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대게 없는 대게축제…"러시아산만 먹고 왔다"

입력 2023-03-03 18:35   수정 2023-03-13 16:49


“주인공이 빠져서 축제하기가 좀 민망하네요.”

지난달 26일 경북 영덕의 한 대게 축제 현장. 코로나19에 막혀 4년 만에야 축제 현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축제의 주인공인 영덕 특산품 박달대게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판장에서 일하는 김모씨(57)는 “수온이 상승한 탓에 요즘 대게가 잘 잡히지 않는다”며 “가격도 너무 비싸 손님 열 명 중 아홉 명은 러시아산을 먹는다”고 푸념했다.

한국의 지역 특산물 지도가 급변하고 있다. 수십, 수백 년 동안 지역을 대표하던 특산물이 따뜻한 날씨와 수온 상승 등의 기후 변화로 재배지가 바뀌거나 생산량이 급감하는 등 과거의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외국산 잔치였던 대게 축제
이날 영덕 대게 축제는 외국산 대게 잔치를 방불케 했다. 현지 상인은 “식당 수조 안의 70~80%가 러시아산일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월 영덕의 대게 조업량은 17t으로 5년 전(약 35t)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영덕 박달대게는 이날 기준 ㎏당 20만원을 훌쩍 넘었다. 전년보다 40% 이상 뛴 가격. 영덕 강구항에서 만난 어민 김모씨(63)는 “어제 선원 다섯 명과 열두 시간 동안 대게 15마리를 잡았다”며 “한 번 조업을 나갈 때마다 100만원을 손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덕군은 어획량이 지속적으로 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대게 이외의 관광상품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경북 안동 특산품인 간고등어 역시 외국산에 밀리고 있다. 구이용으로 쓸 만큼 제대로 자란 고등어를 잡기가 어려워서다. 지난해 부산공동어시장의 고등어 출하량은 8만611t으로 전년(9만5908t)보다 15.9% 줄어들었다. 이 중 95%는 사료용으로 쓰이는 ‘잔챙이’다.
북상하는 특산품 지도
지역 대표 특산품 생산지는 지속적으로 북상하고 있다. 경북 영주·대구 등이 주산지였던 사과가 대표적이다. 영주에 있던 사과 농장을 정선으로 옮기는 농민도 적지 않다. 정선에서 사과 농장을 하는 변무림 씨는 “여름에 덥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오거나 열대야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과일의 당도가 떨어진다”며 “반면 선선했던 강원 지역은 예년에 비해 기온이 올라 사과가 자라기 좋은 기온이 됐다”고 설명했다.

제주의 겨울철 별미인 방어는 조업 구역이 강원 인근까지 올라갔다. 강원 지역에서 잡힌 방어는 지난해 4092t으로 제주 어획량(1607t)의 2.5배 수준이다. 전남 신안의 특산물인 흑산도 홍어 역시 어획량이 줄면서 군산에 추월당했다. 업계에선 홍어의 주산지가 군산으로 넘어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 특산품 지도의 변화 뒤에는 지구 온난화가 자리잡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한반도 해역의 표층 수온은 1968년부터 작년까지 55년간 1.5도 상승했다. 전 세계 바다가 같은 기간 1.3도 상승한 것과 비교해도 0.2도 더 올랐다. 특히 난류의 북상이 두드러진 동해는 수온이 같은 기간 2.2도나 상승했다. 육지 기온 역시 30년 전과 비교하면 1도 안팎 높아졌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생물 생태계 변화가 극심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현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은 “한반도 지역의 바다 표층 온도 상승으로 어류의 먹이인 동식물 플랑크톤 수와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며 “고등어 등 주요 어종이 번식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덕·거제=권용훈 기자/김우섭/박종관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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