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선 건조' 길 열어준 발 빠른 정부 조치 [유창근의 육필 회고]

입력 2023-05-15 10:00   수정 2023-05-25 09:15


한진해운 사태를 어느 정도 수습해가던 무렵 정부에서도 발 빠르게 정책적 조치를 취했다. 한진 사태 발발 이후 2개월도 안 된 시점인 2016년 10월 말 제6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 초대형선과 탱커선 신조 등에 대한 길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초대형선 20척 건조의 근거를 2018년 4월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바뀌었으니 정책도 새롭게 단장해야 하는 차원이었고, 실제 근거는 2016년 10월31일 발표한 이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었다. 초대형선을 위한 준비는 2017년 10월 심천 선언 전에 이미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발주 준비가 다 된 상태였으나 당시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재검토를 위해 당초 2018년 4월께(선박 투입 예정일인 2020년 4월의 2년 전) 예정됐던 초대형선 건조 계약이 같은 해 10월 말로 6개월 지연됐다. 그렇게 최적의 타이밍을 놓친 현대상선은 선가가 10% 오른 가격에 계약했다. 두고두고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진 사태 후속 처리 와중에도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근거로 신조 계획을 수립해나갈 수 있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환경 규제가 시작되는 2020년에 맞춰 투입하는 것으로 하고, 초대형 유조선은 반선되는 선박의 대체용으로 빠른 시기에 건조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당시의 2020년 초대형 컨테이너선 투입시 손익추정치는 최저 수준이던 2017년 운임 수준이 2020년 이후까지 지속될 것으로 가정하고 2020년 매출 8조1000억원, 영업이익 4100억원으로 흑자 전환해 2022년에는 매출 10조원, 영업이익이 7900억원 정도 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는 2022년에 HMM은 당시 추정치의 12배 넘는 수익을 냈다. 만약 시황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더라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 재연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초대형선 투입으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원가 구조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2016년 11월 한진해운 미주노선 영업망과 해당 선박 및 인력 매각을 위한 입찰을 단행했다. 현대상선도 입찰에 참여했지만 SM상선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입찰 과정에서 현대상선이 들러리로 참여했다든지, 입찰가를 1달러 써냈다든지 등의 루머가 흘러나왔지만 사실과 달랐다. 현대상선으로서도 최선을 다해 입찰에 임한 결과였다.

전후 사정이 어땠든 이미 한진 사태가 벌어진 만큼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항로 운영권을 인수하고 인력도 흡수 운영하는 것이 순리라고 여기고 있었던 나로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나마 SM상선으로 가지 않고 현대상선으로 입사를 원하는 한진해운 국내 직원 60여명과 해외 근무 직원 40여명을 품에 안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진해운의 미주·아주 운항권을 얻은 SM상선은 초기 고전했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2M과 단기간 협력하면서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 2M과 결별 후 홀로서야 할 시기에 와 있다. 한국해운에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정책적 조치와 함께 일단 한진해운의 남은 자산부터 지켜야 했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의 해외 터미널 자산 회수를 위해 당시 미국 LA항 한진해운 전용 터미널, 일본 도쿄항의 전용 터미널, 대만 가오슝의 전용 터미널, 지중해 알헤시라스 터미널 등의 지분 인수에 착수했다.

LA항에 한진해운이 54% 소유·운영하고 MSC가 46% 지분 참여하고 있던 전용 터미널은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따라 계약상 우선 인수권을 갖고 있던 MSC로 소유가 넘어가게 돼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조만간 2M과 협력하는 파트너인 점을 들고 미국 북서부 지역 터미널 간 협력 등을 거론하며 HMM이 25%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대만 터미널은 현대상선이 자영 터미널을 운영하던 상태였고 두 터미널 간의 큰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다행히 가오슝 항만 당국 협조 의지가 강해 인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도쿄 터미널의 경우 노조 관할권 등 복잡한 일본 내 하역업계 관행상 문제에 부딪혀 인수에 실패하고 말았다.

스페인 알헤시라스 터미널도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수에 난항이 있었다. 우선 당시 한진해운이 대주주로 운영권을 갖고 있었으나 터미널의 주 이용자는 CMA-CGM으로 전체 물량의 과반에 달했고, 항만 당국에서는 조만간 터미널을 확장할 계획을 바탕으로 입찰을 예고하고 있었다. 지중해 건너편 모로코의 탕헤르에는 머스크가 터미널을 건설 중이어서 CMA-CGM의 지분 참여를 유도하는 것으로 했는데, 추후 그 같은 방향으로 마무리됐다.

또한 2016년 초 현대상선이 재정적으로 어려웠을 때 싱가포르의 항만운영사 PSA에 넘겨준 부산 신항 컨테이너 부두 HPNT 운영권을 찾아오는 일에도 착수했다. 2020년 초대형선 투입을 앞두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현대상선이 2018년 4월 PSA와 재협상, 과거 계약에 남아 있던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공동 운영키로 합의함으로써 초대형선을 맞이할 터미널 준비가 끝났다.

이렇게 해서 기존 운영 중이던 미주 서안의 타코마 전용 터미널, 지분을 확보한 LA의 TTI 티미널, 부산 HPNT 터미널, 가오슝 자영터미널, 지중해의 알헤시라스 터미널, TNWA(The New World Alliance) 시절 지분을 확보했던 로테르담의 전용 터미널을 연결하는 글로벌 링크가 어느 정도 완성된 것이다. 여기에 2018년 협의를 시작한 싱가포르 PSA와의 조인트벤처(JV·합작투자) 운영사가 2020년 9월 운영에 들어가 링크 완성도를 높였다.

※ [대한민국 해운강국의 길 - 유창근 전 HMM 대표 육필 회고] 5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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