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지하철 사당역 앞에 추진하던 2800억원 규모의 22층 주상복합 부지가 토지담보대출(브리지론) 연장에 실패해 공매로 넘어갔다. 대출 이자율과 공사비가 급등한 가운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으로 서울 역세권 아파트 사업까지 쓰러지자 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공사비가 1.5배 오르고 금융 비용이 급상승해 사업수지가 2021년 당시 계획보다 크게 악화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작년 가을부터 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PF대출이 지연되자 채권자 농협은 원금 일부라도 건지기 위해 땅을 공매로 넘겼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정식 시공 계약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시행사와 함께 사업을 되살리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짓기만 하면 분양은 문제없을 것으로 여겨지던 서울 역세권 아파트 사업마저 좌초되자 업계의 위기감은 한층 커지고 있다. 전국의 크고 작은 사업 부지가 공매로 넘어가는 가운데 올 들어선 핵심지역 개발사업도 쓰러지고 있다. 지난 2월 채무불이행으로 공매에 넘겨진 서울 청담동 고급빌라 ‘루시아청담514’ 부지는 이달 초부터 2263억원의 최저가로 입찰을 진행했으나 두 차례 유찰됐다. 부실채권 전문투자사 하나에프앤아이가 대주단에 참여해 사업 정상화를 추진 중이다. 고급 연립주택 건설을 추진했던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 주차장 부지 역시 2월 공매에 넘겨져 이달 초부터 최저가 2873억원에 입찰을 진행했으나 다섯 차례 유찰됐다. 입찰가격은 2223억원까지 떨어졌다.
책임준공 약정을 해주던 신탁사들 역시 최근 건설사 부도로 돈을 대신 물어주는 일이 발생하자 엄격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신탁사 보증에 의존하던 중소 건설현장이 잇따라 공매로 나오고 있다. 서울 성산동 179 도시형생활주택 사업은 2개 동 건축허가까지 받은 상태에서 추가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땅값을 빌려준 삼정저축은행은 부지를 311억원에 공매로 넘겨 이달 말 입찰을 기다리고 있다.
금융회사들도 딜레마에 빠졌다. 사업성을 엄격하게 검토하면서 본 PF대출을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정작 자신들의 브리지론 부실이 커지고 있다. 브리지론만 취급한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농협 등 2금융권 기관들도 손실이 커지고 있다. 새마을금고는 건설사와 신탁회사 등 대출 연체액이 최근 한 달 새 9000억원 늘었다. 송기종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실장은 “리스크에 노출된 증권 캐피털 부동산신탁 저축은행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