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1억원 고급차와 연두색 번호판

입력 2023-03-29 10:31  


 -욕망과 불편한 시선의 충돌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 가운데 1억원이 넘는 고급차 비중은 25.3%(7만1,899대)에 달했다. 올해 2월까지 누적에서도 점유율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20년 15.7%, 2021년 23.6%와 비교하면 해마다 비중이 늘어나는 중이다. 


 국산차도 1억원 이상의 고가차 판매는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제네시스 G90의 경우 2021년 연간 판매는 5,089대에 머물렀지만 지난해는 2만3,218대에 달했다. 물론 신차 효과 덕분이지만 국산차 또한 초고가 자동차의 판매는 과거 대비 증가하는 형국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소득 증가와 젊은 층의 선택적 소비 등이 거론되지만 기저에는 비싸고 좋은 차를 사려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야 자신도 경제적 능력이 넘치는(?) 계층에 속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899년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은 상류층의 비싼 상품 소비를 '사회적 지위의 과시'로 정의했다. 또한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사회적 과시를 따라하려는 욕망을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로 정의했다. 덕분에 고급차를 사려는 욕망은 줄지 않고 제조사는 이런 심리를 활용해 가격도 쉽게 올려 왔다. 그 결과 고가(高價)의 기준도 꾸준히 상향되는 중이다. 

 그런데 고급차를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아 희소성이 떨어지면 오히려 판매가 줄어들 수도 있다. '누구나 타는 차'로 인식돼 자칫 과시 효과가 떨어지는 탓이다. 1950년 미국의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은 이를 '스놉 효과(snob effect)'로 정의했다.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 롤스로이드 등이 가격을 끝없이 올리면서도 생산 대수를 크게 늘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고급차를 구입하는 사람일수록 과시 효과를 원하되 비용은 중소형차 구매자보다 더욱 절감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고가차를 업무용으로 구입해 세금은 줄이되 이용은 업무와 개인을 섞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둘의 사용 구분이 어렵다는 점을 파고든 절묘한(?) 방법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세무 당국도 정확하게 용도를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들고 나온 방안이 사업용의 번호판 색상 변경이다. 원래 없었던 연두색 번호판을 사업용 자동차에 슬쩍 끼워 넣으면 불편한 시선이 만들어져 사적 이용을 자제할 것이란 생각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고가차 이용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넛지(nudge)'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그러자 고가차 판매사들도 시장 전망을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다. '불편한 시선'이 구매 장벽으로 작용할 것인지, 아니면 연두색이 오히려 과시 효과를 더욱 높일 지의 여부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판매에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법인이 지불하던 비싼 가격을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어서 장벽이 발생하는 탓이다. 하지만 고가 차를 사려는 욕망 자체가 감소하는 것은 아닌 데다 연두색의 넛지 효과를 피할 방법으로 렌터카를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차라리 '하, 허, 호' 글자가 새겨진 렌터카가 또 다른 과시 방법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고가 차를 빌려타는 것 또한 나름의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렌터카는 법인으로 이용해도 글자만 다를 뿐 번호판 색상은 흰색으로 동일하다. 

 그럼에도 고가차 제조사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연두색이 새로운 과시 효과의 상징으로 떠오르는 현상이다. 정책은 넛지 효과를 기대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해 업무용 고가차 구매가 예상보다 늘어날 수도 있어서다. 비싼 차로 남들과 다르다는 시선을 받으려는, 그리고 이들과 동일시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어느 누구도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니 말이다. 과연 연두색 번호판은 욕망을 제어할 수 있을까? 제어가 된다면 욕망은 어디로 옮겨갈 지 궁금하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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