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경찰초소부터 옛 고교까지…책방으로 바뀐 '봄날의 추억'

입력 2023-04-06 17:46   수정 2023-04-07 02:36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이들에게 봄은 축복이다. 흩날리는 꽃잎과 보드라운 바람은 독서가들에겐 최고의 사치. 길 가다 멈추는 모든 곳이 나만의 서재가 된다. 도심과 전국 곳곳엔 책과 함께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첫 주인공은 인왕산 ‘더숲 초소책방’. 이곳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 청운동 창의문 앞에서 내린다. 버스 문이 열리면 꽃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노랗게 만개한 개나리부터 흐드러진 벚꽃, 수줍게 얼굴을 내민 분홍·보랏빛의 진달래, 이름 모를 들꽃까지. 꽃길로 변한 한양도성 둘레길을 따라 15분 정도 걷는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쯤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책방을 만날 수 있다.

초소책방의 옛 모습은 삼엄했다.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인왕CP’가 이 자리를 지켰다. 버려졌던 경찰초소는 2018년 인왕산 출입이 전면 개방된 후 서울시와 종로구가 현재의 모습으로 리모델링해 통유리창이 시원한 산 속 책방이 됐다. 책방 내부에는 기존 초소의 콘크리트 골조와 철문이 멋스럽게 남아 있다. 2층 테라스 자리는 초소책방의 클라이맥스다. 남산타워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선 환경, 채식 관련 서적부터 베스트셀러에 이르는 120여 권의 책을 판매한다. 다만 주차 공간이 협소하니 꽃길을 산책할 겸 도보로 이동하는 걸 권한다.

서울 북촌 정독도서관도 봄의 명소다. 4월엔 정문부터 이어지는 벚꽃길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남기려는 회사원들로 북적인다. 관광객들은 1980년대 옛 교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이곳은 1977년 옛 경기고 터에 세운 서울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 학교 건물의 외관을 유지한 만큼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교실은 열람실로, 복도는 각종 세미나 정보를 전시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장서는 50만여 권에 이른다.

정독도서관의 화룡점정은 앞뜰이다. 교정이었던 공간은 ‘책 읽는 정원’이 됐다. 편안하게 몸을 기대 책을 읽을 수 있는 카우치와 조그만 책장도 야외에 마련돼 있다. 이곳은 조선의 이름난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인왕산을 바라봤던 자리라고 전해진다. 국보 같은 풍경을 감상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명당이다.

롯데월드몰 4층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아크앤북’은 잠실 나들이객의 인기 코스다. 전면이 통유리여서 벚꽃 핀 석촌호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망이 좋은 어린이 책 판매대 쪽이 특히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높은 층고와 아치형 책꽂이가 있는 현대적인 인테리어는 창밖 전망과 잘 어우러진다.

경남 통영시 봉평동 ‘봄날의책방’ 역시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드는 봄나들이 핫플레이스다. 입구에 핀 동백꽃과 연보라색 라일락 무리를 지나면 아담한 가정집 건물이 나온다. 사람이 살지 않는 38년 된 폐가를 책방으로 되살렸다. 오래된 집의 골조를 남겨 세월의 정취를 담았다. 다섯 개 방으로 구분한 공간에서 각각 다른 테마의 책과 작품을 전시한다. 이중섭, 윤이상 등 통영에서 살았던 예술인의 행적을 만나보는 것도 묘한 재미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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