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막스 “SVB 사태가 美은행 연쇄 파산 일으키진 않을 것”

입력 2023-05-08 11:39  

이 기사는 05월 08일 11:3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은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투자자들에게 전달한 메모를 통해 “SVB 사태가 은행 연쇄 파산을 예고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산업과 업종 전반에 걸쳐 추가적인 신용경색과 고통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SVB가 다른 은행에 비해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에 취약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게 막스 회장의 설명이다. 미국 스타트업의 자금줄이던 SVB가 단기로 받은 예금을 장기 국채 등에 투자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으로 보유한 채권에서 대규모 채권평가손실이 나타났다. 이에 놀란 예금자들이 앞다퉈 자금을 회수했고 SVB는 더 많은 채권을 헐값에 급히 팔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막스 회장은 “리스크에 비해 수익률이 높지 않은 장기 채권을 보유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SVB 파산이 전체 은행 시스템 붕괴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막스 회장은 “SVB의 실패가 미국 은행 시스템의 만연한 문제를 암시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다만 예금자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과 자산, 부채, 유동성, 자본금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 등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SNS) 등장이 새로운 위험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내놨다. SNS를 통해 확산된 불특정 정보가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막스 회장은 “SVB의 경우 온라인으로 인출을 요구할 수 있는 예금자 집단을 중심으로 채권 손실 정보가 빠르게 전파됐다”며 “SNS를 포함한 디지털 커뮤니테이션의 등장은 은행을 위태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상업용 부동산(CRE) 시장의 우려에 대한 목소리도 전했다. 시스템적 위기가 나타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진원지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꼽은 것이다. 금리 인상 등에 따른 채무불이행 확산으로 부동산 가치가 폭락한다면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최근 우려가 커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기준금리 상승은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경기 침체 가능성도 임대료와 입주율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치투자의 대가 하워드 막스는 미국 부실채권 전문 사모펀드사인 오크트리캐피털의 공동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오크트리캐피털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1500억달러(약 170조원)에 이른다. 막스 회장은 시장이 좋을 때는 관망세를 보이다가 환경이 악화되면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시장역행투자자(contrarian)'로 유명하다.

아래는 막스 회장이 오크트리 고객들을 대상으로 작성한 메모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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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리콘밸리은행에서 얻은 교훈

이 메모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다룬 글 중 하나가 아닙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제 받은메일함에 그런 글이 수십 편 도착했으니 여러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을 단순하게 복기하기보다는 그 의미에 관해 논하고자 합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SVB (그리고 시그니처은행) 파산은 연이은 은행 파산을 예고한다는 점보다는 투자자와 대주 간에 이전부터 존재했던 경계심을 증폭시켜 산업과 업종 전반에 걸쳐 추가적인 신용경색과 고통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회성 사건인가?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 일의 전조인가?

SVB의 경우 다수의 요인으로 인한 다소 특수한 사례였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이유에서 사태의 시발점으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SVB 는 한 가지 업종―기술 및 헬스케어 분야의 벤처캐피탈 기반 스타트업―과 한 지역―캘리포니아 북부―에 과도하게 사업을 집중했습니다. 상당수 지방 은행이 그와 유사한 집중도를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변동성이 높은 업종과 지역에 동시에 집중하지는 않습니다.

? 대상 업종과 지역이 호황을 맞자 SVB 의 사업은 급성장했습니다.

? 최근 몇 년간 투자자들의 자금이 유입되는 주된 투자처로 스타트업이 부상했으며 그 자금 중 상당액이 SVB 에 예치됐습니다. 이로 인해 SVB 예금액은 2019년 말에 620억 달러였던 것이 2021년 말에는 1890억 달러로 3배나 증가했습니다.

? 같은 이유에서 SVB 고객 중 상당수는 자본금이 넘쳐났기 때문에 차입이 거의 요구되지 않았습니다. SVB에 예금은 쌓여 갔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출 수요는 없었습니다. SVB 의 경우처럼 현금 유입이 풍부한 나머지 차입이 불필요한 고객을 상대하는 은행은 거의 없습니다.

? SVB는 전통적인 은행업만으로는 누적된 현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재무부채권과 미국 정부기관에서 발행하는 모기지 담보부 증권에 91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이 때문에 SVB 의 투자자산이 자산 합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 육박했습니다. (평균적인 은행은 이 비율이 약 4 분의 1입니다)

? 추정하건대 저수익률 환경에서 수익률을―그리고 그에 따른 수익을―극대화할 목적으로
SVB는 장기 만기 유가증권을 매입했습니다. SVB는 이 유가증권을 ‘만기보유(HTM)’ 자산으로 분류했습니다. 매도할 의사가 전혀 없으므로 은행 대차대조표상에서 시가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의미였습니다.

? 연준이 지난해 금리 인상에 착수하자 채권 가격이 급락했으며 당연히 채권 잔존 만기가 길수록 하락 폭도 컸습니다. SVB가 보유한 채권의 시가는 순식간에 210억 달러가 빠졌습니다.

? 은행의 손실 소식이 퍼지자 예금자들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습니다. SVB는 인출액을
충당하기 위해 채권을 팔아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채권들은 더 이상 HTM로 분류될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해당 채권은 ‘매도가능(AFS)’으로 분류돼야 했습니다. 이는 (a)
SVB 재무제표상에서 해당 채권을 시가로 재평가했으며 (b) 실제 매도로 인해 손실이 실현됐음을 의미합니다.

? 손실이 인식되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벤처캐피탈 커뮤니티 전반에 부정적인 소문이 급속도로 확산됐으며 추가적인 인출로 이어졌습니다. SVB에 개설된 예금 계좌 중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비율인 94%는 예금액이 25만 달러를 초과하므로 FDIC가 전액을 보증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해당 예금이 ‘소매’보다는 ‘기관’에 더 가까웠음을 의미했습니다. 게다가 SVB 의 고객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후원자가 같았고 가까운 곳에서 거주하고 근무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상기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SVB 는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경우 은행 인출 사태에 특히 취약한 상태였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됐습니다. 다만, 상기한 요인들은 상당수가 SVB 에 국한된 문제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SVB 파산이 미국 은행 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을 시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SVB와 다른 은행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저는 위에서 SVB 와 다른 은행들의 몇 가지 차이점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요소들에 대한 검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 자산/부채 불일치 ? 금융의 불일치는 위험하며, 은행은 여기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예금은 은행의 주된 자금원이며 장기간을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예금은 사전 통지 없이 언제라도 인출이 가능합니다. 반면에, 대출은 은행의 주된 자금 사용처이며 대부분의 대출은 기간이 1 년(상업 대출)과 10~30 년(모기지) 사이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예금자는 언제라도 자신의 돈을 되돌려줄 것을 은행에 요구할 수 있는 반면에, (a) 모든 예금자의 예금을 일시에 반환할 수 있는 충분한 현금을 보유한 은행은 없으며 (b) 은행의 주된 자산은 단기간에 수익을 낼 수 없으며 (c) 현금이 필요한 경우, 특히 액면가에 근접한 가격을 원한다면 대출 자산을 매각하는 데 장기간이 소요됩니다. 지불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행 경영진이 취득 자산의 리스크를 인지하는 등의 행동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유동성은 그보다 일시적인 특징을 갖습니다. 그 정의상 어떠한 은행도 일정한 인원을 넘어서는 예금자가 동시에 인출을 요구할 경우 그 요구에 대응할 만한 충분한 현금을 보유할 수 없습니다. (예금자로부터) 단기로 차입해서 장기로 대출하는 것이 은행의 업무라는 점에서 상기한 문제들을 관리하는 것은 중요한 임무입니다. 이러한 불일치는 다른 대부분의 불일치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수익률 곡선의 우상향 형태에 의해 부추겨집니다. 차입을 원할 경우 곡선의 ‘단기’ 영역에서 최저 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1일이나 1개월 단위로 차입을 하면서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금리를 장기간으로 고정하지 않았으므로 이자 비용이 증가할 리스크에 노출됩니다. 마찬가지로 대출(또는 채권 투자)을 원할 경우 장기 대출을 통해 이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금리가 상승하면 자본 손실 리스크를 부담하게 됩니다. 만약 수익률 곡선을 따라간다면 항상 단기로 차입하고 장기로 대출하면서 SVB 유형의 불일치 가능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 높은 레버리지 ? 은행은 보잘것없는 자산수익률에 의존하여 운영됩니다. 은행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차입하기 위해 예금자(또는 연준)에 저리의 이자를 지불하고 그러한 자금을 약간 높은 금리로 대출하거나 투자하여 완만한 스프레드를 보장합니다. 그러면서 은행은 말 그대로 규모로써 그러한 한계를 보완합니다. 은행은 높은 레버리지를 동원하며 이는 적은 자기자본으로 많은 사업을 벌임으로써 낮은 자산수익률을 높은 자본수익률로 전환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만, 자기자본 대비 총자산 비율이 높다는 것은 자산 가격이 소폭으로 하락하더라도 은행의 자본이 증발하여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업종을 불문하고 높은 레버리지와 자산/부채 불일치의 결합만큼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붕괴 원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은행은 이 두 가지 요인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 신뢰에 기반한 의존 ? 예금자는 안전성과 유동성을 목적으로 은행에 돈을 예치하며 그 대신에 낮은 수익률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은행이 인출 요구에 응할 수 있는 능력은 당연히 중차대합니다. 예금자는 외견상 어느 은행에서든 유동성, 안전한 보관, 낮은 금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은행의 서비스는 다른 은행의 서비스와 근본적으로 차별화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예금자는 사소한 이유로도 얼마든지 은행을 바꿀 의사가 있으며 은행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돈을 그대로 예치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제가 즐겨 인용하는, ‘평균 수심이 5 피트인 강을 건너다 익사한 신장이 6 피트인 남성을 잊지 말라’는 격언을 기억할 것입니다. 평균을 전제로 생존한다는 논리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불리한 시기를 포함하여 항상, 아니 특히 불리한 시기에 생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기로 차입하여 장기로 투자할 경우 그러한 능력을 중대하게 위협합니다. 높은 레버리지는, 비유적으로, 키가 큰 사람이 평균적으로 얕은 물에서 사망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금융기관인 경우에는 고객의 신뢰를 상실하는 것이 세 번째 이유입니다. 요지는 은행이 근본적으로 레버리지가 높은 확정수익 투자자라는 것입니다. 은행이 소유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이나 채권(대부분의 은행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습니다)은 금리가 상승하는 환경에서 경제적 가치가 하락합니다. 장기 보유 목적의 자산에 대해서는 은행이 가격 하락을 인식할 필요가 없지만 인출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당 자산을 매도하는 경우에는 재무제표에 가치 하락분을 표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금자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은 은행 업무에서 절대적으로 핵심적인 요소이며 이는 자산, 부채, 유동성, 자본금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SVB의 경우 금리가 상승하여 자산의 상당 부분이 절하되자 자기자본이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 맥락에서 저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와 제 아내 낸시는 2005 년에 아들 앤드류가 대학에 입학하자 얼마간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 전까지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 해에 4 개월 동안 영국에서 머물기로 결정했으며 그 기간에 저는 오크트리 런던 사무소에서 일했습니다. 우리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영국 은행에 현금을 이체하고 주택금융조합(미국의 저축대부기관에 해당하는 금융기관) 몇 군데에 CD로 예치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노던록(Northern Rock)이었습니다. 금융위기의 조짐이 움트던 2007년 9월에 노던록은 전통적으로 의존해 온 도매 자금 시장에서 자금을 유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자 예금자들은 너도나도 계좌를 해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금요일 오후에 은행원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다른 곳으로 이체할 수 있는지 물었고 그는 조기 인출 시 2%의 위약금이 부과된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주저 없이 “월요일 아침에 즉시 그 돈을 이체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노던록에 예치된 원금 전액에 비한다면 2% 위약금은 하찮은 액수로 보였습니다. 자, 이제 위약금 없이 예금을 인출할 수 있었던 SVB 예금자의 심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우연치 않게 영국 정부가 문제의 그 주말에 노던록 예금에 대한 지급을 보증했기 때문에 굳이 돈을 이체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제가 은행 파산을 가까스로 모면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은행을 위태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추세는 소셜미디어를 포함하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등장입니다. 16년 전만 하더라도 노던록 예금자들이 은행이 직면한 상황을 눈치채기까지 수일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일단 예금을 옮기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은행 영업시간 중에 지점을 방문해서(참으로 케케묵은 방식입니다) 줄을 서고 인출 신청서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SVB의 경우에는 온라인으로 인출을 요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고도로 연계된 예금자 집단을 통해 채권
손실 소식이 삽시간에 전파됐습니다. 그로 인해 단 하루 만에 전체 예금액의 3 분의 1 이상이
유출됐습니다. 요즘에는 어느 은행이든 디지털 커뮤니케이션과 온라인 인출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지역과 고객의 성향을 감안할 때 SVB 의 예금자들은 인출 위험이 특히 높았습니다.

약 20년 전에 제 파트너였던 셸던 스톤은 흥미로운 우화를 저에게 들려줬습니다. 배를 타고 이리호(Lake Erie)를 건넌다고 가정합시다. 선장이 선내 스피커로 “모든 승객은 배의 왼쪽으로 이동하십시오”라고 방송합니다. 1 분 후에 선장은 “모든 승객은 오른쪽으로 이동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다시 1 분이 지나자 선장은 “왼쪽으로 되돌아가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런 식으로 평소보다 험한 파도를 헤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선내 스피커의 기능을 수행하며 누구라도 자신이 선택한 메시지를 배포할 수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질리언 테트(Gillian Tett)가 ‘디지털 군중’이라고 명명한 이 현상은 다양한 분야, 그 중에서도 특히 정보와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분야에 막대한 파급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SVB 의 붕괴는 필연적이었는가?
정리하는 의미에서 SVB의 파산을 초래한,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 요인들을 다시 한 번 짚어
보겠습니다.

? 만약 은행이 예금 기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대출을 실시했다면 잠재적으로 변동성이 높은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만약 은행이 매입한 채권의 만기가 그처럼 길지 않았다면 가격 하락에 그처럼 큰 폭으로 노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 만약 연준이 금리를 그처럼 급격하게 올리지 않았다면 채권 가치가 그렇게 대폭 하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만약 예금자들이 집단으로 이탈하지 않았다면 은행은 채권을 매도하고 손실을 실현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은행 대출과 우량 재무부채권 그리고 모기지 담보부 채권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가 은행의 지급능력 상실을 유발하는 붕괴에 취약할 수 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SVB의 채권 투자 규모, 잔존 만기, 연준의 금리 인상폭은 SVB 를 위태롭게 만들었으며 급속한 인출은 대책을 마련하기 훨씬 전에 문제를 비화시켰습니다. SVB의 소멸을 들여다보면 채권 매입의 배경으로 작용한 은행의 의사결정이 파산을 유발한 그릇된 원인인 동시에 아마도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공시 보고서에 따르면, SVB 경영진은 금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나 하락할 것이라는 ‘도박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기대가 은연중에 행동으로 표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추측하건대 그것이 희망 섞인 낙관에 기대어 무분별하게 수익률을 추구한 사례에 대비되는 의식적이고 신중한 의사결정이었다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채권 매입은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그 2년 동안 30년 만기 재무부채권의 수익률은 0.99%, 2.45% 사이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낮은 수준의 금리가 상승하는 대신에 그대로 유지되거나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경제학과 투자 분야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결정하기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2020년에 연준과 재무부가 막대한 현금을 투입했고 2021년에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한 가지 자명한 사실이 있었다면 리스크는 크고 잠재 수익률이 미미한 장기 채권을 보잘것없이 낮은 수익률로 보유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금융위기와의 비교
SVB 파산에 이은 시그니처은행 붕괴, 퍼스트리퍼블릭은행 구제,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는 3월에 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 와코비아은행, 워싱턴뮤추얼, AIG 가 파산하거나 구제를 요청했던 2007~2008 년 세계금융위기에서 목격했던 수순에 따른 은행 연쇄 파산에 대한 공포심에서 비롯됐습니다. 그 기간에, 그 중에서도 특히 2008 년의 마지막 4 개월 동안에는 투자자들이 금융 시스템을 총체적인 위기에 빠트릴지도 모르는 제지할 길 없는 연쇄 파산의 가능성을 걱정하는 상황까지 내몰린 시기가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런 상황에 다시 봉착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미리 밝혀 두건대 저는 은행이나 은행 규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2008년과 2023년의 유일한 유사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극소수의 금융기관에 문제가 국한됐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둘 사이의 공통점이 대부분 피상적이라고 판단합니다. 한편,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로서,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주택 모기지 분야에서 일시적인 광기에 사로잡혔다는 단순한 사실이 세계금융위기가 터진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 아무 의심 없이 모기지 상품의 낮은 채무불이행률이 유지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 모기지 시장에 인위적으로 거액을 투입했습니다.
? 소득이나 자산을 증명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서브프라임 차주에게 상당액을 대출했습니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이용하여 구조화되고 레버리지가 적용된 모기지 담보부 증권을 고안했습니다.
? 많은 경우 형성 절차를 반복할 목적으로 RMBS 에서 리스크가 가장 높은 트랑셰에 자기자본을 투자했습니다.

이들은 모기지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그로 인한 대출 기준 완화가 대규모 모기지 채무불이행 사태를 촉발할 가능성을 무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모기지로부터 비롯된 구조화증권의 취약성을 무시했습니다. 투자자, 은행, 신용평가기관(이들은 수천 건의 RMBS에 AAA 등급을 부여했습니다)은 재무상태를 공개하지 않고 모기지 대출을 받기 위해 고율의 이자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모기지를 갚을 것이라고 어수룩하게 믿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에 기초하여 그들은 모기지 채무불이행률이 모기지 담보부 증권의 건전성을 위태롭게 만드는 수준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실체가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 중 상당수가 기꺼이 대출을 승인하고 그에 기반한 증권에 투자했습니다.

현 상황에서 저는 세계금융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비견할 만한 요소를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과대 포장되거나 실체가 미흡한 요소들이 여기저기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SPAC나 암호화폐를 지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며 추측하건대 실체가 불분명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금융 시스템을 위태롭게 만들 만한 수준으로 미국 주요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에 올라 있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가장 극심했던 시장의 과잉은 2022년에 조정이 끝났으며 지금은 영향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만, 경계하는 의미에서 이 메모의 마지막 몇 단락을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그에 덧붙여,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사라진 기관들의 명단에는 금융 시스템에서 명백하게 중요한 위치에 있던 기관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SVB에 대해서는 그런 평가를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 금융 시스템이 SVB가 내건 약속에 과도하게 의존했기 때문에 광범위한 거래상대방 리스크에 노출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계금융위기는 누구나 알고 있던 초대형 은행들에 파급력을 미쳤으며 정부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큰 은행들도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SVB 파산이 그와 동일한 리스크를 유발한다고 판단할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2008년에 거대 은행들이 위험에 처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연준을 비롯한 경제 정책입안자들이 (기관과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구제 계획을 내놓을 수 있었으며 기대했던 효과를 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준이 팬데믹 이후의 고점으로부터 긴축 절차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SVB 사태에 대한 연준의 대응에 (a) SVB 예금을 전액 보증하고 (b) 은행권에 추가로 유동성을 공급하며 (c) 경제에 막대한 유동성을 투입하는 동시에 (d) 대차대조표를 확대하는 조치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SVB 나 그와 비슷한 사태가 불가역적인 금융위기를 촉발할 만한 연쇄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태의 규모와 관련하여 눈에 거슬리는 세태를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언론에서 ‘이번 달은 2020 년 이래로 증시가 가장 좋았다’거나 ‘오늘 증시는 10월 이후로 가장 많은 1일 신저가를 기록했다’는 식의 기사를 접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언론은 이런 유형의 극적인 비교를 좋아하며 가장 최근의 예로 ‘SVB는 세계금융위기 이후에 파산한 가장 큰 은행이다’를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교가 항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SVB 의 경우 미국 역사상 2번째로 규모가 큰 은행 파산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역대 최대였던 워싱턴뮤추얼의 3 분의 2 에 불과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지난 15년간 금융 부문이 유의미한 확장을 거듭한 까닭에 2008년 당시 워싱턴뮤추얼의 3070억 달러 자산은 현재 SVB 의 2090억 달러보다 파급력이 훨씬 더 강했습니다.

규제에 대한 고찰
세계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아 있던 2011 년 3 월에 저는 규제에 관하여(On Regulation) 라는 제목으로 메모를 작성했습니다. 금융 규제는 상당히 주기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그 글의 요지였습니다.

폭락, 붕괴, 광범위한 부정 행위는 강화된 규제를 요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또한, 그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규제 강화가 대다수 당사자의 구미를 충족시킵니다. 하지만 새로운 규제가 효과를 발휘하고 금융 환경이 보다 안전하고 양호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면 자유시장론자와 기득권자들이 강력한 규제는 더 이상 불필요하며 금융 시스템의 실효성을 제약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일례로, 1929년에 대폭락이 일어나자 서부 개척 시대를 방불케 했던 월가를 억누르기 위해 1930~1940년에 전면적으로 새로운 규제가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면 대폭락의 고통은 이미 잊힌 지 오래였으며 자유시장의 효능에 대한 맹신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 결과 다수의 규제가 철폐됐으며 그로 인해 훗날 세계금융위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초래한 행위가 가능해졌습니다.

세계금융위기는 또 한 차례 일련의 새로운 규제를 불러왔습니다. 대원칙 중 하나는 파산을 방치하기에는 규모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위험에 처하면 불가피하게 구제해야만 하는 금융기관의 경우, “머리인 주주와 경영진이 승리하고 꼬리인 납세자가 패배하는” 상황을 야기하는 리스크가 큰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원칙은 겉보기에는 합리적으로 여겨졌으며 도드-프랭크 법과 볼커룰을 통해 시행됐습니다. 은행 규제는 전반적으로 크게 강화됐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자 규제에 대한 상투적인 반발이 불거졌습니다. 가장 비근한 예가 규제 한도입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로 자산 500 억 달러 이상의 모든 은행에 엄격한 기준이 적용됐습니다. 하지만 2018년에 (부분적으로는 SVB CEO의 로비 덕분에) 규제 당국이 필요성을 납득하여 그 한도를 2500억 달러로 높였습니다. 그 결과 한도를 인상할 당시 자산이 500억 달러 전후였던 SVB에 완화된 규제가 적용됐습니다. 이로 인해 SVB는 대대적인 확장이 가능했으며 불과 며칠 만에 파산을 맞이했습니다.

그럼에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규제 덕분에 현재 미국 주요 은행들은 자본구조가 양호하며 풍부한 유동성과 건전한 대차대조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세계금융위기 때와 같은 연쇄 은행 부도 사태를 목도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저는 현행 규제와 그에 따른 은행권의 재무상태가 충분히 건실하지 않다는 주장을 접하곤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행, 그 중에서도 특히 주요 은행은 세계금융위기 기간이나 그 전과 비교하여 훨씬 건실하며 전반적으로 SVB 보다 훨씬 건실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흥미롭게도, 캐나다와 호주 그리고 영국은 미국보다 은행 수가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GDP가 2조 달러에 육박하지만 국내 은행은 34 곳(GDP 1조 달러당 17곳)에 불과하며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버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GDP가 20조 달러인 미국은 2021년을 기준으로 FDIC가 예금을 보증한 국내 시중은행의 수가 4236개였으며 이는 1조 달러당 212곳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감시 대상 은행의 수가 적다면 규제가 더 효과적일까요? 대형 은행이 소형 은행을 흡수하고 예금이 대형 은행에 집중될 경우 미국 은행 수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하지만 민간 주체의 역할과 미국 정부 시스템에 포함된 그들의 자금을 감안한다면 큰 변화는 예상되지 않습니다.

도덕적 해이
이른바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과 같은 정부 해법의 문제점 중 하나는 그 유형을 불문하고 도적적 해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제 주체들이 설사 실수를 범하더라도 반드시 구제되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는 그들이 거리낌없이 고위험 고수익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공하면 부자가 되고 실패하더라도 구제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빗대어 ‘이익은 민영화하고 손실은 국유화한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대량 인출 사태에 직면한 SVB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3월 9일에 세간에서는 예금 전액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구제 조치에 반대하는 주장의 근거 중에는 도덕적 해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손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예금을 맡기기 전에 은행의 건전성을 검토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이 경우 주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로 인해 부실하게 운영되고 부실한 자본구조를 갖춘 은행이 영업을 지속하면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예금자가 그러한 기능을 수행할 것을 기대하기란 단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은행의 운영은 자산/부채의 불일치와 예금자의 신뢰에 대한 의존으로 대변되므로 외부에서(SVB 경영진이 명백한 실수를 범했던 것으로 후일에 밝혀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내부에서조차)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평가하기란 극히 어렵습니다. 오크트리가 지난 28 년간 사업을 영위하면서 예금 수신 금융기관에 투자한 사례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오크트리가 내부자가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은행에 대한 투자는 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잡할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파악이 불가능한 재무 공시와 신뢰에 대한 의존 때문에 저희가 기대하는 수준의 기업 분석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은행의 재무제표를 분석하고 지급능력과 유동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금자에게 그러한 판단을 기대한다면 은행업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공황기에 예금자 보호 제도가 도입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이유에서 SVB 예금을 전액 보증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매우 적절했습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사실로서 경영진과 주주는 구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용어로 ‘베일인(bail-in)’이 적용됐으며 손실을 떠안았습니다. 이들의 손실이 앞으로는 투자자와 은행 경영진이 의사결정 시에 한층 더 신중을 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AT1
SVB 파산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지만 금융기관과 관련하여 최근 뉴스에 보도된 주제인 기타기본자본(Alternative Tier 1) 채권 혹은 AT1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에 유럽 규제 당국은 은행권이 추가적인 자기자본(‘기본자본’)을 조성하고 레버리지를 축소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잠재적인 자본 제공자들은 은행권에 존재하는 리스크를 감안하여 유인책을 요구했습니다. AT1은 채권과 유사한 수익률, 만기 상환 약정, 채권자 지위를 보장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최근 UBS 가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구제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금융 규제 당국인 FINMA는 (a) 주주에게는 소정의 보상을 제공하고 (b) 170억 달러 규모의 AT1 보유자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사자들은 즉각적으로 거세게 반발했으며 소송 위협이 뒤따랐습니다.

AT1이 부채 증권으로 포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은 FINMA가 주주에 대한 AT1의 순위를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 가치를 소각시킬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결정을 통해 FINMA는 AT1의 순위를 주주보다 후순위로 끌어내렸으며 스스로를 채권자라고 생각했던 투자자들을 정리했습니다. 3월 23일자 <블룸버그> 기사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크레디트스위스 AT1 투자설명서를 보면 소위 제각 사유가 발생할 경우 소각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첫 장부터 강조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하에서는 채권에 대한 이자 발생이 중단되고 채권 잔액 전액이 0으로 영구 자동 상각될 수 있다. FINMA 는 은행의 자본건전성 개선 노력이 ‘부적절하거나 비현실적’인 경우 혹은 파산, 지급불능 또는 정상 영업 중단을 막으려는 ‘특수한 여론의 지지’가 있는 경우 ‘건전성 사유’라고 정의되는 소각 사유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맷 레빈(Matt Levine)은 이 규정이 크레디트스위스 사태에 적용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만약 은행의 자본 요건 충족 기준인 보통주자본비율이 7% 아래로 떨어지면 AT1 은 0으로 상각된다. 변제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한마디로 완전히 소멸한다…. 이 증권은 기본적으로 속임수다. 투자자의 눈에는 마치 채권처럼 보인다. 이자를 지급하며 5년 후에는 상환한다. 상당히 안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규제 당국의 눈에는 마치 주식처럼 보인다. 만약 은행이 문제에 봉착하면 AT1을 소각함으로써 자본금을 조성할 수 있다. 만약 투자자는 채권이라고 생각하고 규제 당국은 주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둘 중 하나는 틀린 것이다. 이 경우에는 투자자들이 틀렸다. 특히, 투자자들은 AT1 가 주식보다 순위가 앞서며 AT1 가 손실을 감수하기에 앞서 보통주가 소각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보통주자본비율이 7% 아래로 떨어질 경우 0으로 상각하는 것이 AT1의 근본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오피니언, 머니 스터프(Money Stuff), 2023 년 3월 20 일. 굵은체 추가)

그렇다면 투자자들을 오도했던 것일까요? 저의 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크레디트스위스가 AT1 (2018년에 발행한 20억 달러 규모의 7.5% AT1)을 발행했을 때 투자설명서에 명시된 문구(맷 레빈 제공)를 보면 ‘7.500 퍼센트. 우발 상각 영구 기본자본 자본어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목에 ‘상각 자본어음’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이상 리스크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일전에 저는 버니 매도프(Bernie Madoff)에 관한 글에서 여러분이 철저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말하거나 그가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이 철저한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테스트를 통과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크레디트스위스 AT1 의 경우에도 여러분이 투자설명서를 읽고 이해했다고 말하거나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평범한 부채증권처럼 보였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둘 다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제 3의 길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규제 당국이 소각 권한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만약 누군가가 합법적으로 여러분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면, 특히 그런 행동이 의심의 여지 없이 부도덕하지 않다면 실제로 그런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 하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고수익 채권 투자자들은 이와 유사한, 회사 경영진이 채권자로부터 주주에게 가치를 이전할 목적으로 취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이른바 ‘이벤트 리스크’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왔습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경우 규제 당국은 AT1을 소각하는 대신에 주주들에게 주당 몇 프랑을 지불하는 대가로 협조를 이끌어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황을 감안할 때 크게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본질적으로 리스크가 수반되는 은행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SVB 붕괴에 따른 심리적 파급효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SVB,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스위스크레디트가 동종 업체라는 사실 외에는 다른 연결점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금융기관인 까닭에 이들이 관련된 사태는 예금자와 투자자의 신뢰(혹은 불신)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동시다발적인 문제들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며 은행 4곳에서 거의 동시에 문제가 발생하자 염주처럼 줄줄이 엮여서 시스템 붕괴 가능성을 논하는 서사를 창작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4곳의 은행들 간에 가시적인 연결점이 없지만 최근의 위기는 세상을 뒤흔들 만한 파급력을 분명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경제나 시장 참가자가 뒤흔들리면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이 절정이었던 1933 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상황은 물리적으로, 심지어는 경제적으로도 연결될 필요가 없습니다. 시장에서 두려운 사태가 연달아 일어나면 매우 강력한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저와 제 파트너들이 지난 38년간 투자하는 동안 경험한 신용 위기들은 일반적으로 (a) 마이너스 경제 성장, (b) 시장의 과잉, (c) 불리한 대외 상황, (d) 투자자와 금융산업 관계자 집단 내에서의 공포가 결합되어 촉발됐습니다. SVB 를 비롯한 다른 은행들의 붕괴는 신용 위기를 촉발시킬 만한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금융기관이 가용한 여신을 축소하여 일부 차주가 퇴출되는 상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SVB 파산은 앞으로 몇 달 동안 스타트업 업계가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을 것임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지방과 지역의 은행들은 규제 감독이 강화되는 동시에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대형 은행이나 머니마켓펀드로 현금이 몰리면서 예금이 이탈하는 상황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동산 자금원으로서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여러 지역에서 오피스 건물과 상가, 심지어는 다가구 주택까지도 압력에 직면함에 따라 부동산 소유자와 개발업자는 상황이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개 상황을 (a) 더 이상 금리가 하락하거나 0에 근접하지 않고 (b) 연준이 현재의
고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직전 수 차례의 위기 때처럼 완화 기조를 펼 수 없으며 (c) 포트폴리오에서 불리한 상황이 튀어나오는 현실과 연관지어 본다면 제가 이전 메모 상전벽해(Sea Change) (2022년 12월)에서 예상했던 결과가 증명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쉽게 돈 버는 환경이 SVB를 비롯한 여타 은행들이 직면한 어려움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들 은행의 파산은 보다 엄격한 은행 감독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앞으로는 상황이 그리 순탄치 않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워런 버핏의 비유를 빌자면, 바닷물이 조금 빠지자 해안 가까이에서 벌거벗고 헤엄치던 사람들이 일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남은 의문은 물 속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숨어 있는지, 그들이 모두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질 것인지 여부입니다.

투자자들이 만사 형통이라고 생각하면 낙관론이 정점을 치닫고 좋은 매물은 찾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심리가 절망으로 돌아서면 저가 매수자와 자본 제공자가 유리한 패를 쥐고 유리한 수익률을 올릴 기회를 잡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합리적인 상황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SVB 붕괴를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 초기 단계로 판단합니다.

* * *
저는 심리적으로건 금융의 측면에서건 SVB 파산만으로 전방위적인 확산이 일어날 것으로는 예상하지 않지만, 현재 은행권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로 미국 은행에 관한 메모를 끝맺을 수는 없습니다. 상업용 부동산(‘CRE’), 그 중에서도 특히 오피스 건물을 담보로 제공된 대출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현재 CRE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금리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일부 차주는 고정금리의 혜택을 입고 있지만 전체 CRE 모기지의 약 40%는 2025 년 말까지 차환이 요구되며 고정금리 대출의 경우 추정하건대 높은 금리가 적용될 것입니다.
? 고금리는 높은 자본환원율(부동산의 가격에서 순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을 요구하며 이로 인해 대부분의 부동산 가격은 하락할 것입니다.
? 경기 후퇴 가능성은 임대료와 공실률 그리고 그에 따른 임대인의 소득에 불길한 징조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 앞으로 1 년 정도는 전반적으로 여신 제공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주 5일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근무 방식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임대인의 근본적인 사업모델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근로자들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지만 대출기관이 상환 조건을 계산할 때 공실률을 어떻게 가정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미국 은행의 총자산은 23조 달러가 넘습니다. 은행은 금융권에서 부동산 대출액이 가장 많은 금융기관이며 대략적인 수치를 추산하면 4.5 조 달러에 달하는 CRE 모기지 잔액의 약 40%, 액면가를 기준으로 약 1.8조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수치를 근거로 CRE 대출은 평균적인 은행의 자산에서 약 8~9%를 차지하며 이는 상당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과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직접 CRE 대출 자산에 추가하여 상업용 모기지 담보부 증권에 대한 투자를 감안해야 한다는 점에서 총 CRE 익스포저는 그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CRE 대출 비중은 모든 은행에서 고르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일부 은행은 부동산 시장이 ‘더 뜨거웠던’ 까닭에 하락률이 더 높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일부 은행은 가장 심각한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높은 저급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제공했습니다. 일부 은행은 높은 LTV를 적용하여 모기지를 제공했습니다. 일부 은행은 자산에서 CRE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습니다. 마지막 요인과 관련하여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최근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이 2500억 달러 이상인 은행들은 총자산에서 CRE 대출에 노출된 비율이 4.5%에 불과하지만 자산이 그 미만인 은행들의 경우에는 11.4%로 나타났습니다.

은행권의 레버리지가 매우 높은 수준이고 자기자본이 고작 2.2 조 달러(총자산의 약 9%)에 불과한 상황에서, 평균적인 은행이 보유한 것으로 추산한 CRE 대출액은 자본금의 100%에 육박합니다. 따라서 평균적인 대출 대장에 포함된 CRE 모기지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평균적인 은행의 자본금에서 그에 준하는 비율이 소각되어 자본 잠식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평균적인 대형 은행은 위험기준자기자본 대비 CRE 대출 비율이 50%인데 반해 소형 은행들은 그 비율이 167%에 달합니다. 오피스 건물 모기지와 기타 CRE 대출에 대한 유의할 만한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미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관련 은행이 손실을 감수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만약 합리적인 LTV 를 적용하여 대출을 제공했다면 은행권의 대출이 위태로운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모기지 손실을 흡수할 만한 충분한 자기자본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모기지 채무불이행은 일반적으로 상황의 종료가 아니라 대주와 임대인이 협상에 착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경우 그로 인해 채무조정을 통해 대출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은행권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 대한 손실을 입을 것인지 여부 혹은 그 강도가 어떠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모기지 채무불이행 사태가 1 면을 장식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최소한 그로 인해 대주들이 공포에 사로잡히고 자금 조달과 차환 시스템에 지장을 초래하며 시장의 위기감을 부추기는 데 일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수순에 따른 상황의 전개는 앞으로 수개월 동안 가시화될 추가적인 고비를 더욱 가중시킬 잠재력이 있습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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