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찰" 선언에 환호성…美서 '60억' 조선 백자가 탄생한 순간 [현장 리포트]

입력 2023-03-22 10:40   수정 2023-03-22 11:47



“375만달러(49억원), 375만달러에서 더 없나요?”

21일(현지 시간) 오후 세계 양대 경매 업체인 미국 크리스티의 뉴욕 경매장. 쉴 새 없이 손을 들어 올리던 경매 참여자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몇 초가 흘렀을까. 곧 ‘낙찰’(sold)이라는 진행자의 선언과 함께 경쾌한 해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저기 환호성이 터졌다. 역대 최고가의 조선시대 달항아리(moon jar)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조선시대 달항아리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56만달러(60억원·최종 가격)에 낙찰됐다. 지금껏 전세계 경매에 나온 조선 백자 중 최고가다. 최근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국내 달항아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한국 고 미술품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에 출품된 달항아리는 지난 가을부터 전세계의 관심을 끌며 이번 경매의 ‘백미’로 꼽혀 왔다. 18세기 제작돼 일본에서 발견된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높이는 45.1cm로 거대하지만, 매끈한 곡선과 단아한 자태를 유지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2000년대 들어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 중 최고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라는 평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타카키 무라카미 크리스티 아시아 미술 경매 담당자는 “동그란 달 모양과 깨끗한 흰색의 바디 컬러를 유지하면서 이 정도의 크기의 항아리를 손으로 빚어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며 “윗부분(목)과 아랫부분(받침)이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됐고 깨지거나 흠집이 난 부분도 없는 역대급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티는 경매에 앞서 한국, 홍콩에서 사전 공개 투어를 진행하고, 뉴욕에서는 잠재적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프라이빗 투어를 열었다.

경매에 앞서 크리스티가 예상한 낙찰 추정가는 100만~200만달러(약 13억~26억원·세전 가격)였다. 입찰은 예상 보다 더 뜨거웠다. 전세계에서 웃돈을 얹으려는 콜(전화)이 잇따랐고 온라인 입찰도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 볼 법한 ‘조용한 전쟁’이 현장에서 벌어졌다.

‘해머 프라이스’(현장 낙찰가)는 375만달러. 낙찰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구매자 수수료와 세금을 더한 최종 가격은 456만달러. 같은날 경매가 진행된 작품 중 세계 100대 미술품으로 꼽히는 일본의 판화 ‘카나가와만의 큰 파도’(great wave)의 낙찰가(280만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2000년대 들어 진행된 달항아리 경매 중 최고가인 2007년 100만달러(13억원)의 다섯 배에 달한다.



이날 경매를 보기 위해 파리에서 뉴욕을 찾았다는 기욤 세루티 크리스티 최고경영자(CEO)는 “역대 출품된 달항아리 중 최고가 낙찰이 나와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다양하고 의미 있는 한국 미술품 컬렉션을 꾸준히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매에는 달항아리 외에 다양한 한국 컬렉션이 공개됐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팔경도’(사진), 박수근의 ‘앉아있는 세 여인’, 백자청화 수화문 각병, 고영훈 작가의 회화 ‘달 2020’ 등도 새 주인을 만났다.

전세계 수집가들 사이에서 달항아리를 필두로 한국의 고미술 작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미국 미술계가 혁신가 3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한 글로벌 스타 BTS(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소문난 달항아리 애호가다. 크리스티 측은 경매 전 홈페이지에도 ‘RM이 사랑하는 달항아리’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다. 빌 게이츠도 최영욱 작가의 달 항아리 작품 등 세 점을 직접 구해매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티 측은 “중국과 일본 등에서 만들어진 작품도 많지만, 꾸밈 없이도 힘이 느껴지는 한국의 달항아리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며 “낙찰 가격 역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관심을 둘 만 하다”고 말했다.

뉴욕=정소람 특파원/사진=정준영 한경디지털랩 PD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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