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요구는 중국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지난달 말 ‘안보 심사’에 들어간 데 따른 재반격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마이크론에 대한 심사를 통상적인 감독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규제의 맞대응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론의 2022회계연도(2021년 9월~2022년 8월) 중국(홍콩 포함) 매출은 49억7600만달러(약 6조6000억원)다. 마이크론 전체 매출(307억달러)의 16.2%다.
이달 초 중국의 마이크론 조사 소식이 전해졌을 때 글로벌 반도체업계에선 “한국 반도체기업에 긍정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마이크론의 중국 판매가 막히는 상황이 됐을 때, 경쟁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지 매출을 늘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이날 미국 요청이 국내 업계에 전해지면서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통제가 현실화하면 국내 반도체기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반도체기업이 그동안 중국에 투자한 금액은 70조원에 달한다. 중국 시장 내 반도체 매출도 미국에 이어 각 기업의 ‘톱3’ 안에 들어간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중국 반도체 매출(차이나·상하이 법인 합계)은 31조5039억원, SK하이닉스(우시판매·차이나·충칭 법인 합계)는 16조3191억원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은 2019년 11월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해 ASML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았다. 대당 가격이 3000억원 수준인 장비 수출이 막힌 이후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2020년 18%에서 지난해 14%로 낮아졌다.
미국의 추가 규제 관련 외신 보도에 대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모두 “미국의 요청을 듣지 못했다”며 공식 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 내부에선 ‘난감하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탈(脫)중국’ 전략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황정수/장서우 기자 hj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