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타야 더 오래간다"…쓰임새 바꿔 문화가 된 옛집

입력 2023-05-18 17:56   수정 2023-05-19 02:26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한옥을 밖에서 슬쩍 보고 지나갑니다. 한옥은 보는 대상이 아니라 소통하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한옥에 살아본 사람들은 한옥은 사람이 끊임없이 드나들어야 상하지 않고 기품있게 유지된다고 말한다. 손길이 닿을수록 낡는 다른 물건들과는 정반대다.

대구의 남쪽 끝 지동마을(못골)에서 500년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킨 고택이 대표적이다. 3300㎡가 넘는 이 넓은 한옥은 정몽주와 김종직에서 이어지는 성리학의 맥을 이었다고 평가받는 김굉필의 후손이 대대손손 살고 있는 곳이다. 500년 고택의 이름도 그의 호를 땄다. 한훤당 고택. 앞에선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반기고 뒤에선 500년 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사당이 고택을 감싼다.

이곳에는 아직도 김굉필의 20대손 김백용 씨(78)가 살고 있다. 그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고택의 모습이 안타까워 대문을 활짝 열었다. 작은 건물을 새로 지어 카페로 만들고 사랑채와 행랑채를 손님들에게 내줬다. 한옥은 관찰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돼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됐다.
대구 남쪽 끝엔 조선시대 가옥이
수백 년을 버텨온 고택도 전쟁의 참상을 완전히 비켜가진 못했다. 치열한 낙동강 전투 과정에서 한훤당 고택의 많은 건물이 파괴됐다. 기와집 70여 채가 모여 있던 마을의 대다수 집은 철저히 파괴됐고 많은 이가 마을을 떠났다. 이제 지동마을에 남은 집은 13가구. 대부분 70대 이상 어르신이다. 김백용 씨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고택도 갈수록 낡았다. 세월의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가끔 안채에서 나와 손님들과 대화하는 그는 “원래 한옥에선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물 한 잔이라도 나눠야 하는데 찾는 사람이 많아져 그러지 못해 카페를 열었다”고 말했다.

대구 남쪽 끝에 지동마을이 있다면 북쪽 끝엔 옻골마을이 있다. 경주최씨 집성촌인 옻골마을엔 20여 채의 조선시대 가옥이 모여 있다. 1694년 지어져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집인 백불고택도 이곳에 있다. 이 마을에선 한옥 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다.

외곽에만 고택이 있는 건 아니다. 전국 최대 ‘젊음의 거리’로 꼽히는 동성로에서 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관광객이 줄지어 사진 찍는 스타벅스 대구종로고택점이 나온다. 지난해 개장한 이곳은 스타벅스의 유일한 ‘진짜 한옥’ 카페다. 전국 곳곳에 지어진 전통한옥 모양을 흉내 낸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1919년 지어진 고택을 개조했다. 앞쪽 사랑채는 헐리고 상가 건물이 들어서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100년이 지난 2019년에 본래 규모로 복원됐다. 안채는 100년 전 모습 그대로다. 처마 끝 풍경 소리를 들으며 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개항 도시’ 부산엔 100년 전 적산가옥들이

조선 말기 최초의 개항장이던 부산항 주변에서도 100년 넘은 고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영남 사대부의 고택이 많이 남아 있는 대구와 비교해선 건축 양식에 차이가 있다. ‘적들이 만든 집’이란 뜻의 적산가옥(敵産家屋)이 그 주인공. 광복 직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은 오랜 세월을 거쳐 과거사 청산의 대상이 돼 대부분 사라졌는데 지금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자 현대적 활용도를 찾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부산 수정동엔 전형적인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 들어선다. 일본식 정원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대지에 맞배지붕 대문 세 칸과 몸채 한 동이 있다. 2층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마루를 설치한 긴 복도, 다다미방이 그대로 남아 있다.

광복 후 요정으로 사용되던 시절 이름인 정란각으로 더 유명한 이곳은 문화공감수정이란 이름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가수 아이유가 2017년 ‘밤편지’의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유명해졌다. 수정동에서 멀지 않은 초량동엔 높은 아파트에 둘러싸인 작은 적산가옥이 있다. 현대식 고층 아파트와 작은 2층 목조주택의 대비가 선명한 이곳은 1925년 지어져 20년간 일본인이 살았고 광복 후 80여 년간 한국인의 손길이 묻어 있다. 현재는 오초량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작품, 음악, 책이 어우러진 전시관으로 재탄생했다.

100년 동안 때론 사람들이 사는 공간으로, 때론 사람들이 거쳐 가는 공간으로 모습을 바꿔간 곳도 있다. 부산역 건너편 골목길의 붉은 벽돌 건물은 1927년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던 백제병원으로 지어졌다. 이후 1932년 중국요리집 봉래각, 1942년 일본 아카즈키부대 장교 숙소, 해방 후엔 중화민국 임시대사관 등으로 사용된 뒤 출판사 창비에 의해 복합문화공간 ‘창비 부산’으로 태어났다. 100년간 공간 정체성을 바꿔온 이곳의 역사는 건물 곳곳에서 묻어난다.

대구·부산=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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