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흡연자의 알 권리'가 낳을 변화

입력 2023-05-23 18:09   수정 2023-05-24 00:13

담배와 자동차 산업은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포디즘’으로 알려진 대량 제조, 대량 소비 시대의 상징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자동차 컨베이어 벨트에서 ‘블루칼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말보로를 입에 문 ‘체인 스모커’였다.

요즘은 두 산업 모두 ‘정해진 미래’의 주인공이다. 스모크(연기)가 둘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다.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점점 전기차에 자리를 내주고 있고, 연초는 전자담배로 대체되는 추세다. ‘스모크 프리’(연기 없는 세상)는 지구와 사람의 건강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선택지다.

전기차에 관한 한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앞서 있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총본산인 미국조차 2차전지(자동차용 배터리) 분야에선 한국 기업을 으뜸으로 친다.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과거의 영광’을 스스로 지우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누가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세계 담배 시장 1위인 필립모리스(PMI)의 야체크 올차크 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담배는 2030년부터 판매가 금지되는 가솔린 자동차처럼 취급돼야 한다”고 공언한 동기는 자동차 제조사의 동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판'을 바꾸는 자가 최후의 승자
올차크 회장은 PMI를 세계 1위로 만든 ‘말보로’의 단종을 약속했다. 물론 선의에서만은 아니다. 대마초보다 중독성이 강한 니코틴을 인류가 영원히 끊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PMI는 안다. “담배를 끊으세요. 정 안되면 아이코스(PMI의 궐련형 전자담배)를 사용하세요”라는 전략은 그래서 ‘악어의 눈물’이다.

PMI가 담배 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려는 건 1차적으로는 강화되는 담배 규제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2009년생부터 평생 연초담배를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책을 지난해 말 발효했다. 전자담배는 예외다.

다른 한편으로 PMI가 전자담배에 집중하는 이유는 새로운 금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PMI는 흡입 치료제 기업인 영국의 백투라를 2021년 14억5000만달러(약 1조9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제약 및 헬스케어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들은 ‘비욘드(beyond) 니코틴’이란 새로운 비즈니스 방향을 내걸고 2025년 10억달러 매출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노담'은 허망한 목표
국내 1위 담배 제조사인 KT&G도 이 같은 추세를 적극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후발 주자인데도 ‘릴’ 브랜드를 단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해 국내 시장에선 PMI를 따돌렸다. 전 세계 유일한 사례다. PMI가 해외 전자담배 시장 확대를 위해 KT&G를 동반자로 택한 건 KT&G의 기술력이 자칫 BAT로스만스 등 경쟁사로 넘어갈 것을 우려해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한국은 선진국에 비하면 전자담배로의 전환을 방해하는 제약이 여전하다. 흡연자들의 알 권리가 제약돼 있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초담배가 얼마나 해로운지, 전자담배는 과연 덜 해로운지를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제조사들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다.

일각에선 전자담배가 혹여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얘기가 퍼지면 청소년들이 쉽게 담배에 손을 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책 방향은 ‘전담(전자담배)’이 아니라 ‘노담(No 담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담배의 역사는 중독의 역사다. 담배, 술, 도박 등 소위 죄악 산업을 박멸하겠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 때론 최선이 아니라 차선 혹은 차악을 택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전자담배 시장엔 압도적인 1위가 아직 없다. 민영화된 KT&G로선 글로벌 담배 기업들이 거의 100년간 장악했던 담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유일한 기회다. 흡연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면 그로 인한 거대 변화가 창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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