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리뷰] 조성진의 차이콥스키는 격정적이었다

입력 2023-03-05 18:16   수정 2023-03-06 00:17


피아니스트 조성진(29)의 진가와 인기를 실감한 자리였다. ‘아이돌’이란 단어가 K팝 스타의 전유물이 아니란 것을 보여준 무대이기도 했다. 지난 3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내한 공연 얘기다.

관객의 박수와 환호로만 따질 때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475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명문 악단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70)도 아니었다. 협연자로 나선 조성진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마지막 건반을 누르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30여분의 연주 시간을 3분처럼 느끼게 해준 조성진의 마법 같은 연주에 양복을 빼입은 점잖은 신사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공연 시작과 함께 피아노 앞에 앉은 조성진은 고개를 들어 정명훈에게 눈짓을 보냈다.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정명훈의 손짓에 호른이 웅장한 소리를 내자, 조성진은 묵직한 타건으로 격정적인 선율을 뿜어냈다. 얼마나 세게 건반을 내려치는지, 몸에 반동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섬세한 터치로 전환해 차이콥스키 특유의 짙은 애수를 살려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현악기는 “벨벳 같다”는 조성진의 평가 그대로 피아노 소리를 벨벳처럼 감쌌다. 악단의 다채로운 음색과 피아노의 강렬한 터치가 빚어낸 화음에 청중은 마음을 내줬다. 정명훈은 마치 조성진의 숨 쉬는 타이밍까지 알고 있다는 듯 조금의 오차도 없이 그의 감정과 음악적 흐름에 맞춰갔다. 음색과 음향의 균형도 완벽했다. 조성진의 화려한 기교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저 멀리 밀어내지도 않았고, 반대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응집력 있는 연주가 조성진의 존재감을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차이콥스키가 그린 장대한 서사시를 함께 펼쳐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임팩트 순간을 놓치지 않는 명연이었다.

다음 작품은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 정명훈은 악단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꽉 찬 음향으로 청중을 압도했다. 작은 셈여림에서는 응축된 에너지를 살려내면서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사했다. 악단 특유의 짙고 어두운 음색으로 작품의 우아한 매력을 살려냈다.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에서는 정명훈의 극적인 표현력이 두드러졌다. 분명한 방향성으로 음악을 끌고 나가면서도, 과감한 셈여림으로 작품을 풍성하게 꾸몄다. 4대의 호른은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앙코르곡으로 브람스의 교향곡 3번 중 3악장이 연주되자 청중석에서는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정명훈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대표 레퍼토리여서다. 명징한 음색이 우수에 찬 브람스 선율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채워지는 음악이 있다”는 자신의 말처럼 70세가 된 노(老) 지휘자의 감성은 지난 세월만큼 깊어져 있었다. 고작 29세인데 이렇게 많은 걸 이뤄낸 ‘젊은 피아니스트’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앞으로 무얼 채워 나갈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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