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서 한강까지 촛불로 켠 클래식 열정…100개 도시 홀렸죠"

입력 2023-04-20 17:49   수정 2023-04-28 14:31


90년 역사의 구세군 중앙회관을 리모델링한 서울 ‘정동1928 아트센터’. 지난달 이곳에선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수천 개의 촛불 사이사이로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자 어느덧 비발디의 사계 현악 4중주가 흘러나왔다. 연주자들의 보잉이 공기를 가르고, 관객들의 숨소리가 새어나올 때마다 촛불은 미세하게 흔들리며 악보를 따랐다. 이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는 콘서트홀에서의 음악 감상과 전혀 다르다. 클래식을 처음 듣는 이들에겐 편안한 분위기를, 음악 마니아들에겐 이전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안긴다. 지난 4년간 전 세계 100개 이상 도시에서 300만 명 넘는 관객을 홀린 ‘캔들라이트 콘서트’의 이야기다.


캔들라이트 콘서트는 공간의 한계를 벗어난 파격적인 시도다. 정통 클래식홀에서 벗어나 에펠탑에서, 비행기 날개 아래에서, 한강 위에서 촛불을 켜고 연주한다. 이 콘서트를 시작한 사람은 올해 26세의 스페인 출신 안드레아 로페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피버에서 캔들라이트 콘서트를 처음 기획하고 이끌고 있는 그를 인터뷰했다.
유럽 클래식 음악계의 고민, 촛불로 풀다
로페스는 4년 전 유럽 클래식계의 오래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고민은 바로 ‘늙어가는 관객들’.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더 이상 넓어지지 않고, 흰머리가 성성한 관객들만 클래식 콘서트홀을 찾으면서 모든 클래식 연주자와 기획자의 위기의식이 커지던 때였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계는 ‘어떻게 하면 젊은 관객들을 모을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관객층을 확대하기 위해선 클래식이 더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고민 끝에 촛불이란 콘셉트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친밀감’에 초점을 맞추고 공연을 기획해 나갔다. 촛불 수천 개로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면 클래식 음악이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관객들도 마음을 열기 쉬울 것으로 봤다. 무대와 객석 배치도 연주자를 둥글게 둘러싸고 더 가깝게 앉을 수 있도록 했다. 로페스는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마법에 빠진 것 같은 특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정통 클래식홀도 벗어났다. 대성당, 궁전, 도서관, 정원, 루프톱 등 세계 곳곳의 역사적인 명소나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다녔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작한 공연은 공연 회차를 예정보다 늘려야 했을 정도로 흥행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 등 세계 100여 개 도시로 진출했다. 로페스는 파리의 에펠탑 1층과 영국 맨체스터의 비행기 날개 아래, 수족관과 성 등에서 촛불을 켰다.

“마드리드에서 처음 공연을 열었을 때 관객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아, 이건 됐다!’란 직감이 들더라고요. 물론 공연 초반에 가짜 촛불을 진짜로 오해하고 화재 위험이 있다면서 경찰이 출동한 에피소드도 있었지만요.(웃음) 전체 관객의 약 70%가 40세 이하일 정도로 젊은 관객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클래식 어렵다? 오감으로 들으면 쉽다”

촛불로 둘러싸인 연주회에서 관객들은 기존 클래식 공연장보다 더 자유롭다. 악장과 악장 사이엔 박수를 치면 안 된다는 등의 엄격한 규칙도 없다. 옷차림 역시 클래식한 정장을 차려입을 필요가 없다. 연주 레퍼토리도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다. 비발디,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정통 클래식부터 한스 짐머와 히사이시 조의 영화 음악, 퀸이나 콜드플레이 같은 록 밴드 음악, BTS의 음악 등 현대적인 곡도 아우른다.

촛불 사이에서 연주하는 건 아티스트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야외 공연장이나 라이브 스트리밍 등을 활용해 꾸준히 공연을 열었다. 로페스는 “공연이 끝나고 연주자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며 “촛불 속에서 연주하는 경험이 매우 특별했으며 관객들과 가까이서 눈을 마주치고 연주해서 좋았다는 등 소감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을 처음 찾은 캔들라이트 콘서트는 세빛섬 마리나파크를 비롯해 한강 이크루즈 유람선, 정동1928 아트센터 등에서 열렸다. 로페스는 “서울은 역사와 문화적 요소를 갖춘 도시인 만큼 욕심나는 장소들이 많다”며 “서울에서 발레나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공연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대들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아요. 청각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경험이 관객들에게 먹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촛불로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밝히는 공연을 여는 게 목표입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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