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석학들도 티격태격하는 'AI 시대의 인간'

입력 2023-04-14 18:13   수정 2023-04-15 01:07

데카르트는 마음과 몸을 별개로 봤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나’는 물리적 실체인 몸과 비물리적 실체인 마음으로 이뤄져 있으며, 몸의 존재는 의심할 수 있지만 마음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후 철학자마다 의견이 갈렸다.

홉스는 “인간 정신 역시 물질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스피노자도 ‘몸과 마음은 같다’고 봤다. 이에 라이프니츠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복잡한 기계가 있다면, 그 기계를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부품 외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논쟁은 지금도 벌어진다.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간 의식은 어떻게 생겨나는지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그런 논쟁을 다룬 책이다. 세계적인 학자들을 앉혀놓고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대담을 나누게 했다.

저자 마르셀루 글레이제르는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다. 책을 쓴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과학과 인문학의 건설적인 협업을 위해 과학자와 인문학자를 불러 모아 우리 시대의 가장 도전적인 질문들에 관해 토론하고 논쟁하도록 했다.”

대담자로 나선 몇몇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데카르트의 오류>를 쓴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를 쓴 의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등이다. 책은 실재의 본질은 무엇인가부터 인공지능(AI) 시대 인류의 미래, 시간의 흐름이란 무엇인지, 사이보그는 가능한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첫 장을 여는 주제는 ‘인간 의식’이다. 다마지오와 대담하는 이는 철학자인 데이비드 차머스 미국 뉴욕대 교수. 그는 ‘의식의 어려운 문제’라는 개념을 처음 들고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의식의 쉬운 문제란 뇌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통해 다양한 자극에 뉴런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식으로 연구할 수 있다.

어려운 문제는 뇌의 물리적 과정에서 주관적 경험이 왜, 그리고 어떻게 발생하느냐는 것이다. 정보 처리는 로봇이나 AI도 한다. 챗GPT만 보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AI는 자기에 대한 의식이 없다. 차머스는 전통적인 과학 방법 만으론 의식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마지오는 “의식은 뇌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마음은 곧 뉴런이고 그게 전부야’라는 식의 단순한 환원주의에는 반대한다. 그는 우리의 뇌와 신경계가 주변 환경과 다차원적으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의식이 생겨난다고 본다.

철학자인 퍼트리샤 처칠랜드와 천문학자인 질 타터는 ‘지능’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언젠가 지능이 뛰어난 AI 혹은 외계 생명체가 나타나 인류를 위협하지는 않을까. 처칠랜드는 “지능을 가진 기계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예측 중 일부는 공학자들이 기계 지능 문제를 해결했다는 잘못된 가정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AI가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지려면 한참 멀었다는 것이다.

외계 문명도 마찬가지다. 세티(SETI·외계 지능 탐사) 연구소에서 일하는 타터는 “우리에게 위협이 될 만큼 충분히 진보한 기술을 가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기술이 발달할 만큼 문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선 공격성을 줄이고 친절함과 관대함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헸다. 지능을 가진 외계 문명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책은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지만 모호하다. 쉽지 않은 내용을 학자들 간의 대화만으로 전달하는 까닭이다. 어떤 부분은 불친절하고 어렵게 느껴지고, 어떤 부분은 겉만 핥고 넘어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게다가 답이 없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결론이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기초지식이 있어서 논쟁의 구도를 이해할 때 흥미가 생기는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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