다. 교실이 부족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운영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1990년만 하더라도 1000만명에 육박하던 학생 수는 올해 520만명으로 반토막 났습니다. 한 학급 인원은 20명 내외입니다. 그나마도 2026년이면 481만명으로 쪼그라들어 500만명 선이 무너질 전망입니다. 2029년이면 425만3593명으로 감소하며 400만명 선도 위태로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나이가 어린 초등학교 1학년생 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 초등학교 1학년생은 42만7317명이었는데, 2029년이면 24만869명으로 7년 만에 다시 반토막이 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까지 40년 동안 서울에서 폐교한 학교가 3곳에 그치는 동안 전국에서는 3855개교가 사라졌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2년 이후 문을 닫은 전국 초중고교는 전남 833곳, 경북 732곳, 경남 582곳, 강원 464곳 등 지방에서만 2473개 학교에 달했습니다.

교육부 추계 자료를 보면 올해 신입생이 1명뿐인 초등학교도 전국 140곳에 이릅니다. 학생보다 교사가 많은 학교도 45곳이나 됩니다. 예·체능 과목은 순회 교사가 맡더라도 필수 교과목은 전담 교사가 상주해야 하는데, 학생 수가 그에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학생 부족으로 폐교하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은 줄 폐원 현실화…수험생들 "교대 안 가요"
한때 수험생들에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교육대학도 기피 대상이 됐습니다. 올해 대입 정시에서 전국 교대 대부분이 사실상 미달했습니다. 정시는 3곳까지 원서를 쓸 수 있기 때문에 경쟁률 3대 1 미만은 미달로 간주하는데, 한국교원대(5.0대 1)와 이화여대(3.9대 1) 외에는 모두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수험생들의 외면에 입학점수도 급락해 대학수학능력시험 9등급으로 경인교대 정시 1차에 합격한 사례까지 나왔습니다.

교대의 인기가 추락한 가장 큰 원인은 학령인구 감소입니다. 올해 서울에서 새로 뽑은 초등 교사는 115명으로 2018년에 비하면 3분의 1 규모입니다. 학교가 문을 닫는 상황이니 교사도 필요하지 않아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교대에서는 자퇴자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 11개 교육대학 재학생 수는 1만5091명으로 10년 전 1만8789명보다 20% 가까이 줄었습니다. 이 기간 입학정원에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3700여명이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보다 먼저 아이들을 만나는 유치원은 이미 줄 폐원이 현실화했습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서울에서만 190개 유치원이 문을 닫았습니다. 매년 38곳씩 사라진 셈입니다. 문을 닫은 곳은 전부 사립유치원이었습니다. 공립유치원은 초등학교처럼 정부 예산이 나오기에 학생 수가 적어도 운영이 가능하지만, 사립유치원은 학생 수 감소가 적자 운영으로 직결되는 탓입니다.

유치원이 급속도로 사라지면서 학부모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습니다. 강서구 가양동에 거주하는 학부모 현모씨는 "아이를 아파트 단지 옆 유치원에 보내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임대 현수막이 걸렸다"며 "멀리 떨어진 유치원을 보내야 할 것 같은데, 등원부터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미래에는 이런 걱정이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지난해 육아정책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495곳인 서울 사립유치원이 2028년이면 절반도 되지 않는 201곳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학령인구 감소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2016년생은 40만6243명, 합계출산율은 1.17명이었습니다. 2018년생부터는 합계출산율이 0.98명에 그쳐 1명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지난해 출생아는 25만4628명, 합계출산율은 0.7명대로 추정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장 최근 통계인 2021년 평균 합계출산율 1.58명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출생아 수의 선행지표인 혼인 건수도 감소세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도 3.8건에 불과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존속 가능성에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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