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듣고, 호퍼 보러…호텔로 갑니다

입력 2023-05-01 18:12   수정 2023-05-02 00:34


지난달 27일 부산 해운대 시그니엘 호텔 4층 그랜드볼룸. 연회장으로 쓰이는 이곳에 수천 개의 촛불이 들어섰다. 오후 7시가 되자 촛불로 둘러싸인 둥그런 무대에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연주자 네 명이 올랐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비발디의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1시간 남짓 흘러나왔다. 관객들은 살며시 눈을 감기도 하면서 은은한 조명 속에 ‘사계절’을 보냈다.

여성 현악 4중주 ‘리수스 콰르텟’이 선보인 ‘캔들라이트 공연’(어두운 방 안에서 촛불만 켜놓고 클래식 연주를 즐기는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간직했다. 이날 공연은 롯데호텔의 최상위 브랜드인 시그니엘의 첫 번째 클래식 무대였으며 티켓은 매진됐다.

호텔이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놀이터’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구색 갖추기’ 용으로 그림 몇 점을 걸어두는 데 그치던 호텔들이 최근 공연·전시 연계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친 영향이다. 애호가들도 문화예술을 ‘프라이빗’하게 즐기기 위해 호텔을 찾고 있다.
연주자와 대화하며 즐기는 공연
시그니엘 부산에서 열린 캔들라이트 공연은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객실 1박과 공연 2인 관람권이 포함된 33만원짜리 ‘캔들라이트 앳 시그니엘 부산’ 패키지 120개는 일찌감치 ‘완판’됐다. 촛불은 진짜가 아니라 전기로 밝히는 것이었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숙박권이 포함되지 않은 2부 공연 티켓 역시 모두 팔렸다. 호텔에 묵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시그니엘 부산을 찾은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일반 공연장에 비해 소수 정예로 연주를 즐길 수 있는 데다, 연주자와 소통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다. 이날 공연에서 연주자와 관람객 사이의 거리는 불과 1~2m. 연주자들은 악기를 보여주면서 연주 기법을 설명하거나, 곡에 대한 감상을 묻는 등 관람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공연을 보러 온 이유림 씨(33)는 “연주자들이 비발디가 어떤 생각으로 작곡했는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 연주를 들어야 하는지 등 자세한 설명을 해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스페셜 도슨트’ 들으러 호텔로
클래식 공연뿐만이 아니다. ‘프라이빗 도슨트’를 위해 호텔을 찾는 사람도 있다. 그랜드조선 부산은 최근 호텔 안에 입점한 오케이앤피 갤러리(옛 가나아트 부산)와 손잡고 투숙객을 대상으로 한 스페셜 도슨트 프로그램을 내놨다.

‘도도새 작가’로 불리는 김선우 작가의 전시를 전문 큐레이터가 설명하고, 작가의 사인과 도록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오상현 오케이앤피 대표는 “김 작가가 워낙 ‘MZ세대’ 컬렉터에게 인기가 많다 보니, 스페셜 도슨트를 위해 호텔을 예약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미술관들도 관람객층을 넓히기 위해 호텔과 손을 잡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 티켓과 웨스틴조선 서울 숙박권을 합친 ‘호캉스(호텔+바캉스)’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 코오롱그룹이 운영하는 미술관 스페이스K도 근처 메이필드호텔과 손잡고 볼리비아계 미국인 작가 ‘도나 후앙카 개인전’ 티켓과 숙박 4시간 연장 혜택을 포함한 상품을 팔고 있다.

부산=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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